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Feed]01 종가 | 김치라는 이름의 시간: 하나의 문화와 브랜드가 되기까지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정광태의 '김치주제가' 한 구절처럼, 김치는 그 자체로 우리의 식탁을 설명하는 말이에요. 너무 익숙해서 때론 특별함을 잊고, 가까이 있어 홀대를 받을 때도 있지만 김치는 취향을 뛰어넘어 필요의 영역에 존재하는 음식이죠.

사실 김치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에요. 역사와 계절, 손맛과 기다림, 그리고 살아 있는 발효의 지혜까지. 이 모든 게 고스란히 담겨있죠. 시간에 따라 풍미도, 영양도 놀라울 만큼 깊어지는 신비로운 음식이에요.

오늘도, 지금도 우리는 이토록 신비로운 김치와 함께하지만 김치에 대해 잘 알고 있진 못해요. 늘 그대로인 줄만 알았던 김치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꽤 거침없이, 그리고 조용히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너무나도 익숙한 김치에 대해 조금 낯설게 다가가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김치를 다시 보는 일, 생각보다 꽤 맛있고 유쾌한 여정이 될 거예요.



01 김치, 한반도의 사계절과 함께 익어온 음식



제11회 김치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도미솔식품의 ‘사각사각 총각김치’ / 자료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김치는 한국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에요. 그저 반찬 하나로만 보기엔 너무 오랜 시간, 깊이 있게 우리의 역사와 함께해왔어요. 김치의 시작은 고대 한국, 농경 사회로 접어들며 겨울철 식량을 보관하기 위한 저장 기술에서 비롯됐어요.

추운 겨울에도 채소를 먹을 수 있도록, 우리의 조상들은 각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맞춰 무, 배추, 오이 등 다양한 채소를 소금에 절이고 땅속에 저장했어요. 시간이 지나며 이 저장된 채소들은 자연스럽게 발효되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맛과 건강을 동시에 얻는 방식을 찾아냈죠.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김치는 단순한 '겨울 대비 식량'에서 벗어나, 사계절 내내 식탁에 오르는 일상 반찬으로 자리잡았어요. 이 시기의 김치는 지금처럼 매운 배추김치보다는 국물이 있는 동치미, 물김치, 깍두기 등 담백한 종류가 많았고, 지역과 계절에 따라 재료와 맛이 다양했죠.

김치의 결정적인 변곡점은 16세기 고추의 등장이었어요. 일본을 통해 한반도로 전해진 고추는 처음엔 낯설고 생소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김치에 빠질 수 없는 핵심 재료가 되었어요. 고추가루가 더해지면서 김치의 색은 붉게 변했고, 맛은 훨씬 강렬하고 중독성 있게 바뀌었죠. 그제서야 지금 우리가 가장 익숙한 ‘빨간 배추김치’가 완성된 거예요.

이후 김치는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지역마다 다른 스타일, 다른 조리법, 다른 스토리를 가지게 됩니다. 전라도식 젓갈 김치, 경상도식 짠맛 강한 김치, 강원도의 백김치처럼 말이죠. 김치는 시대와 지역을 담아내는 음식이 되었고,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역사와 문화가 배인 발효 유산으로 성장했습니다.




02 발효의 마법: 김치는 살아 있다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맛도 색도 다양한 김치 / 자료 출처 충남 농사랑


김치의 진짜 매력은 양념이나 아삭한 식감에만 있지 않아요. 깊고도 복합적인 맛의 중심에는 바로 '발효’가 있죠. 김치는 담그는 순간부터 스스로 숨을 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풍미가 깊어지는 살아 있는 음식이에요. 뚜껑을 열 때 들리는 '슉—' 소리는 단지 가스가 빠지는 소리가 아니라, 김치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발효란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며 새로운 맛과 향, 영양소를 만들어내는 자연의 작용이에요. 김치에선 유산균과 효소들이 채소의 당분을 젖산으로 바꾸며 산뜻한 감칠맛을 만들어냅니다. 덕분에 김치는 담근 직후엔 신선하고, 며칠이 지나면 시원하고 부드러우며, 시간이 더 흐르면 찌개에 딱 맞는 묵직한 신맛으로 바뀌죠. 같은 김치지만, 김치는 하루하루 다른 맛을 내는 음식이에요.



맛 뿐만 아니라 건강에 여러 영향을 미치는 김치 / 사진 출처 CJ 비비고 김치


이 발효 과정은 단순히 맛을 살리는 데 그치지 않아요. 김치에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유산균은 장 건강을 돕고, 소화를 원활하게 하며, 면역력까지 높여줘요. 실제로 김치 속 락토바실러스 플랜타럼 같은 유익균은 ‘천연 프로바이오틱스’로 주목받고 있어요. 여기에 비타민 A, C, K와 각종 미네랄, 식이섬유까지 골고루 들어 있어 저칼로리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죠.

