[세션 인터뷰] 물 흐르듯 창조된 나만의 세상_나희선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한 분야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말할까. 나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그들의 말은 때로 직접적이고 낙관적인 허세로 느껴진다. 그런데 그 허세가 얄밉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몰두했으며, 얼마나 다치고 성장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일에 너무 몰두한 탓에 공허한 안갯속에서 껍데기만 남은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을 테다. 도티로 이름을 떨친 나희선도 그랬다. 그저 생존을 위해 뛰어든 마인크래프트라는 오픈월드 게임에서 꿈을 발견했다가, 도티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 줘 스스로 설자리를 잃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도티와 나희선은 누구보다 서로를 충족하는 관계다. 둘의 관계가 정립되자, 그제야 오픈월드에서 시작된 나희선 개인의 가능성은 세상의 문화를 선도하는 영향력으로 확장됐다.

에디터 이슬기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크리에이터 도티이자 샌드박스 네트워크 창업자 나희선이라고 합니다.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셨어요. 소위 명문대의 명문학과 출신인데,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진로를 택한 게 조금 의외더라고요.

많은 분이 그렇게들 물어보세요. 어떻게 크리에이터를 시작하게 되었냐고요. 근데 사실 엄청난 혜안이 있진 않았고요. 그냥 그 상황에 맞는 최선을 선택했을 뿐이에요. ‘문화를 만든다’는 CJ의 문구에 마음이 끌려서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고, PD가 되기 위해 부족한 스펙을 어떻게 독창적으로 채울지 고민하다가 유튜브를 택한 거죠. 유튜브는 누구나 채널을 만들어 콘텐츠를 기획하고 유통할 수 있잖아요. ‘여기서 구독자 천 명을 만들어보자’ 식으로 스펙을 쌓으려고 시작했어요. 그렇게 구독자와 소통하면서 채널을 운영하다 보니 제 안에 있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게 됐고 이 일이 지속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보면 취준 활동으로 시작한 거네요.

그렇죠.


원래는 변호사가 되려 했다가, 방송국 PD로 목표를 틀었는데, 결국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지금껏 나희선의 인생은 플랜 B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혹시 후회한 적은 없나요?

후회한 적은 없어요. 만약 제가 다른 대안이 있었으면 후회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절박한 마음뿐이었거든요. 취업의 길은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냥 배수의 진을 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 하루에 3~4시간만 자면서 매일 콘텐츠만 만들었죠. 물론 두려움은 있었어요. 당시 2013년만 하더라도 유튜브 크리에이터 일이 검증된 일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인터넷 방송을 하던 개인들은 많았지만, 뭔가 프로처럼 채널을 운영하던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1세대 크리에이터가 되는 게 너무 큰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돌파구를 찾는 능력은 삶에 지속적인 관심을 둘 때 발휘되는 것 같아요. 늘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는 편인가요?

사실 어떤 고민과 고뇌를 거쳐 왔다기보다 지금은 이걸 하면 되지, 이게 나한테 좋은 거지, 하면서 편하게 흐르듯 생각하고 결정해 왔어요. 얼마 전에 빅히트 방시혁 대표님의 서울대 축사를 봤는데, 그냥 흘러 흘러 이렇게 됐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사람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면 오히려 거기에 매몰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만 다하면 세상이 나를 끌고 가는 경우도 있고, 내 가능성이 팽창하면서 새로운 꿈들이 연달아 발견되는 경우도 있어요.


도티로 한창 잘나갈 때 돌연 회사를 차렸어요. 혼자 활동하는 편이 비용 측면에서 더 나았을 텐데요.

크리에이터로 활동을 하면서 좀 더 내 일에 사명감을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진 디지털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미국에서 열리는 디지털 미디어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됐죠. 그곳에 모인 크리에이터들은 엄청난 스타 대우를 받았어요. 창의적인 인재는 모두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 몰리는 것 같았죠. 저도 한국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 시장을 함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길로 귀국해서 저의 친구인 이필성 대표와 함께 샌드박스 네트워크를 차렸어요.


