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첫날, 구독자 여러분은 마스크를 벗은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으신가요?
2월은 '함께'라는 말을 꺼내기에 좋은 한달이에요. 2라는 숫자를 보면 한 '쌍'을 말할 수 있는 숫자이고, 왠지 모르게 조금은 풀린 기분이 드는 날씨에 그동안 미뤄 두었던 친구와의 외출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코트 대신 자켓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어울리는 이너나 바지, 신발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요.
2월의 마이비레터는 '함께'라는 키워드를 말하려고 해요. 브랜드에도 중요한 '함께'. 브랜드가 함께 시너지를 만들 수도, 브랜드로 인해 함께 어떤 한 가지를 좋아하거나 이야기할 수도,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오늘의 마이비레터 145호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계기를 만드는, 매력적인 브랜드를 파헤칠 예정이니 집중해 주세요🙋🏻♂️
사람들은 계기가 있어야 모인다
‘커뮤니티.’ 언젠가부터 정말 자주 보이는 단어입니다. 브랜드의 메시지와 광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지난 지금,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죠. 명확한 가치나 문화가 있는 브랜드에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활동하며 자발적으로 브랜드 문화를 소비하고 알리죠. ‘평균 실종’의 시대인 지금, 브랜드들이 더더욱 커뮤니티를 만들려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브랜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이키는 2019년 11월 아마존에서 철수하며 “소비자와 직접 관계를 맺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위해 운동 기록 앱인 나이키 런 클럽(NRC), 나이키 트레이닝 클럽(NTC)은 언제 어디서나 운동을 인증하고, 서로 응원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한정판 소식을 알려주는 앱으로 시작한 스니커즈(SNKRS)는 제품 개발 뒷이야기, 나이키 제품 DIY 팁, 함께 가장 멋진 신발 투표 등 다양한 콘텐츠로 사람들이 모여들 바탕을 만들었죠.
나이키 러닝 클럽 (왼쪽)과 SNKRS 앱 (오른쪽)은 팬들이 모여 활동할 기반이 되어 나이키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 [자료 출처 NRC, shoeprize, SNKRS]
‘섹슈얼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를 지향하는 한국의 바른생각도 좋은 예시입니다.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누구나 성과 관련된 고민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죠. 비뇨기과, 산부인과, 성교육 등 다양한 성 관련 전문가들에게 직접 상담할 수 있는 페이지, 성 지식 콘텐츠로 구독자 19만 명을 모은 유튜브 채널 알성달성 등으로 사람들이 정말 고민할 만한 포인트를 짚어 꾸준하게 커뮤니티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바른생활은 사람들이 나누고 싶은 메시지에 주목해 콘텐츠와 미디어를 운영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 [자료 출처 바른생각, 바른생각 유튜브 채널 캡쳐]
이처럼 브랜드와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지속 가능한 발전과 탄탄한 브랜드 가치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렇기에 더 어렵습니다. 단순히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유명한 모델을 섭외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함께할 이유를 찾지 못하니까요. 같이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굳이’ 모일 계기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고민에 대해 ‘핵심은 문화’라고 답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2006년 커스텀 모터사이클 브랜드로 시작해 이젠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가 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이하 데우스). 최근 삼청동에 한옥을 모티브로 한 카페 겸 스토어, 성수동에 거대한 주차장처럼 만든 F&B 공간을 세워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삼청과 성수의 색을 담아 만든 데우스의 공간 / [자료 출처 W KOREA, heypop ]
“전 사람들이 말하는 ‘직관을 따르는 사업가(intuitive entrepreneur)’ 같아요. 전 그냥 제가 관심 많은 것들을 일단 지르고 보는 스타일이거든요.” 창업자 데어 제닝스(Dare Jennings)의 말입니다.
그는 과거 호주 패션계에 큰 영향을 준 맘보 그래픽스(Mambo Graphics), 로컬 밴드들의 음악을 모아 발매한 팬텀 레코드(Phantom Records) 등을 성공시킨 경력이 있어요. 덕분에 사람들이 무엇에 어떻게 열광할지, 더 넓고 깊게 고민하며 ‘문화’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문화를 제안할 수 있어야 사람들이 모인다.”라고 말하는 데우스는 전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팬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데우스는 호주의 데어 제닝스와 카비 턱웰(Carby Tuckwell)이 2006년 커스텀 모터사이클 제조사로 시작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목적이 있는 모터사이클’을 모토로, 자전거나 서프보드를 싣고 다닐 수 있는 특이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주목받았죠. 이후 바이커들을 위한 의류와 액세서리로 분야를 확장해, 지금은 독자적인 문화를 제안하는 브랜드로 발전했습니다. 호주와 한국,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미국 LA, 그리고 발리 등에 각 지역의 문화를 입힌 스토어를 운영 중이에요.
서핑보드, 자전거 등을 싣고 다닐 수 있게 개조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커스텀 바이크들. / [자료 출처 Truly Deeply]
데우스는 콜라보도 활발합니다. 가방 브랜드 허셸 서플라이(Herschel Supply Co.)와 이스트팩(Eastpak), 아웃도어 브랜드 그라미치(Gramicci), 리바이스 다음으로 오래된 데님 브랜드 리(Lee)가 대표적이죠. 최근엔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Breitling)도 데우스와 손을 잡았습니다. 브라이틀링의 CEO 조지스 컨(Georges Kern)은 “당신이 *카페 레이서 같은 모터사이클 문화를 사랑한다면, (데우스는)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이처럼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브랜드와 함께하고, 전세계적으로 열광하는 팬들을 만든 브랜드는 데어 제닝스의 ‘연쇄 도전’에서 시작됐습니다.