무엇보다 김치는 늘 똑같지 않다는 점이 매력이에요. 똑같이 담가도 계절, 온도, 재료에 따라 발효 속도도, 맛도 조금씩 달라지죠. 그래서 김치는 똑같은 레시피로 담가도 매번 다른 맛을 내요. 김치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어요. 김치는 매일 새롭게 익어가며, 그때그때 다른 맛으로 우리를 반겨주니까요.




03 식탁을 넘어 문화로 이어지다



비빔밥, 김치 등 한국 음식을 사랑한다고 밝힌 배우 스칼릿 조핸슨 / 자료 출처 영화 매치 포인트


한때는 한국인의 밥상에서만 볼 수 있던 김치가, 이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음식이 되었어요. K-푸드의 중심에 선 김치는 발효 음식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건강식, 미식, 문화의 상징으로까지 자리잡았죠.

김치의 세계화는 뜻밖에도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시작됐어요. 배우 스칼릿 조핸슨은 김치를 즐겨 먹는 마니아로 알려져 있고, 기네스 팰트로는 팬데믹 당시 “김치를 통해 건강을 관리했다”고 밝히며 화제를 모았죠. 이런 셀럽들의 입소문은 김치를 더 이상 낯선 음식이 아닌, ‘힙한 건강식’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어요.

미국에서는 김치가 일부 커뮤니티를 넘어 주류 유통망에 진입하며 본격적으로 대중화됐어요. 월마트(Walmart), 홀푸드(Whole Foods), 트레이더조(Trader Joe’s), 코스트코(Costco) 등 대형 마트에서도 김치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종가김치와 비비고 김치의 활약으로 미국은 일본을 제치고 한국 김치 최대 수출국이 되었어요. 2023년 김치의 미국 수출액은 약 3999만 달러, 전년 대비 37.4% 증가할 만큼 빠르게 성장 중이에요.


미국과 유럽에 출시한 샘표의 캔 김치 자료 출처 샘표 



김치가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에 좋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 안에는 한국인의 삶의 방식과 손맛, 기다림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직접 재료를 다듬고, 버무리고, 숙성시켜 기다리는 과정 자체가 외국인들에겐 낯설면서도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와요.

김치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요리를 넘어서 국가와 사람을 이어주는 문화 체험이 되기도 해요.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김장 체험은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예요. 함께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며,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걸 경험하죠. 김치는 그렇게, 문화를 전하는 음식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실제로 2013년, 유네스코는 김장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하며 김치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어요. 이는 김장이 단순한 조리 문화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공동체의 기억과 지혜를 담은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에요.




04 김치, 브랜드가 되다


김치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음식이 되자, 이제는 단순한 전통 반찬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재탄생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담가 먹는 음식’으로 여겨졌던 김치가, 지금은 패키지 디자인부터 유통 전략까지 치열하게 기획되는 브랜드 제품으로 발전한 거죠.



영국 런던에 종가(JONGGA) 김치 팝업스토어를 오픈한 대상 / 자료 출처 대상


대표적인 예가 대상의 종가김치,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김치예요. 이들은 김치의 본고장인 한국에서 만든 정통 김치를 세계 시장에 맞게 리브랜딩하며,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담아낸 글로벌 전략을 펼치고 있어요. 전통 항아리를 연상시키는 패키지, 발효와 유산균을 강조한 메시지, 글로벌 셰프와의 협업 등으로 김치의 가치를 브랜드 언어로 풀어내고 있죠.

특히 이들은 '한국 김치 = 건강하고 정갈한 발효식품'이라는 인식을 만들기 위해, 김치를 신선한 K-라이프스타일로 포지셔닝하고 있어요. 김치가 단순히 밥상에 오르는 반찬이 아니라, 건강과 정체성을 동시에 담은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도록 설계하는 거예요.

이들은 전통적인 배추김치뿐 아니라 비건, 저염, 글루텐 프리 등 현지 소비자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변형 제품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젓갈을 사용하지 않은 비건 김치는 유럽과 북미에서 급증하는 비건 트렌드에 발맞춰 큰 인기를 끌었고, 저염 김치는 건강을 중시하는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죠.



‘세계 비건의 날’ 맞이해 젓갈 넣지 않은 ‘깔끔한 썰은김치 Vegan’을 출시한 풀무원 / 자료 출처 풀무원


무엇보다 이러한 전략은 단지 제품 개발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별 투자와 현지화 전략으로까지 이어졌어요. 대상㈜은 미국 LA에 연간 2000톤 규모의 김치 공장을 설립하고, 비건·백김치·피클무 등 10종의 김치를 현지 생산 중이에요. 최근엔 미국 아시안 식품회사 '럭키푸즈'를 인수하며 유통 채널도 넓히고 있죠.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단지김치에 특허 기술을 적용해 발효 품질을 안정화하고, 미국 소비자들이 더 신선하고 아삭한 김치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향후 70여 개 유통망으로 입점 확대를 계획 중이에요. 풀무원은 'Made in Korea'라는 정통성을 강조하며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고 있고, 농협도 ‘한국농협김치’ 브랜드로 100% 국산 재료를 내세워 현지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고 있어요.

