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Curation]#218 달리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 새티스파이


지금 가장 주목받는 트렌드는 역시 ‘달리기’일 겁니다.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고, 코로나19 이후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함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이어서 2020년대 들어 급성장했죠.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들어 러닝크루가 유행 중이고요. 자연스럽게 러닝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요. 스위스의 온(On), 프랑스의 호카(Hoka) 등 이전에는 매니아들만 알던 브랜드들도 길거리에서 자주 보이게 됐어요. 나이키, 아디다스 등 전통의 강자들도 러닝 관련 제품과 이벤트에 힘을 주고 있죠.


수많은 러닝 브랜드들 중에서도 ‘자기 캐릭터’가 확실한 브랜드, 새티스파이. / 자료 출처 HYPEBEAST


이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조용히 성장 중인 브랜드가 있습니다. 런칭 후 10년도 되지 않아 러너들의 명품이 된 새티스파이(SATISFY)인데요. 티셔츠 하나에 20만 원, 반바지는 30만 원이 넘을 정도로 비싸지만 출시할 때마다 품절될 정도로 열성팬들이 많습니다. 2021년에는 프랑스 공공투자은행(Bpifrance)으로부터 250만 달러를 투자받았죠. 여기에는 LVMH, 애플 등에서 경력을 쌓은 투자자들도 참여해 업계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새티스파이의 창업자인 브라이스 파르투슈(Brice Partouche)는 성장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아무도 사람들이 달리고 싶은 영감을 제품과 콘텐츠, 스토리텔링으로 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시도했다”라고 말이죠. 그는 어떻게 거대 브랜드들이 경쟁하는 러닝 시장에서 빈틈을 발견하고,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01 진짜로 ‘멋있게’ 달리고 싶었던 마음, 틀을 거부하는 브랜드의 시작이 되다


새티스파이를 창업한 브라이스 파르투슈는 2001년 자신의 데님 브랜드를 론칭한 후 꾸준히 패션 업계에서 일해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펑크 록 밴드 음악과 스케이트보딩 감성을 담아 주목받았죠.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옷을 만들며, 브라이스는 자연스럽게 ‘브랜드는 문화와 결합할 때 생명을 갖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오랫동안 러닝을 즐긴 연인을 따라 30세에 달리기를 시작하고, 러닝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죠.  



브라이스는 밴드 음악과 스케이트보딩, 패션 경력 등 다채로운 경험을 브랜드에 녹였습니다. / 자료 출처 Gear Patrol


브라이스는 달리기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경험을 했습니다. 땀 흘리며 달리는 지금에 집중하며 느끼는 행복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깊이 매료됐죠. 그리고 이런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스포츠 브랜드는 경쟁, 승리, 퍼포먼스 등을 키워드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면서도 가격을 낮추기 위해 기능성을 타협한 소재를 쓰고 있었죠. 브라이스는 이 점에 불만을 가졌고, 제대로 된 러닝웨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티스파이는 그렇게 시작됐어요. 


“패션 업계에서 오래 일해서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원단을 잘 알고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드리스 반 노튼을 정말 좋아해서, 그런 브랜드의 원단과 질감을 입힌 스포츠웨어를 만들고 싶었죠. 대형 브랜드들이 ‘드라이핏’ 같은 화려한 이름의 기능성 제품을 판매하지만, 결국 마케팅일 뿐이라고 생각했죠.”
_브라이스 파르투슈, GQ 인터뷰에서, 2017.5




02 직접 입고 달려보며, 필요한 줄 몰랐던 디테일까지 더하다


새티스파이 제품은 비쌉니다. 빈티지 의류에서 영감을 받은 모스테크(MothTech) 티셔츠는 한 장에 23만 원이에요. 방수 재킷은 95만 원이고요. 하지만 이렇게 높은 가격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련된 패션 브랜드에서 볼 수 있는 감성에 최고의 기능성을 결합했거든요. 


새티스파이 첫 제품이자 스테디셀러인 모스테크 티셔츠 / 자료 출처 the strategist


나방이 섬유를 먹어서 구멍이 난 것 같은 모스테크 티셔츠는 사실 치밀한 설계의 결과물입니다. 브라이스와 직원들이 직접 뛰면서 가장 땀이 많이 나는 지점에 ‘전략적으로’ 구멍을 냈거든요. 소재는 100% 유기농 포르투갈산 면을 사용하고, 라벨은 떼어낼 수 있게 마감했죠. 무게도 175g로 매우 가볍고요. 빈티지 아이템처럼 보이는 컬러와 패턴도 매력적이어서, 기존 스포츠웨어와 다르게 일상에서도 부담 없이 입고 다닐 수 있어요. 이처럼 기능성과 디자인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모스테크는 곧 러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유명해졌습니다. 