참, 이필성 대표와의 우정 스토리를 빼놓을 수 없네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

저희 둘 다 수시 합격으로 입학해서 대학 입학 전부터 수시 합격생들끼리의 모임에서 만났어요. 필성이와 저는 그냥 주파수가 잘 맞는 친구였어요. 뭘 해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있잖아요. 둘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읽고 바에서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고 그랬죠. 필성이가 지금은 엄청 부드러워졌는데, 당시에는 부산 사나이 느낌이 강했어요. 원체 똑똑하고 얼리어답터에 비전이 확실한 친구였죠.


친구로서 이필성 대표가 진짜 대단하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저희 때는 광역 학부제라고 해서 학과를 정하지 않고 입학을 해서 성적에 따라 2학년 2학기에 학과를 정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거든요? 얘가 1학년 때 공부를 되게 안 했어요. 저보다 학점이 안 좋았죠. 그런데 어느 날 사회계열에서 가장 가기 어려운 경영학과에 무조건 가야겠다고 하더니 2학년 1학기에 미친 듯이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올 A+를 받고 경영학과에 진학하더라고요. 이 친구는 목표가 생기면 초인적으로 자신을 이끄는구나 싶었죠.


희선 님도 목표가 생기면 초인적인 힘이 나오나요?

저는 그냥 까불거리면서 동아리 활동하길 좋아했고, 둥글게 둥글게, 그때그때 행동하는 편이죠.


책 ≪도티의 플랜 B≫에서 본 희선 님은 꽂히면 돌진하는 스타일이던데요.

아, 맞아요. 일단 관심사가 생기면 깊게 파는 편이긴 해요. 한때 정말 김연아 선수 덕후였거든요. 좋아해요, 정도가 아니라 국내에서 하는 경기는 어떻게든 표 구해서 전부 직관하고, 인형이나 현수막 만들어 가고, 다큐멘터리도 백 번씩 봤어요. 그 정도로 몰입할 때는 미치게 빠지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덕질에서 시작한 그 DNA가, 그러니까 한 번 미쳐봤던 경험이 이 일을 시작할 때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희선 님을 크리에이터로 만들어준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오픈월드라고 하더군요.

오픈월드는 한 마디로 정답이 없는 게임이에요. 어떤 역할에 구애를 받거나 정해진 루틴에 따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그 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여러 가지 일을 벌일 수 있죠. 그 좋은 예가 마인크래프트예요. 마인크래프트에서는 A부터 Z까지 직접 기획하고 연출할 수 있어요.


현실에선 여러 제약으로 불가능한 일도 오픈월드에선 가능하겠어요. 그 매력에 빠져 마인크래프트를 시작했나요?

처음 취업을 목표로 기획을 했을 때만 해도 제작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이유로 게임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사 촬영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요. 그렇게 마음먹고 보니까 당시 아프리카TV에서 가장 있기 있는 게임 콘텐츠가 마인크래프트였어요. 국내에 한정된 게 아니라 유튜브에선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뜨거웠죠. 그래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아주 흥미로운 세상이더라고요. 전부 기획하고 연출하고, 심지어 내 마음대로 캐릭터를 만들어 배우가 되어 볼 수도 있고요.

도티의 세계를 만들 때 제일 먼저 고려한 기준은 뭐예요?

기본적으로 저를 투영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취향 대로 귀여운 캐릭터 스킨을 활용하고요. 자연인 나희선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한때는 도티와 나희선 사이에서 힘들기도 했다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캐릭터와 자신을 분리할 수 있고, 각 페르소나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크리에이터이기 때문에 겪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유튜브에서 도티의 인기가 식거나 콘텐츠의 한계가 와서 채널 운영이 어려워지면 현실에도 영향을 줄 테니까 도티에 지나치게 의존한 거죠. ‘도티가 잘 돼야 해, 도티 TV가 잘 안되면 나희선도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현실의 나 역시 SNS 같은 온라인 세상의 나만큼 멋지게 만들었어요. 도티가 아닌 나희선의 모습으로 운영하는 회사가 잘 되면서, 예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그냥 내 모습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구나를 느꼈어요. ‘도티 캐릭터로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이 와도 괜찮아. 이미 나 자체로 충분히 훌륭하니까.’ 하는 마음이 드니까 편해지더라고요. 현실의 나 또한 잘 돌보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면 간극이 해소돼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희선 님처럼 회사의 오너가 되거나 방송에 출연하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어요.