*카페 레이서 :
1960~70년대 영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경주용 오토바이를 개조한 모터사이클.
특유의 군더더기없는 디자인이 레트로 열풍을 타고 다시 사랑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서핑과 모터사이클의 정신을 담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콜라보 제품들. / [자료 출처 이스트팩, GQ]
데어의 첫 도전은 ‘티셔츠 공방’이었습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등에 참여하며 '내가 행복할 수 있고, 모두가 행복할 방법'을 고민했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 바이크, 로큰롤 음악 등에서 받은 영감을 티셔츠에 프린팅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데어의 옷은 빠르게 주목받으며 맘보 그래픽스라는 브랜드로 발전했습니다. 2000년에는 연 매출 1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유니폼을 협찬할 정도로 유명해졌죠.
데어 제닝스의 취향을 오롯이 담아 만든 브랜드, 맘보 그래픽스. / [자료 출처 Monsterchildren]
그러나 데어는 50살이 되던 2000년에 맘보를 매각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원했던 그는 거대 브랜드를 운영하며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기 때문인데요. 데어는 자신이 사랑하지만, 갈수록 뻔하고 재미없어지는 서핑 패션 시장으로 눈을 돌려, 힌트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서핑을 위해 항상 타고 다니던 바이크였죠. ‘내가 사랑하는 바이크와 서핑 문화를 같이 즐길 수 있으면 어떨까?’. 데어의 새로운 도전은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사진작가 앤서니 도즈 (Anthony Dodds)가 찍은 사진, <데우스의 정수 (The Essence of Deus)>. / [자료 출처 Monsterchildren]
“
90년대에 서핑 붐이 불면서 서핑 패션 산업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대 기업들이 찍어내는 값싼 제품들에 잠식됐고, 성장이 멈춘 것 같았죠. 전 여기에 제가 좋아하고, 실용적인 목적으로도 항상 타고 다녔던 바이크의 요소를 접목한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어요. 데우스로 새로운 ‘문화적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죠.
”
데어 제닝스, MONSTER CHILDREN 인터뷰에서, 2018.5
데어는 과거 맘보 그래픽스에서 일하며 가까워진 카비 턱웰과 함께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데어는 자신의 브랜드가 새로운 문화와 창조성을 탐구하는 자리가 되길 바랐습니다. 공학을 전공하고 항공기를 설계한 경험이 있는 카비가 그런 데어의 생각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어로 정리했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리스어로 ‘연극 등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갈등을 해결하는 존재’를 뜻합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브랜드도 포용과 진정성, 열정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시드니 캠퍼타운에 연 첫 번째 브랜드 스토어를 ‘문화의 신전(cultural temple)’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바이크와 서핑에 대한 열정을 나누고, 새로운 일을 벌이는 공간을 꿈꿨죠. 이를 위해 데우스 제품들을 둘러볼 수 있는 쇼룸과 카페, 예술가들을 위한 스튜디오, 바이크샵으로 스토어를 구성했습니다. ‘단순한 행복의 집(The House of Simple Pleasures)'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우스의 공간은 독립 디자이너들과 예술가, 바이크와 서핑 매니아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모터사이클부터 카페, 술집, 행사를 위한 공간까지. 데우스의 스토어는 문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지입니다. / [자료 출처 Deuscustom.com.au, Broadsheet, Concrete Playground]
제품, 서비스가 아닌 문화가 중심이 되는 데우스의 공간은 빠르게 유명해졌습니다. 동시에 데어와 카비가 생각한 ‘문화의 신전’의 개념도 더 명확해졌죠. 둘은 브랜드 공간의 역할을 '로컬 서핑과 모터바이크 문화에 깊게 몰입하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를 제공한다.'라고 정의하고,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는 다른 지역들 -스페인 이비자, 미국 LA 등- 의 커뮤니티와도 소통했습니다. 동시에 바이크 재킷, 캐주얼 패션 아이템 등으로 아이템을 확장하며 데우스의 정체성을 더 다양하게 보여줬죠.
데우스는 다양한 이벤트로도 문화를 나눴습니다. 자신이 디자인하고 만든 바이크를 자랑할 수 있는 바이크 빌드오프(Bike Buildoff) 이벤트가 대표적입니다. 데어와 카비는 사람들이 데우스의 신전에 모여 드라이빙을 가고, 커피와 요리를 즐기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함께하는 이유를 면밀히 지켜보고, 꾸준히 함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이죠. 이를 통해 데우스는 ‘바이크 문화가 중심이 되는 브랜드’로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있었습니다.
데우스의 확장은 2009년 발리에서 시작됐습니다. 1970년부터 서퍼들의 성지가 된 발리는 데우스가 브랜드를 알리고, 같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서핑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이자 사진작가인 더스틴 험프리(Dustin Humphrey)와 함께 두 번째 문화의 신전을 만들었죠.