모스테크 이후로도 새티스파이는 독자 기술을 꾸준히 쌓아왔습니다. / 자료 출처 THEROOM


이후에도 새티스파이는 언제 어디서나 달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소재들을 꾸준히 개발했어요. 러닝용 쇼츠에 쓰이는 저스티스(Justice™) 원단은 기존 운동복보다 60% 더 빨리 마르면서도, 35% 더 가볍죠. 핸드폰과 에너지젤 등을 위한 주머니도 있고요. 일본 업체와 함께 클라우드메리노(CloudMerino)라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메리노 울도 만들었어요. 미세한 구멍들로 땀은 배출하고, 옷감 특유의 주름으로 체온은 보존해 사계절 내내 입고 다닐 수 있어요. 장거리 러닝을 위한 수분공급 조끼, 무게가 20g밖에 되지 않지만 햇빛을 완벽하게 막아주는 트레일 러닝용 모자도 유명하죠. 

새티스파이의 모든 제품은 임직원들이 직접 입고 테스트합니다. 우선 브라이스 본인이 착용하고 달려보며 디테일을 다잡고, 이후 프로 선수들과 브랜드 팬덤인 러닝 컬트(Running Cult) 멤버들에게 제품을 선출시해 피드백을 받죠. 브라이스는 이처럼 브랜드의 모든 능력을 ‘최고의 달리기 경험’에만 집중하기에, 제품에 자신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운동선수가 아닙니다. 마라톤을 두세 시간 안에 완주하지도 못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최고의 제품을 원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무엇이든 최고를 원합니다. 고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요.”
_브라이스 파르투슈, GQ 인터뷰에서, 2017.5




03 달리기가 궁금해지는, 달리고 싶어지는 디자인


새티스파이의 또 다른 매력은 오묘한 색감과 그래픽입니다. 자연의 색감을 옷에 그대로 담거나, 땀이 흘러내리는 듯한 그래픽 패턴을 더하기도 하죠. 전 세계 다양한 지형에서 영감을 얻은 컬러를 선보이기도 하고요. 이처럼 러닝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디자인은 다른 브랜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새티스파이만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새티스파이의 디자인에는 달리기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 자료 출처 HYPEBEAST


2021년 발매한 “아메리칸 데저트(American Desert)” 컬렉션은 뉴욕에 거주 중인 한국인 사진작가 이정진과 콜라보했어요. 이정진 작가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관객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로 유명한데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호주 국립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정진 작가의 사진들로 새티스파이는 달리기로 느낄 수 있는 내면의 평화와 차분함을 표현했죠. 



올해 3월에는 로스앤젤레스의 러닝 문화를 기념하는 단편 영화도 공개했어요. 새티스파이의 브랜드 앰버서더가 5분 동안 달리는 게 전부인데요. 여기서 카메라는 제품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저 멀리 할리우드 사인이 보이는 길거리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 한복판, 아름다운 바닷가를 배경으로 상쾌하게 달리는 러너에게 집중하죠.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달리고 싶어지길 바란다”는 메시지가 담긴 이 영상은 “달릴 때의 기분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순수한 달리기의 즐거움을 잘 보여준다”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새티스파이는 경쟁과 승리,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기존 브랜드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달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얼마나 상쾌하고 좋은지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죠. “더 많은 사람들이 러너스 하이를 느끼길 바란다”는 브라이스의 철학이 담긴 디자인은 지금도 새티스파이 매력의 기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04 판매나 마케팅이 아닌 ‘달리고 싶게 만드는’ 게 목적인 콘텐츠


스포츠웨어 브랜드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디자인이나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신제품이나 브랜드 모델을 클로즈업한 사진, 브랜드 로고가 깨알같이 붙은 동기부여 문구들, 앰배서더 인터뷰 등으로 채워지죠. 새티스파이의 피드에는 이런 것들이 거의 없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죠. 색감도 차분하고 살짝 어두운,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오로지 달리기 그 자체에만 집중한 새티스파이의 소셜 미디어. / 자료 출처 Satisfy Running Instagram