이처럼 김치는 브랜드 전략을 통해 점점 더 글로벌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정체성에 맞닿은 식품으로 확장되고 있어요. 이제 'KIMCHI'는 단순히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단어가 아니라, 건강·정성·슬로우푸드·발효·공동체 등 다양한 가치를 담은 글로벌 키워드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05 김치, 요리로 다시 태어나다


김치는 더 이상 밥 옆에만 놓이는 반찬이 아니에요. 이제 김치는 요리가 되고, 식재료가 되고,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 되어 우리 식탁 위에 다시 태어나고 있어요. 샐러드에 김치를 올리고, 샌드위치에 바르고, 파스타에 김치를 볶아 넣는 건 더 이상 낯선 조합이 아니에요.


미∙유럽 식문화 반영한 대상의 ‘DIY 김치 페이스트’, ‘김치 스프레드’ / 자료 출처 대상 


김치를 하나의 요리로 바라보는 흐름은 산업에서도 빠르게 반영되고 있어요. 김치를 활용한 파스타 키트, 김치마요 소스, 김치맛 스프레드 같은 제품들이 매년 등장하고 있고, CJ제일제당과 대상은 김치요리 전용 제품군을 따로 구성해 판매 중이에요. 실제로 대상은 채소만 더하면 즉석에서 겉절이를 만들 수 있는 'DIY 김치 페이스트'를 출시했고, 오푸드(O’Food)는 김치를 잼처럼 바를 수 있도록 만든 '김치 스프레드'를 선보였어요. 햄버거, 비스킷, 샌드위치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서구권 소비 패턴을 고려한 결과물이에요. 김치는 이제 누구나 입맛과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해 쓸 수 있는 유연한 식재료로 확장되고 있는 거예요.

해외에서도 이 변화는 분명하게 감지돼요. 미국의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에서는 '김치볼(Kimchi Bowl)', '김치 누들(Kimchi Noodle)' 같은 메뉴가 이미 단골로 자리잡았고, 김치맛 라면과 김치 시즈닝 스낵은 대형 식품 브랜드들의 정규 제품으로 출시되고 있어요. 심지어 김치를 전면에 내세운 캐주얼 식당들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어요. 포틀랜드의 'Ssam'은 김치를 주재료로 한 한식 퓨전 샐러드를 대표 메뉴로 판매하고 있고, 뉴욕의 'Kimchi Smoke'는 김치와 훈제 고기를 접목한 남부 바비큐로 로컬 팬층을 탄탄히 쌓아가고 있어요.



한식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김치 로제 파스타 / 자료 출처 우리의식탁


김치는 이제 익숙한 맛을 재료로 삼아, 낯선 요리를 만드는 식재료가 되었어요. 발효와 정성, 전통의 이미지로만 소비되던 김치가 이제는 더 유연하게,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거예요. 이 유연함이야말로 김치가 앞으로도 식탁에 살아남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 될지도 몰라요.

김치는 오늘도 계속 요리되고 있어요. 예전처럼 정성껏 다듬고 절여 숙성시키는 방식으로도, 누군가의 식빵 위에 토핑으로 올라가는 방식으로도요. 익숙한 맛이 낯선 자리에 놓일 때, 우리는 그 음식을 다시 보게 될 수밖에 없어요. 김치는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게 식탁에 오르고 있어요.

*오늘의 레터는 이 링크의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3편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브랜드 피드 종가편 >

💡 종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02 종가 | 전통을 잡고 세계로, 김치 브랜드 ‘종가’

👉🏻03 종가 |  김치의 경험을 전 세계로 알리다




마이비레터 객원에디터 | 유정아


무색무취의 인간. 취향이 곧 정체성이 되는 사회에서 방황하지만, 그 길 위에서 글을 씁니다. 때로는 무던하게, 때로는 솔직하게. 한 가지로 규정되지 않기에 더 많은 가능성을 담아낼 수 있고,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기에 다채로운 이야기를 써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 정체 모를 유연함이 부족함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압니다. 특정한 취향에 갇히지 않기에 다양한 시선을 품을 수 있고, 고정된 틀을 거부하기에 다채로운 이야기를 써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자로서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독자에게 매력적으로 전하는 법을, 인하우스 에디터로서는 사람들이 열광할 이야기를 발견하는 법을 배워왔습니다. 그 시간들은 내가 쓰고 싶은 글과 사람들이 원하는 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힘이 되었습니다. 쉽게 소비될 이야기도 그 안에 의미의 씨앗을 심고, 누구나 곁에 두고 싶은 글로 만드는 것. 무색무취는 결국 모든 색을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editor | Bem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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