서핑과 모터사이클, 그리고 발리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야외 공간으로 구성한 데우스의 발리 스토어. / [자료 출처 Deuscustom.com.au, 핀터레스트]
서핑의 성지로 유명한 캉구(Canggu)에 자리 잡은 데우스의 첫번째 해외 스토어는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명소가 되었습니다. 서핑과 바이크 라이딩, 카페와 음식, 파티와 휴식을 한데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을 알렸죠. 호주에 이어 발리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한 데우스는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리의 공간이 청사진 역할을 해줬죠.
“
‘데우스’라는 브랜드 자체가 하나의 아이디어라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인터넷에서 브랜드 소식을 알리자마자 전세계에서 ‘여러분이 하는 게 마음에 드는데, 저희도 같이 할 수 있을까요?’ 같은 문의를 받았죠. 서핑이나 바이크 하나만 다루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아우르는 문화에서 출발한 점이 국경을 초월한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
데어 제닝스, SmartCompany 인터뷰에서, 2012.9
데우스는 2012년 미국의 서핑 명소, 베니스 비치(Venice Beach)에 자리를 잡으며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당시 LA에서 유명인사들을 위한 바이크를 만들던 마이클 울라웨이(Michael Woolaway)를 디자인 디렉터로 초빙하고, 지역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아트워크들로 스토어를 장식했습니다. 여기에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을 같이 전시해 데우스가 어떤 브랜드인지 경험할 수 있게 준비했죠.
데우스는 동시에 다른 브랜드에도 손을 내밀었습니다. 튼튼하고 편한 프리미엄 캐주얼웨어를 만드는 캐나다의 레이닝 챔프(Reigning Champ)와 함께 후드티처럼 입을 수 있는 바이크 복장을 출시하고, 바이커들을 위한 장갑을 만드는 일본의 해롤드 기어(Harold’s Gear)에 데우스의 로고를 넣어 판매하기도 했죠. 이후 튼튼한 바이커용 부츠를 만드는 인도네시아의 산탈룸(Santalum)을 거쳐 컨버스(Converse)로, 데우스의 콜라보는 꾸준하게 확장됐습니다.
라이딩을 위한 의류와 장갑, 부츠까지. 데우스는 모터사이클 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브랜드들과 협업했습니다. / [자료 출처 Selectism, fatbuddhastore.us]
데우스가 콜라보하는 브랜드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데우스처럼 바이크를 사랑하는 동시에 각자의 분야에서 열정적이죠. 레이닝 챔프는 스스로를 ‘디테일을 존중하고 단순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브랜드라고 소개합니다. 해럴드 기어는 ‘장인의 정성으로 탁월한 기능미를 구현하는 것’을, 산탈룸은 ‘좋은 가죽으로 믿고 신을 수 있는 신발과 옷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데우스는 이렇게 바이크 문화에 열광할 수 있는 브랜드들과 적극적으로 함께하며 확고한 팬층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 자리잡은 후, 데우스는 콜라보의 폭을 넓히며 더 다양한 국가로 확장했습니다.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진출할 때는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우리 문화를 제안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50년 역사의 사이클링 의류 브랜드 데 마르치(De Marchi)와 같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브랜드 스토어도 “가능성의 관문(The Portal of Possibilities)”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일본으로 향할 때는 스노우보드에 주목해, 20년 넘게 서핑과 스노우보딩을 즐긴 타쿠야 요시카와와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했죠. 사람들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데우스의 보드를 구경하고, 직접 타 볼 수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함께하는 데우스 / [자료 출처 De Marchi 페이스북, Deuscustom.com.us
이외에도 항공 자켓으로 유명한 알파 인더스트리(Alpha Industries), 일본의 빈티지 편집샵 애딕트(Addict) 등, 데우스와 함께한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브랜드의 팬들도 데우스의 매력을 알게 됐죠. 데닝은 데우스 협업의 시작점이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문화여서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
저희가 구상한 건 (데우스의) 철학을 다른 국가들에 맞게 펼치는 거였어요.
모터사이클도 결국은 우리가 하는 일의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가 발리에서는 아름다운 서핑 보드를, 밀라노에선 멋진 자전거를,
일본에선 첨단 스노우보드를 만드는 것처럼요.
”
데어 제닝스, MONSTER CHILDREN 인터뷰에서, 2018.5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꾸준하게 성장했지만,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수익 대부분을 해외 진출과 공간 구성을 위해 재투자했기에, 손에 남는 게 거의 없었죠. 데어도 2015년부터 수익성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브랜드의 장기적 성장을 지원해줄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저희가 만든 컨셉에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우린 플랫폼을 만드는 데 성공한 거죠. 하지만 현실은 가혹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려면, 자본이 필요합니다.
”
데어 제닝스, AFR (Australian Financial Review) 인터뷰에서, 2015.11
데어 제닝스 / [자료 출처 AFR]
많은 투자자들이 데우스를 주목했습니다. 그 중에는 LVMH(루이비통 모엣헤네시)가 운영하는 사모펀드 L-캐피탈도 있었죠. 당시 L-캐피탈은 이미 호주의 여러 브랜드들에 투자해 대주주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수제 가죽 부츠 브랜드 R.M.윌리엄스, 호주의 여름을 담은 수영복 등을 만드는 씨폴리(Seafolly), 스포츠웨어를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2XU 등이 대상이었죠. 전세계에 팬덤을 만들고 확대하는 데우스는 LVMH에게도 매력적인 브랜드였을 겁니다.