새티스파이의 SNS는 모델이나 연예인, 프로 선수보다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달리고 땀 흘리는 모습에 집중합니다. 기존 스포츠 브랜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러닝 매니아들은 흥미를 느꼈죠. 자연스럽게 팬이 된 이들이 주변 지인들에게도 브랜드를 공유하며, 새티스파이는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하게 이름을 알렸습니다. 새티스파이 계정을 보고 러닝을 시작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해요.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러너는 아니었지만, 이 브랜드 덕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기존 브랜드들과 다른 길을 걷고, 퍼포먼스 지향적이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달리고 싶다는 영감을 주는 게 저희 목표입니다.”
_브라이스 파르투슈, 에스콰이어 인터뷰, 2024.10

 

자체 콘텐츠인 ‘월간 포제스드’는 어느덧 60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자료 출처 Satisfy Running Possessed, Satisfy Running Instagram


자체 콘텐츠도 매력적입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포제스드 매거진(Possessed Magazine)이라는 제목으로, 러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선보이는데요. 달리기에 대한 오해 해소부터 식단 추천, 고객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만든 인터뷰 시리즈, 플레이리스트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스티커 등 굿즈를 포함한 한정판 책자도 출시하죠. 새티스파이가 ‘모두가 달리기의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는 모토에 얼마나 충실한지 잘 보여줍니다.

이런 기획은 스케이트보딩과 펑크 음악, 패션 브랜드 창업 등 브라이스의 다양한 경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새티스파이에는 디자인, 음악, 첨단 기술 등 다양한 업계에서 온 직원들이 많은데요. 그 덕분에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소재와 콘텐츠를 실험할 수 있다고 브라이스는 말합니다. 구멍 난 빈티지 의류에서 영감을 얻어 티셔츠를 만들거나, 잠수복 구조를 본뜬 외투를 만드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도전들이 합쳐져 새티스파이는 러닝 매니아들에게도,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들에게도 색다르면서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05 고객이 변하는 시대, 브랜드도 페이스에 맞춰 달려야 한다


어느덧 10주년을 바라보는 브랜드지만, 브라이스는 지금도 모든 제품의 제작 공정을 직접 확인합니다. 매년 옷감 박람회를 찾고, 마음에 드는 소재가 없으면 직접 개발하죠. 생산 시설도 프랑스에 있고, 직원들도 전부 직접 채용하는데요.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이지만, 그렇게 노력을 해야만 사람들이 ‘살 수밖에 없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지금은 제작자와 소비자의 구별이 없어졌어요. 멋진 디자인만으로는 더 이상 비즈니스를 지속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거죠. 이제 브랜드는 소비자의 변화하는 욕구에 따라 정체성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새티스파이도 브랜드의 사명에 충실하고, 커뮤니티의 기대에 부응해야죠.”
_브라이스 파르투슈, Gear Patrol 인터뷰, 2021.6


동시에 새티스파이는 러닝과 아웃도어를 즐기는 소비자들의 변화도 놓치지 않습니다. 브라이스의 말처럼, 지금은 고객 요구와 목소리를 반영하는 브랜드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새티스파이는 크록스(Crocs), 호카(Hoka), 오클리(Oakley) 등 ‘기능성과 스타일의 균형’을 지향하는 브랜드들과 활발하게 손을 잡습니다. 이를 통해 더 다양한 고객들에게 다가가고, 새티스파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죠. 



새티스파이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면서도, 고객과 페이스를 맞춰 달리는 중입니다. / 자료 출처 THEROOM


하지만 새티스파이의 핵심 가치는 9년 전 브랜드가 탄생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멋지게 달리는 걸 돕는 거죠. 올해 들어 새티스파이는 신발 제품군을 책임질 임원을 고용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새티스파이 특유의 색감과 디자인이 적용된 신발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새티스파이는 기존 경쟁자들을 따라가는 대신, 시장과 고객에 대한 자기 관점을 고집스럽게 지켜왔습니다. 동시에 러닝 커뮤니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콜라보와 콘텐츠 등에 반영했죠. 새티스파이는 업계 문법에 의존하는 대신, 고유한 가치를 제안하면서 소비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차별화와 진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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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비레터 객원에디터 | 최진수


닮고 싶은 브랜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드는 에디터입니다. 비마이비 이외에도 뉴닉, 폴인(fol:in), 원티드, TMI.FM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모든 존재가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정체성과 언어를 다잡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항해 중입니다. 


editor | Bem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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