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Curation]#237 ChatGPT에게 스튜디오 지브리의 브랜딩을 묻다

지난 4월 16일, ChatGPT가 세상에 나온지 3년만에 GPT-4o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모델의 출시는 GPT의 첫 발표와 맞먹는 충격을 다시 한번 만들어 냈어요. 그 중심에는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카카오톡 프로필은 온통 ‘생성형’ 지브리 세상이었고, 동시에 인간의 창작에 대한 고민과 저작권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논란 속에 몇년 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AI가 그려낸 애니메이션을 두고 ‘역겹다’고 평가한 인터뷰가 재조명 되기도 했어요.

그러나 브랜드 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습니다. AI가 ‘지브리 스타일’을 이해하고 구현할 만큼, 지브리는 하나의 ‘브랜드’이자 ‘주류 문화’가 되었다는 사실인데요. 이번 이슈를 비롯한 스튜디오 지브리만의 무언가를 ChatGPT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수많은 ‘지브리 스타일로 그려줘’라는 요청을 수행하기 위해, ChatGPT가 참고한 스튜디오 지브리만의 그림 스타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스튜디오 지브리만의 독창적인 브랜딩을요. 이에 대해 ChatGPT는 아래와 같이 답했습니다. 
(이는 스튜디오 지브리와 이번 이슈에 대한 OpenAI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브랜딩 측면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그림체는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감정의 흐름, 배경의 서사성, 슬로우 씬의 리듬감, 일본적 정서와 철학이 결합된 종합 예술이에요. 
지브리의 색감 조화, 명암 배치, 선의 유려함, 인물의 감정 표현 같은 표면적인 스타일은 학습해 재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하늘의 색, 캐릭터의 동그란 눈매, 건축적 배경은 시각적 요소로 데이터화되기 쉬워요.

하지만 내가 따라할 수 없는 건 그들이 담는 '무언의 여운', 즉 시간과 기억이 쌓인 장면의 분위기예요. 

‘센과 치히로’의 목욕탕 장면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씬에 숨겨진 감정의 결을 나는 경험할 수도, 해석할 수도 없어요.
이건 인간이 살아온 시간과 문화의 층위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감각이에요. 
클라이맥스보다 정적이고 느린 장면, 예컨대 바람에 흔들리는 풀, 밥을 먹는 소리, 눈빛의 머뭇거림에 집중하죠. 
이건 상품을 위한 연출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을 존중하는 연출입니다.

결국 스튜디오 지브리의 브랜딩은 사람의 삶을 껴안는 진심 어린 태도와 시선에서 비롯된다고 느껴요. 

이는 삶의 작고 사소한 순간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기술'이 아닌 ‘감정의 결’을 브랜드 자산으로 쌓아온 전략이자, 
관객에게 '당신의 삶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건네는 방식입니다. 
그게 바로 ‘무언의 여운’이고, 지브리다움을 지키는 힘이죠."


단순히 몇 개의 획과 색감의 조합이 아닌, 그림 속에 가치를 부여해온 스튜디오 지브리. 딥러닝으로는 도저히 쫓을 수 없었던 스튜디오 지브리의 브랜딩을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01 지브리가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일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가 성공한 후 1984년,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가 함께 설립했어요. 1986년 <천공의 성 라퓨타>를 시작으로 2023년 최근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총 24편의 장편 애니메이션 선보였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디즈니에 대항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한마디는 지브리의 핵심 철학을 잘 담고 있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선악 구도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면, 지브리는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서사와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모노노케 히메>의 타타라바(철을 만드는 마을) 지도자 에보시는 자연을 파괴하면서도 약자를 돌보는 인물이며, <벼랑 위의 포뇨> 속 후지모토는 소스케와 포뇨에게 방해꾼처럼 보이지만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이죠.


벼랑 위의 포뇨>에는 지브리 작품이 그렇듯, 악인이 등장하지 않아요. 포뇨의 시점에서 유일한 악역인 아버지 후지모토 / 자료출처 ghibli


스튜디오 지브리는 자연, 인간, 기술과 문명, 여성과 아이, 전쟁에 주목합니다. 대립 혹은 소외된 요소를 주제 삼아 조화와 공존을 이야기하죠. 이 철학은 제작 방식에서도 나타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설립 후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철저하게 수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2시간의 애니메이션 한 편을 위해서 17만 장 이상의 그림을 직접 그린다고 밝혔습니다. 감독은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은 흔들림이나 우발성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손 그림의 진정한 매력이자 인간의 의식을 뛰어넘는 힘, 그리고 무의식의 영역이 주는 재미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인 정신이 깃든 정성은 따뜻한 색감과 섬세한 감정선을 만들어내며, 지브리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창작자가 세상에 품은 마음에서 시작해 서사가 되고 시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과정. 그것이 지브리의 정체성을 만들었고, 스튜디오가 브랜드가 된 이유라 할 수 있어요. 