그러나 데어는 2년 간의 고민 끝에 L-캐피탈이 아닌, 데우스의 이탈리아 진출에 큰 도움을 준 페데리코 미놀리(Federico Minoli)와 동료들에게 경영권을 넘기기로 결정했죠.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LVMH의 투자를 거절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데닝은 단순히 돈이 아닌, 데우스가 쌓아온 문화를 이어가 줄 사람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
사모펀드든 아니든, 데우스를 인수하려면 문화가 이 브랜드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데우스가 미래에 할 모든 일들도 그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고요.
돈을 벌기 위해 황금 거위를 죽이는 건 말이 안 됩니다.
”
데어 제닝스, AFR 인터뷰에서, 2015.11
페데리코는 밀라노 근처 모터사이클, 자전거 문화의 명소인 갈라라테(Gallarate) 출신이어서 데우스가 추구하는 문화에 익숙했습니다. 1996년부터 11년 동안 프리미엄 모터사이클 브랜드 두카티(DUCATI)를 크게 변화시키기도 했죠. 브랜드 역사 박물관, 연간 8백만 명이 방문하는 브랜드 홈페이지, 직원들을 위한 두카티 드라이빙 클래스 등을 도입해 같은 문화를 나누는 부족을 만들었습니다. 데우스의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능력과 열정을 모두 갖춘 적임자였습니다.
동료들도 데우스에 힘을 보탰습니다. 4살 때부터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데우스의 밀라노 진출을 같이 도운 페데리코의 사촌, ‘색감과 니트의 마술사’로 불리는 브랜드 미쏘니(Missoni)의 창립자, 유럽 곳곳에서 30여 개의 브랜드를 일본으로 수입한 패션 전문가 등이 함께 데우스에 투자했죠. 배경도 하는 일도 달랐지만, 데우스와 모터사이클 문화에 열정적인 점 하나로 뭉쳤습니다.
데우스를 함께 만들고 있는 파트너들 / [자료 출처 AFR]
데우스는 이 때의 선택 덕분에 이탈리아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핵심 문화를 유지하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1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과 2021년 브라질 상파울로, 2022년 한국의 삼청과 성수동까지. 국경을 초월해 사람들이 함께하는 브랜드로 발전한 데우스는 ‘사람들이 함께 모일 이유인 문화를 포기할 수 없다.’는 데어의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 모든 브랜드와 개인이 고민하는 주제일 겁니다. 지금은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니까요. 제목에 커뮤니티, 팬덤, 찐팬 등이 붙은 자료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일방적인 마케팅과 브랜딩, 단기적인 트렌드에 올라탄 메시지가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브랜드를 조명하며, 다른 관점으로 이 질문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모을’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지로요. 데우스를 시작한 사람들도 치밀한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제품을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서핑과 모터사이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즐기고 싶어 이것저것 만든 게 시작이었죠. 데어는 사람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함께하며 즐기는지 끊임없이 지켜보았고, 그것을 지킨 덕분에 지금의 데우스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함께'를 진정 말하는 브랜드,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자료 출처 Deuscustom.com.us]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마음을 이해해주는 존재에 마음이 이끌립니다. 정밀한 타겟팅 메시지와 광고 소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요소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런 점에서 좋은 모범이 되어줍니다.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고 싶은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브랜드에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인 커뮤니티나 팬덤이 아닌,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브랜드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레터가 요약되어 있는 my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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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비레터 객원에디터 | 최진수
브랜드와 영화, 음악, 책, 공간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탐구하는 최진수입니다. 1일 1인사이트 뉴스레터 롱블랙, 진정성 있는 패션 웹진 온큐레이션, 그리고 브랜드에 진심인 비마이비까지. 브랜드와 마케팅에 대한 다채로운 시도들을 직접 경험하고, 탐구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꾸준하게 해 오고 있습니다. 항상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환영합니다.
‘한국 스트리트 패션’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 브라운브레스 (Brownbreath)가 저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제가 가장 닮아가고 싶은 브랜드입니다. 2006년부터 ‘메시지를 전파한다 (Spread the Message)’를 모토로 힙합 앨범, 전시회 등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왔습니다. 꾸준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에서 제가 떠올랐고,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브랜드입니다.
editor |
브랜드를 깊고 넓게 다룹니다, 마이비레터
마이비레터는 매주 브랜드 큐레이션 레터를 비롯해, 인터뷰와 이달의브랜드 등 브랜드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깊고 넓게 다뤄왔어요.
마이비레터에 '더 깊은 깊이'를 더하려고 합니다.
각 분야에 종사하며 누구보다 해당 브랜드로 풀어낼 이야기가 풍성한 비마이비의 브랜드세터와 비마이비가 머리를 맞댔습니다!
브랜드를 사랑하며, 글과 기록을 좋아하는 비마이비의 브랜드세터와 함께 브랜드적인 관점을 더했는데요, 새롭고 톡톡 튀는 관점에 비마이비도 놀랐습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고,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면 좋아하는 브랜드도, 그 브랜드를 바라보는 관점의 깊이도 달라지니까요.
