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우아한형제들 한명수 CCO | 잠깐,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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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떻게 일하고 있나요? 왜 일하고 있나요? 항상 브랜드를 이야기해 온 마이비레터가, 일하는 여러분은 어떤 브랜드인지 함께 되돌아 보고 더 나아가기 위해 질문을 던집니다. 브랜드를 만들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콘텐츠를 브랜드로/브랜드를 콘텐츠로 만든 비미디어컴퍼니 조수용 대표, 일의 격과 경영학을 이야기한 신수정 대표, 브랜딩의 구루 홍성태 교수 등 비마이비는 전문가의 전문가와 함께 각 분야에 대한 노하우뿐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묻고 답합니다. 그 태도에서 그들이 이루어 온 결과물의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의 주인공은 유쾌함으로 브랜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의 한명수 CCO입니다. 그는 본질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비주얼 결과물로 이를 풀어내며, 어떻게 조직을 이끌고 있는지 오늘의 인터뷰에서 확인해 보세요.

지난 조수용 대표, 신수정 대표, 홍성태 교수의 인터뷰는 하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방식을 일깨워 줄 질문과 답변을 계속해서 던지는 마이비레터. 다음 인터뷰이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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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과 일하는 방법에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우아한형제들. 이들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지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쉽고, 위트 있고, 명확한’ 획을 그어왔습니다. 특히 국민 배달 서비스인 ‘배달의민족’은 배달 플랫폼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서체, 공간, 콘텐츠를 배달의민족스럽게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시각물을 책임져 온 우아한형제들의 한명수 CCO. 지난 배달의민족 2.0으로의 리브랜딩은 물론, 심지어 조직 문화까지 담당하는 그는 스스로를 ‘회사의 때깔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저서 <말랑말랑 생각법>에서는 ‘재미없는 일도 재밌게 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며 유연하고 부들한 생각, 즉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창의성은 그의 직함에 있는 ‘크리에이티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디자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도, 내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적용될 수 있죠. 그 본질을 묻고 그것으로 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에서 의미 있고 재밌는 것이 나오는 것이죠. 그에게는 1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배달의민족(이하 배민)만의 때깔을 발산하며 업계의 패러다임을 만든 것, 그리고 지금의 우아한형제들의 조직 문화가 그 결과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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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명수 CCO / 자료 출처 김영사


나의 가치를 찾기 위한 체크리스트부터 지금까지의 배민을 만들어오고 15년 만에 새로운 옷을 입힌 리브랜딩의 인사이트, 그리고 일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까지. 그 말랑한 사고를 배우기 위해 창의 노동자 한명수 CCO(이하 명수님)를 마이비레터에서 만났습니다.




Q1. 명수님 안녕하세요. 최근 근황과 마이비레터 구독자들을 위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라는 회사를 11년째 다니고 있는 한명수입니다. 간당간당하게 아직 안 잘리고 일하고 있고요. (웃음) 제 이름 뒤에 붙는 CCO는 영어로 Chief Cultural/Creative Officer, 컬처 크리에이티브 부문 담당을 의미하는데요. 정량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정성적으로 회사에 유익한 이것저것을 다 하는 자리입니다. 동시에 리더부터 구성원들까지 원활히 소통하며 회사 일을 어떠한 방식으로 잘 해보자는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일도 하고 있고요.

그 외에도 회의실의 작은 안내문부터 외부 광고 제작물까지,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꽤 많아요. 회사가 지향하는 어디론가 마음과 생각이 갈 수 있도록 디렉션하고, ‘때깔’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조직 문화의 관점으로 보면 아티팩트, 콘텐츠 입장에서는 창작물,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아웃풋이라고 부르는 것들인데요. 각각의 호칭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그것들의 마감과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때깔을 담당하다


Q2. CCO로서 하는 일을 ‘때깔을 담당한다’고 표현하셨어요. 그 때깔을 여러 사람이 만들지만, 하나의 브랜드로서는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잖아요. 수십 명이 동일한 이해로 동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명수님은 어떻게 우아한형제들의 때깔을 관리하고 계신가요?

먼저 핵심 리더와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비본질과 본질에 대해 잘 설명하려고 해요. 제가 말하는 비본질이란 우리가 목숨 걸고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뜻해요. 예를 들어 포스터가 비본질의 극치이죠. 단지 종이 위에 형상화된 무언가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생각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상상하게 돼요. 결국 비본질을 통해 본질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보통 ‘본질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비본질 없이는 본질에 도달할 수 없어요. 다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다 보면 맹목적으로 비본질을 최종 목적지로 여기는 오류에 빠지곤 하죠.