어떤 거라도 상관없어요. 완전 다른 일에서 의미를 찾아도 상관없고요. 소모임에서 존재를 드러낸다거나 해도 돼요. 현실의 내가 다른 세상의 어떤 페르소나와 부딪히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상황만 만들면 될 거 같아요.

그러면 이제 도티와 나희선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나요?

도티와 나희선에게서 서로 일치하는 부분을 많이 찾아낸 거 같아요. 그냥 둘이 다르지 않은 거예요. 저는 더 이상 도티를 부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도티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온전한 나예요.


여러 페르소나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여기라는 말씀이죠?

네, 근데 자신의 일상과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만든 분들이라면 힘들 수 있겠죠. 저는 도티에 제 성향과 목소리가 그대로 입혀져 있어서 쉬웠지만.


그럼 이제 도티와 나희선은 서로를 성장시키고 있나요?

도티는 인간 나희선에게 기회와 꿈을 줬어요. 도티가 있었기에 나희선이 여러 가지 일을 성취할 수 있었죠. 도티 덕에 강연도 하고 회사도 창업하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긍정적인 일도 많이 했잖아요. 반대로 나희선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있기에 도티가 재밌는 일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둘은 굉장히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됐죠.


이게 바로 페르소나의 긍정적 효과죠! 브랜드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브랜드에게 오픈월드는 팬을 만드는 데 유용한 도구 같은데요. 오픈월드를 잘 활용하고 있는 브랜드를 꼽자면요?

일단 오픈월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는 모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 시국에 여러 행사를 비대면으로 기획할 때, 저희와 함께 마인크래프트로 행사를 진행한 브랜드들이 있거든요. 정부기관으로 보자면 청와대의 어린이날 행사가 있었고, 최근엔 보건복지부와 함께한 금연 캠페인도 있어요. ’담배는 노답, 나는 노담’, 이 키워드로 노담랜드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선언문을 만들어 읽고 미니 게임도 했죠. 동접자가 800명이나 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브랜드 입장에서 오픈월드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소비자들과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브랜드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마인크래프트가 디자이너들의 도구만큼 완벽하진 않아도, 색다른 브랜드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그렇게 디지털 세상에서 사용자들과의 만남을 축적할 수 있고, 신선함으로 어필할 수도 있죠. 무엇보다 브랜드 담당자가 오픈월드에 얼마나 이해도가 있느냐가 중요해요.


한때 도티 TV의 시청자는 10대가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오픈월드 게임이 10대에게 먹힌다고 봐도 되겠죠?

처음부터 10대를 타깃으로 채널을 운영한 건 아니에요. 그냥 마인크래프트로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거기에 호응하는 세대가 10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거죠.


브랜드 마케팅에서 Z세대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10대 대상 마케팅에서 알아 두면 좋은 부분이 있을까요?

애들은 생각보다 관심사가 좁아요. 경험의 폭이 넓지 않으니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내가 하고 있는 게임, 가족, 학교, 반 이 정도예요. 그래서 친해지기 되게 쉬워요. 그 친구가 있는 작은 세상만 이해하면 돼요. 아이들을 어려워하는 어른들은 어떻게 보면 선입견이 있는 거예요. ‘얘는 세대가 다르니까 안 통할 거야.’ 하고요. 근데 그렇지 않거든요. 막상 얘기해보면 우리가 어릴 때 했던 고민과 지금 친구들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희선 님의 노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공유해 주세요.

저는 10대들이 많이 쓰는 SNS를 한다거나, 10대들의 커뮤니티를 자주 들여다본다든가, 생방송에서 일부러 질문을 많이 했어요. 어른들은 별 관심 없는 아이들의 관심사나 학사 일정 같은 것들에 대해서요. 그러다 보니 ‘아 이제 체육대회 시즌이구나’, ‘이제 수행평가 시즌이구나’, ‘요즘 학교에선 이런 걸 하는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소통하기 쉬워졌죠.


희선 님의 꿈은 오픈월드에서 시작됐어요. 앞으로 더 넓게 펼치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꾸준히 오랫동안 도티와 나희선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이게 정년이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에너지와 설레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가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존경받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샌드박스 소속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는 믿고 볼 수 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고요. 문화를 만든다는 말에 혹해서 크리에이티브 일을 시작한 건데, 정말 세상 안에서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