앞으로 비마이비와 비마이비의 브랜드세터들이 함께 만들어갈 풍성하고, 깊고 넓은 마이비레터로 여러분을 더 자주 찾아올게요!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려요
my B letter의 본문과 큐레이션을 포함, 비마이비의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비마이비에게 있습니다.
<비마이비의 모든 콘텐츠 자산의 무단 사용 및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콘텐츠의 활용을 금지합니다>
2월의 첫날, 구독자 여러분은 마스크를 벗은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으신가요?
2월은 '함께'라는 말을 꺼내기에 좋은 한달이에요. 2라는 숫자를 보면 한 '쌍'을 말할 수 있는 숫자이고, 왠지 모르게 조금은 풀린 기분이 드는 날씨에 그동안 미뤄 두었던 친구와의 외출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코트 대신 자켓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어울리는 이너나 바지, 신발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요.
2월의 마이비레터는 '함께'라는 키워드를 말하려고 해요. 브랜드에도 중요한 '함께'. 브랜드가 함께 시너지를 만들 수도, 브랜드로 인해 함께 어떤 한 가지를 좋아하거나 이야기할 수도,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오늘의 마이비레터 145호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계기를 만드는, 매력적인 브랜드를 파헤칠 예정이니 집중해 주세요🙋🏻♂️
사람들은 계기가 있어야 모인다
‘커뮤니티.’ 언젠가부터 정말 자주 보이는 단어입니다. 브랜드의 메시지와 광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지난 지금,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죠. 명확한 가치나 문화가 있는 브랜드에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활동하며 자발적으로 브랜드 문화를 소비하고 알리죠. ‘평균 실종’의 시대인 지금, 브랜드들이 더더욱 커뮤니티를 만들려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브랜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이키는 2019년 11월 아마존에서 철수하며 “소비자와 직접 관계를 맺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위해 운동 기록 앱인 나이키 런 클럽(NRC), 나이키 트레이닝 클럽(NTC)은 언제 어디서나 운동을 인증하고, 서로 응원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한정판 소식을 알려주는 앱으로 시작한 스니커즈(SNKRS)는 제품 개발 뒷이야기, 나이키 제품 DIY 팁, 함께 가장 멋진 신발 투표 등 다양한 콘텐츠로 사람들이 모여들 바탕을 만들었죠.
나이키 러닝 클럽 (왼쪽)과 SNKRS 앱 (오른쪽)은 팬들이 모여 활동할 기반이 되어 나이키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 [자료 출처 NRC, shoeprize, SNKRS]
‘섹슈얼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를 지향하는 한국의 바른생각도 좋은 예시입니다.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누구나 성과 관련된 고민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죠. 비뇨기과, 산부인과, 성교육 등 다양한 성 관련 전문가들에게 직접 상담할 수 있는 페이지, 성 지식 콘텐츠로 구독자 19만 명을 모은 유튜브 채널 알성달성 등으로 사람들이 정말 고민할 만한 포인트를 짚어 꾸준하게 커뮤니티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바른생활은 사람들이 나누고 싶은 메시지에 주목해 콘텐츠와 미디어를 운영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 [자료 출처 바른생각, 바른생각 유튜브 채널 캡쳐]
이처럼 브랜드와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지속 가능한 발전과 탄탄한 브랜드 가치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렇기에 더 어렵습니다. 단순히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유명한 모델을 섭외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함께할 이유를 찾지 못하니까요. 같이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굳이’ 모일 계기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고민에 대해 ‘핵심은 문화’라고 답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2006년 커스텀 모터사이클 브랜드로 시작해 이젠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가 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이하 데우스). 최근 삼청동에 한옥을 모티브로 한 카페 겸 스토어, 성수동에 거대한 주차장처럼 만든 F&B 공간을 세워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삼청과 성수의 색을 담아 만든 데우스의 공간 / [자료 출처 W KOREA, heypop ]
“전 사람들이 말하는 ‘직관을 따르는 사업가(intuitive entrepreneur)’ 같아요. 전 그냥 제가 관심 많은 것들을 일단 지르고 보는 스타일이거든요.” 창업자 데어 제닝스(Dare Jennings)의 말입니다.
그는 과거 호주 패션계에 큰 영향을 준 맘보 그래픽스(Mambo Graphics), 로컬 밴드들의 음악을 모아 발매한 팬텀 레코드(Phantom Records) 등을 성공시킨 경력이 있어요. 덕분에 사람들이 무엇에 어떻게 열광할지, 더 넓고 깊게 고민하며 ‘문화’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문화를 제안할 수 있어야 사람들이 모인다.”라고 말하는 데우스는 전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팬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데우스는 호주의 데어 제닝스와 카비 턱웰(Carby Tuckwell)이 2006년 커스텀 모터사이클 제조사로 시작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목적이 있는 모터사이클’을 모토로, 자전거나 서프보드를 싣고 다닐 수 있는 특이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주목받았죠. 이후 바이커들을 위한 의류와 액세서리로 분야를 확장해, 지금은 독자적인 문화를 제안하는 브랜드로 발전했습니다. 호주와 한국,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미국 LA, 그리고 발리 등에 각 지역의 문화를 입힌 스토어를 운영 중이에요.