그렇기에 저는 내부적으로 본질과 비본질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그리고 만드는 결과물을 이 기본 원리에 맞춰 나가고자 해요. 예를 들어, 열심히 결과물을 만든 뒤 팀원들에게 ‘근데 이거 왜 만들었게?’라고 질문을 던지는 거죠. 본질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이거는 버리고, 이건 아직 모자라니까 더 해보자’라는 의미 있고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어요.


보통의 일은 기존에 하던 것들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그것을 ‘못’ 하게 하는 것이 제 일이에요. 했던 방식대로 하면 잘 되죠, 예전에 했던 건데 안 될 수가 없죠. (웃음) 대부분의 일이 그런 속성을 갖고 있는데, 저는 이게 본질과 멀어지는 시작점이 거기에 있다고 봐요. 과거의 이유는 까먹기 마련이고, 현재의 이유와 과거의 이유가 같진 않거든요. 



결국 때깔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뉴얼만 가져갈 게 아니라,
본질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비본질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Q3. 우아한형제들이 리브랜딩을 진행한만큼, 리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를 안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배민이 15년 동안 톤앤매너를 유지해 오다가, 지난 10월 ‘배민(스타일) 2.0’으로의 리브랜딩을 결정한 것은 ‘이게 아닌데’하는 순간 때문이었을까요? 누가 먼저 이 변화의 필요를 제기했고, 그 신호는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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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인 변화부터 서비스 철학, 미션까지 새로 단장한 배민 2.0(좌), 배민의 새로운 미션(우)/ 자료 출처 우아한형제들 홈페이지


원래 비즈니스는 브랜드의 때깔을 입혀 소통을 하고, 여기에는 수명이 다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브랜드가 좀 늙었다, 좀 지루하다는 결국 주인이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거든요. 주인이 생각하기에 아직은 괜찮다면 기존의 브랜드를 계속 갖고 가는 거고, 변화가 필요하다겠다는 느낌을 가지면 브랜드에 변화를 주는 거죠. 사람도 그렇잖아요, 내가 지금껏 한 가지 스타일로만 살아왔지만 나이를 먹었으니 이렇게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요.

‘배달의민족’이라는 이름도 창업주가 직관적인 감각으로 툭 지은 것이기도 하고, 여러 좋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 10년 업력을 쌓아오다 보니 많은 고민이 생겼어요.
회사 이름(우아한형제들)과 브랜드 이름(배달의민족)은 왜 다르지, 여기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 회사 이름을 바꿔야 할까, 아니면 브랜드명을 ‘배민’으로 줄일까?


사실 2019년에 리브랜딩에 대한 시도가 이미 한 번 있었어요. 당시 리브랜딩 준비는 모두 마쳐 놓고 ‘이제는 결정하셔야 합니다. 할까요? 말까요?’라는 저의 물음에, 창업주께서는 결국 바꾸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하셨죠. 코로나 시기를 지나오고 수 년을 지나 환경이 바뀌며 ‘그때 바꿀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지금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감각과 결단, 그리고 타이밍이 맞아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요. 물론 꼭 변화가 답은 아닐 수 있어요. 그리고 브랜드를 바꾼다고 사실 사업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죠. 지금 시장에서 막 치열하게 경쟁하고 생존 중이니, ‘무슨 옷을 갈아입냐, 우선 싸우고 봐야지’라는 판단이 맞을 수도 있고요.

작년 초에 새로운 대표님이 오시고 회사 구조와 서비스 등 많은 것들에 변화가 있었는데, 그때 ‘이제는 이 이름과 느낌이 우리 미래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저는 원래 질문하는 사람인지라 대표님께 바꿔야 할 타이밍이라고 계속 이야기를 했어요. 직감적으로 바꿔야 할 때를 아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이 타이밍을 놓치면 기회가 또 훌쩍 지나가고, 나중에는 훨씬 큰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지금보다 서비스에는 레거시가 더 많이 붙을 것이고, 브랜드는 더 복잡해질 것이고, 결국 나중에 다이어트하려면 더 고생하게 되거든요.