수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자료출처 visla magazine




02 지브리답다는 것, 반복과 누적의 결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철학이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무수한 상호작용과 반복이 있었습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통해 더 자세하게 살펴볼까요

1997년 개봉한 <모노노케 히메>는 인간(에보시)과 자연(산)의 대립을 통해 공존(아시타카)을 이야기합니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그 이전에는 <이웃집 토토로(1988)>가 있는데요. 자연을 상징하는 토토로와 인간 사츠키, 메이는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모노노케 히메> 중 자연을 상징하는 산과 인간을 상징하는 에보시 / 출처 ghibli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여성과 어린이의 성장 서사도 자주 다뤘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어린 여성 치히로는 부모님을 구하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소녀 소피는 하울을, 나라를 전쟁으로부터 구출합니다. 이 어린 여성들의 공통점은 평범함 속에 굳건한 강인함이에요. 이들은 모두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내면의 성숙을 이루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려집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다친 하쿠를 치료하는 치히로 / 출처 ghibli


전쟁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단골 시대적 배경입니다. 감독은 평소 전쟁을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전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미화나 영웅 서사 대신 부조리함을 직시합니다.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모두 전쟁의 참혹함을 다루고 있죠.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전쟁 모습  / 출처 ghibli


이처럼 스튜디오 지브리는 38년간 일관된 세계관을 서사와 캐릭터, 배경을 활용해 축적해 왔어요. 이는 지브리를 지금의 지브리로 만든 핵심 요인입니다.




03 브랜드, 공간으로의 확장: 지브리 파크


스튜디오 지브리가 브랜드 세계관을 확장하는 방식 또한 과연 지브리답습니다. 2022년 나고야에 문을 연 ‘지브리 파크’. 이름만으로는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처럼 놀이 기구가 있는 테마파크가 떠오르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을 제공합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작품을 통해 무분별한 기계 만능주의와 문명을 경계해 오고 있죠. 스튜디오 지브리에게 테마파크의 존재는 그들의 이런 철학에 반하는 행위라 고민이었을지도 몰라요. 덕분에 지브리 파크에는 이질적인 기구 대신, 자연을 존중하며 지브리 세계를 얹는 구조물이 있습니다. 

지브리 작품을 보면 일상의 디테일이 잘 묘사되어 있어요. 이런 지브리의 강점은 지브리 파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토로 마을이 있는데요. 이 구역은 어느 산책길 고양이 버스가 정차하던 버스 정거장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런 디테일은 사람들로부터 더욱 지브리 세계관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지브리 파크에 있는 토토로 사츠키 메이의 집. 영화 속 모습과 똑같아요. / 출처 ghibli-park


앞서 2001년에 개관한 지브리 미술관도 마찬가지예요. 도쿄 이노카시라 공원의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며 설계된 이 공간은 지브리적 사유를 유도하는 장소로 기능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설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지브리 감성이 더욱 진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미술관 내 아이스크림 집 간판을 직접 스케치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출처 youtube @Ghibli-Museum




04 브랜드, 청각으로의 확장: OST


지브리 세계관의 또 다른 확장 영역은 음악이에요. 최근 지브리 OST 오케스트라를 다녀왔어요.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스튜디오 지브리가 추구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OST의 역할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음악에는 작곡가 히사이시 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히사이시 조는 지브리 작품의 감정을 음악으로 직조하며,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어요. 그는 1984년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하며, 영화의 분위기와 서사, 캐릭터를 음악으로 풀어냈습니다. 히사이시 조는 작곡 전, 작품 전반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와 논의하며 이해한 뒤 작곡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덕분에 OST는 지브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히사이시 조 작곡가 / 출처 히사이시 조 인스타그램


히사이시 조는 한 인터뷰에서 ‘음악은 화면이 서로 이어질 때 둘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해 준다’고 말했는데요.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가 섬세하면서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영화를 관통하며 컷들을 이어주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 덕분일지 모릅니다. 




05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의 인기 요소는 AI가 아니라 지브리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왜 AI가 만든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에 열광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그림체 때문은 아닐 겁니다. 이미지 속에서 지브리가 축적해 온 인류적 철학과 섬세한 감성, 그 세계관을 만나고 싶었던 걸 거예요. 지브리 스타일은 이미지 너머의 맥락을 아우르는 총체적 상징인 것이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 또한 우리가 지브리 세계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 기술은 앞으로 지브리를, 애니메이션 산업을 위협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브리엔 수십 년간 장인정신으로 일관되게 쌓아 올린 주제, 캐릭터, 그림체, 음악 등의 브랜드 자산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모방한 이미지는 형식은 갖출지 몰라도 그 내면의 깊이가 없습니다. 결국 브랜드란 단순히 시각적 기호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축적과 선택, 일관된 가치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지브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단 몇 초 만에 만들어낼 수 없는 깊이의 영역입니다.


영상의 39분부터 AI 기술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각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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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비레터 객원에디터 | 임언정


말씀 언에 바를 정. 전혀 다른 한자를 쓰고 있지만, 종종 오해를 부르죠. 그만큼 생각을 정리해 밖으로 내뱉는 것을 좋아합니다. 넘치는 호기심으로 메시지가 있는 브랜드, 공간, 경험을 발굴하고 공유합니다.


남다른 분석력과 디깅력은 현상 이면의 인문학적 단초까지 다루며 깊이 있는 글을 만듭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해. 누구나 사유하도록 쉬운 언어를 추구합니다.

다양한 브랜드가 모이는 플랫폼에서 브랜드 경험 기획자로 다양한 SNS 채널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여전히 제 역할은 대중이 브랜드를 바라보는 해상도를 높이고 팬이 되는 여정을, 쉽지만 깊은 언어로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짧은 글부터 긴 글까지 두루 쓰는 저는, 에디터 임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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