서핑보드, 자전거 등을 싣고 다닐 수 있게 개조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커스텀 바이크들. / [자료 출처 Truly Deeply]
데우스는 콜라보도 활발합니다. 가방 브랜드 허셸 서플라이(Herschel Supply Co.)와 이스트팩(Eastpak), 아웃도어 브랜드 그라미치(Gramicci), 리바이스 다음으로 오래된 데님 브랜드 리(Lee)가 대표적이죠. 최근엔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Breitling)도 데우스와 손을 잡았습니다. 브라이틀링의 CEO 조지스 컨(Georges Kern)은 “당신이 *카페 레이서 같은 모터사이클 문화를 사랑한다면, (데우스는)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이처럼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브랜드와 함께하고, 전세계적으로 열광하는 팬들을 만든 브랜드는 데어 제닝스의 ‘연쇄 도전’에서 시작됐습니다.
*카페 레이서 :
1960~70년대 영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경주용 오토바이를 개조한 모터사이클.
특유의 군더더기없는 디자인이 레트로 열풍을 타고 다시 사랑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서핑과 모터사이클의 정신을 담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콜라보 제품들. / [자료 출처 이스트팩, GQ]
데어의 첫 도전은 ‘티셔츠 공방’이었습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등에 참여하며 '내가 행복할 수 있고, 모두가 행복할 방법'을 고민했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 바이크, 로큰롤 음악 등에서 받은 영감을 티셔츠에 프린팅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데어의 옷은 빠르게 주목받으며 맘보 그래픽스라는 브랜드로 발전했습니다. 2000년에는 연 매출 1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유니폼을 협찬할 정도로 유명해졌죠.
데어 제닝스의 취향을 오롯이 담아 만든 브랜드, 맘보 그래픽스. / [자료 출처 Monsterchildren]
그러나 데어는 50살이 되던 2000년에 맘보를 매각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원했던 그는 거대 브랜드를 운영하며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기 때문인데요. 데어는 자신이 사랑하지만, 갈수록 뻔하고 재미없어지는 서핑 패션 시장으로 눈을 돌려, 힌트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서핑을 위해 항상 타고 다니던 바이크였죠. ‘내가 사랑하는 바이크와 서핑 문화를 같이 즐길 수 있으면 어떨까?’. 데어의 새로운 도전은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사진작가 앤서니 도즈 (Anthony Dodds)가 찍은 사진, <데우스의 정수 (The Essence of Deus)>. / [자료 출처 Monsterchildren]
“
90년대에 서핑 붐이 불면서 서핑 패션 산업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대 기업들이 찍어내는 값싼 제품들에 잠식됐고, 성장이 멈춘 것 같았죠. 전 여기에 제가 좋아하고, 실용적인 목적으로도 항상 타고 다녔던 바이크의 요소를 접목한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어요. 데우스로 새로운 ‘문화적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죠.
”
데어 제닝스, MONSTER CHILDREN 인터뷰에서, 2018.5
데어는 과거 맘보 그래픽스에서 일하며 가까워진 카비 턱웰과 함께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데어는 자신의 브랜드가 새로운 문화와 창조성을 탐구하는 자리가 되길 바랐습니다. 공학을 전공하고 항공기를 설계한 경험이 있는 카비가 그런 데어의 생각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어로 정리했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리스어로 ‘연극 등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갈등을 해결하는 존재’를 뜻합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브랜드도 포용과 진정성, 열정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시드니 캠퍼타운에 연 첫 번째 브랜드 스토어를 ‘문화의 신전(cultural temple)’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바이크와 서핑에 대한 열정을 나누고, 새로운 일을 벌이는 공간을 꿈꿨죠. 이를 위해 데우스 제품들을 둘러볼 수 있는 쇼룸과 카페, 예술가들을 위한 스튜디오, 바이크샵으로 스토어를 구성했습니다. ‘단순한 행복의 집(The House of Simple Pleasures)'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우스의 공간은 독립 디자이너들과 예술가, 바이크와 서핑 매니아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모터사이클부터 카페, 술집, 행사를 위한 공간까지. 데우스의 스토어는 문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지입니다. / [자료 출처 Deuscustom.com.au, Broadsheet, Concrete Playground]
제품, 서비스가 아닌 문화가 중심이 되는 데우스의 공간은 빠르게 유명해졌습니다. 동시에 데어와 카비가 생각한 ‘문화의 신전’의 개념도 더 명확해졌죠. 둘은 브랜드 공간의 역할을 '로컬 서핑과 모터바이크 문화에 깊게 몰입하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를 제공한다.'라고 정의하고,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는 다른 지역들 -스페인 이비자, 미국 LA 등- 의 커뮤니티와도 소통했습니다. 동시에 바이크 재킷, 캐주얼 패션 아이템 등으로 아이템을 확장하며 데우스의 정체성을 더 다양하게 보여줬죠.
데우스는 다양한 이벤트로도 문화를 나눴습니다. 자신이 디자인하고 만든 바이크를 자랑할 수 있는 바이크 빌드오프(Bike Buildoff) 이벤트가 대표적입니다. 데어와 카비는 사람들이 데우스의 신전에 모여 드라이빙을 가고, 커피와 요리를 즐기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함께하는 이유를 면밀히 지켜보고, 꾸준히 함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이죠. 이를 통해 데우스는 ‘바이크 문화가 중심이 되는 브랜드’로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있었습니다.
데우스의 확장은 2009년 발리에서 시작됐습니다. 1970년부터 서퍼들의 성지가 된 발리는 데우스가 브랜드를 알리고, 같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서핑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이자 사진작가인 더스틴 험프리(Dustin Humphrey)와 함께 두 번째 문화의 신전을 만들었죠.
서핑과 모터사이클, 그리고 발리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야외 공간으로 구성한 데우스의 발리 스토어. / [자료 출처 Deuscustom.com.au, 핀터레스트]
서핑의 성지로 유명한 캉구(Canggu)에 자리 잡은 데우스의 첫번째 해외 스토어는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명소가 되었습니다. 서핑과 바이크 라이딩, 카페와 음식, 파티와 휴식을 한데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을 알렸죠. 호주에 이어 발리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한 데우스는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리의 공간이 청사진 역할을 해줬죠.
“
‘데우스’라는 브랜드 자체가 하나의 아이디어라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인터넷에서 브랜드 소식을 알리자마자 전세계에서 ‘여러분이 하는 게 마음에 드는데, 저희도 같이 할 수 있을까요?’ 같은 문의를 받았죠. 서핑이나 바이크 하나만 다루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아우르는 문화에서 출발한 점이 국경을 초월한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
데어 제닝스, SmartCompany 인터뷰에서, 2012.9
데우스는 2012년 미국의 서핑 명소, 베니스 비치(Venice Beach)에 자리를 잡으며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당시 LA에서 유명인사들을 위한 바이크를 만들던 마이클 울라웨이(Michael Woolaway)를 디자인 디렉터로 초빙하고, 지역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아트워크들로 스토어를 장식했습니다. 여기에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을 같이 전시해 데우스가 어떤 브랜드인지 경험할 수 있게 준비했죠.
데우스는 동시에 다른 브랜드에도 손을 내밀었습니다. 튼튼하고 편한 프리미엄 캐주얼웨어를 만드는 캐나다의 레이닝 챔프(Reigning Champ)와 함께 후드티처럼 입을 수 있는 바이크 복장을 출시하고, 바이커들을 위한 장갑을 만드는 일본의 해롤드 기어(Harold’s Gear)에 데우스의 로고를 넣어 판매하기도 했죠. 이후 튼튼한 바이커용 부츠를 만드는 인도네시아의 산탈룸(Santalum)을 거쳐 컨버스(Converse)로, 데우스의 콜라보는 꾸준하게 확장됐습니다.
라이딩을 위한 의류와 장갑, 부츠까지. 데우스는 모터사이클 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브랜드들과 협업했습니다. / [자료 출처 Selectism, fatbuddhastore.us]
데우스가 콜라보하는 브랜드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데우스처럼 바이크를 사랑하는 동시에 각자의 분야에서 열정적이죠. 레이닝 챔프는 스스로를 ‘디테일을 존중하고 단순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브랜드라고 소개합니다. 해럴드 기어는 ‘장인의 정성으로 탁월한 기능미를 구현하는 것’을, 산탈룸은 ‘좋은 가죽으로 믿고 신을 수 있는 신발과 옷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데우스는 이렇게 바이크 문화에 열광할 수 있는 브랜드들과 적극적으로 함께하며 확고한 팬층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 자리잡은 후, 데우스는 콜라보의 폭을 넓히며 더 다양한 국가로 확장했습니다.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진출할 때는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우리 문화를 제안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50년 역사의 사이클링 의류 브랜드 데 마르치(De Marchi)와 같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브랜드 스토어도 “가능성의 관문(The Portal of Possibilities)”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일본으로 향할 때는 스노우보드에 주목해, 20년 넘게 서핑과 스노우보딩을 즐긴 타쿠야 요시카와와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했죠. 사람들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데우스의 보드를 구경하고, 직접 타 볼 수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함께하는 데우스 / [자료 출처 De Marchi 페이스북, Deuscustom.com.us
이외에도 항공 자켓으로 유명한 알파 인더스트리(Alpha Industries), 일본의 빈티지 편집샵 애딕트(Addict) 등, 데우스와 함께한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브랜드의 팬들도 데우스의 매력을 알게 됐죠. 데닝은 데우스 협업의 시작점이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문화여서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
저희가 구상한 건 (데우스의) 철학을 다른 국가들에 맞게 펼치는 거였어요.
모터사이클도 결국은 우리가 하는 일의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가 발리에서는 아름다운 서핑 보드를, 밀라노에선 멋진 자전거를,
일본에선 첨단 스노우보드를 만드는 것처럼요.
”
데어 제닝스, MONSTER CHILDREN 인터뷰에서, 2018.5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꾸준하게 성장했지만,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수익 대부분을 해외 진출과 공간 구성을 위해 재투자했기에, 손에 남는 게 거의 없었죠. 데어도 2015년부터 수익성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브랜드의 장기적 성장을 지원해줄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저희가 만든 컨셉에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우린 플랫폼을 만드는 데 성공한 거죠. 하지만 현실은 가혹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려면, 자본이 필요합니다.
”
데어 제닝스, AFR (Australian Financial Review) 인터뷰에서, 2015.11
데어 제닝스 / [자료 출처 AFR]
많은 투자자들이 데우스를 주목했습니다. 그 중에는 LVMH(루이비통 모엣헤네시)가 운영하는 사모펀드 L-캐피탈도 있었죠. 당시 L-캐피탈은 이미 호주의 여러 브랜드들에 투자해 대주주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수제 가죽 부츠 브랜드 R.M.윌리엄스, 호주의 여름을 담은 수영복 등을 만드는 씨폴리(Seafolly), 스포츠웨어를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2XU 등이 대상이었죠. 전세계에 팬덤을 만들고 확대하는 데우스는 LVMH에게도 매력적인 브랜드였을 겁니다.
그러나 데어는 2년 간의 고민 끝에 L-캐피탈이 아닌, 데우스의 이탈리아 진출에 큰 도움을 준 페데리코 미놀리(Federico Minoli)와 동료들에게 경영권을 넘기기로 결정했죠.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LVMH의 투자를 거절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데닝은 단순히 돈이 아닌, 데우스가 쌓아온 문화를 이어가 줄 사람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
사모펀드든 아니든, 데우스를 인수하려면 문화가 이 브랜드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데우스가 미래에 할 모든 일들도 그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고요.
돈을 벌기 위해 황금 거위를 죽이는 건 말이 안 됩니다.
”
데어 제닝스, AFR 인터뷰에서, 2015.11
페데리코는 밀라노 근처 모터사이클, 자전거 문화의 명소인 갈라라테(Gallarate) 출신이어서 데우스가 추구하는 문화에 익숙했습니다. 1996년부터 11년 동안 프리미엄 모터사이클 브랜드 두카티(DUCATI)를 크게 변화시키기도 했죠. 브랜드 역사 박물관, 연간 8백만 명이 방문하는 브랜드 홈페이지, 직원들을 위한 두카티 드라이빙 클래스 등을 도입해 같은 문화를 나누는 부족을 만들었습니다. 데우스의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능력과 열정을 모두 갖춘 적임자였습니다.
동료들도 데우스에 힘을 보탰습니다. 4살 때부터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데우스의 밀라노 진출을 같이 도운 페데리코의 사촌, ‘색감과 니트의 마술사’로 불리는 브랜드 미쏘니(Missoni)의 창립자, 유럽 곳곳에서 30여 개의 브랜드를 일본으로 수입한 패션 전문가 등이 함께 데우스에 투자했죠. 배경도 하는 일도 달랐지만, 데우스와 모터사이클 문화에 열정적인 점 하나로 뭉쳤습니다.
데우스를 함께 만들고 있는 파트너들 / [자료 출처 AFR]
데우스는 이 때의 선택 덕분에 이탈리아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핵심 문화를 유지하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1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과 2021년 브라질 상파울로, 2022년 한국의 삼청과 성수동까지. 국경을 초월해 사람들이 함께하는 브랜드로 발전한 데우스는 ‘사람들이 함께 모일 이유인 문화를 포기할 수 없다.’는 데어의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 모든 브랜드와 개인이 고민하는 주제일 겁니다. 지금은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니까요. 제목에 커뮤니티, 팬덤, 찐팬 등이 붙은 자료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일방적인 마케팅과 브랜딩, 단기적인 트렌드에 올라탄 메시지가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브랜드를 조명하며, 다른 관점으로 이 질문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모을’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지로요. 데우스를 시작한 사람들도 치밀한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제품을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서핑과 모터사이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즐기고 싶어 이것저것 만든 게 시작이었죠. 데어는 사람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함께하며 즐기는지 끊임없이 지켜보았고, 그것을 지킨 덕분에 지금의 데우스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함께'를 진정 말하는 브랜드,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자료 출처 Deuscustom.com.us]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마음을 이해해주는 존재에 마음이 이끌립니다. 정밀한 타겟팅 메시지와 광고 소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요소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런 점에서 좋은 모범이 되어줍니다.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고 싶은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브랜드에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인 커뮤니티나 팬덤이 아닌,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브랜드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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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비레터 객원에디터 | 최진수
브랜드와 영화, 음악, 책, 공간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탐구하는 최진수입니다. 1일 1인사이트 뉴스레터 롱블랙, 진정성 있는 패션 웹진 온큐레이션, 그리고 브랜드에 진심인 비마이비까지. 브랜드와 마케팅에 대한 다채로운 시도들을 직접 경험하고, 탐구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꾸준하게 해 오고 있습니다. 항상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환영합니다.
‘한국 스트리트 패션’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 브라운브레스 (Brownbreath)가 저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제가 가장 닮아가고 싶은 브랜드입니다. 2006년부터 ‘메시지를 전파한다 (Spread the Message)’를 모토로 힙합 앨범, 전시회 등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왔습니다. 꾸준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에서 제가 떠올랐고,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브랜드입니다.
editor |
브랜드를 깊고 넓게 다룹니다, 마이비레터
마이비레터는 매주 브랜드 큐레이션 레터를 비롯해, 인터뷰와 이달의브랜드 등 브랜드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깊고 넓게 다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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