Q4. 리브랜딩과 함께 새롭게 WORK체가 나왔어요. 기존 배달이친구들이나 한나체는 배민의 가장 상징적인 브랜드 자산 중 하나였는데, 그것을 ‘리셋’하는 일이 내부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나요? 규모나 구조로 보나 그 과정이 만만치 않으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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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 한나체와 배달이친구들 그래픽이 사용된 기존 앱 아이콘(좌), 새로운 WORK체가 적용된 ‘우아한 일원칙’ 포스터(우)
/ 자료 출처 우아한형제들 홈페이지


변화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한 끗의 잘못된 결정으로 회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어요. 특히 배달의민족은 배달 카테고리 안에서는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보니, 그 존재감과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하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작년 1월쯤부터 변화의 타이밍에 대한 내부의 공감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저희 회사는 해외의 의사결정 구조와 이해관계자들도 있다 보니, 여러 단계의 의사결정이 필요하거든요. 결국 여러 번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확신과 믿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바로 지금이 변화가 필요한 때이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 적기라고요.

리브랜딩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살짝만 바꾸는 것보다는 그냥 다 버리는 것에 가까워요. 십몇 년 동안 쌓은 브랜드 자산을 내려놓는 일이었기에,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당연히 걱정했어요.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버리면 어떡하냐”고요. 그에 대한 저의 답변은 “버려야 바꾸죠. 안 버리고 어떻게 바꿉니까.”였죠.


여러분, 우리 욕 바가지로 먹을 겁니다.
믿음을 주는 비결은 바로 솔직해지는 것이에요. 그 솔직함이란, 과정과 결과에 대한 솔직함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동일한 말을 하는 것도 포함이 되어요. ‘분명 이번 프로젝트(리브랜딩)를 통해 우리는 대외적으로 욕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질 것이다’라는 말을 의사결정권자뿐 아니라 2,700명의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똑같이 했어요. 대한항공도, 인스타그램도, 에어비앤비도 바뀌었을 때 우리가 그들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변화에도 사람들이 돌을 던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죠. 사실 모든 변화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분명히 변화가 필요했고, 그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겠지만 그것을 치르며 우리는 더 나아지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죠.

특히 저는 컨설턴트 같은 태도로 논리적 설득을 하기보다는 내부의 동료이면서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믿음의 언어를 사용했어요. ‘이렇게 하면 무엇이 좋아지고, 저렇게 하면 인식이 바뀌어 성공한다’라는 식이 아닌, ‘망할 수도 있지만 꾸준히 하면 좋아집니다. 확신을 갖고 같이 버텨보아요’ 같은 언어를 사용한 거예요. 그렇게 하나씩 승낙을 받아 갔죠. ‘아, 결국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진실되게 이야기하면 되는구나’라고 늘 느껴요.




#뻔하지 않아지는 방법


Q5. 트렌드를 꼭 모든 곳에 반영하지는 않더라도 업무 특성상 레이더를 항상 켜고 계셔야 할 것 같아요. 트렌드가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도 하고요. 명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트렌드’라는 것의 의미와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이제는 젊은 친구들처럼 유행을 직접 체험하거나 소비하진 않지만, 사실 학생 때부터 트렌드와 함께 살았죠. 두 자녀가 20대라, 가족 안에서 나와는 다른 세대가 하는 것들을 삶 속에서 보고 느끼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사람들이 계속 좋아하는구나, 이런 것들은 얼마 못 가겠네’하면서 나름의 해석을 하는 거죠. 요즘은 대체로 다 얼마 못 가겠네로 해석되는 것들이 많아요. 나다움을 지키는 방법은 따라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그늘에 있더라도 그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이거 정말 탐스럽네, 그렇지만 먹어봤자 얼마 못 갈 건데 뭐’라고 매번 되뇌는 거죠. 

특히나 혼자 개인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과 생각을 맞춰 일을 해야 하니까요. 저희 회사의 문화는 이런 방식으로 10년 이상 잘 쌓아온 것 같아요. 그 결과 다들 무언가에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해요. 물론 에디터, 디자이너, 브랜드 마케터, 스타일리스트 등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다 외부의 트렌드나 콘텐츠에 열려 있고 인풋을 많이 받아오죠. 다른 조직원들은 어디에서 영감과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요. 다만 항상 마지막의 결론은 그것을 우리의 일에 무작정 적용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 데 영향받아 패러디나 유사 작업을 하는 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일이거든요. 



외부의 변화에 대한 감각은 잃지 않되
다른 사람의 것을 따라 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를 지키는 것이죠.


Q6. 그렇다면 가장 뻔하지 않은 것을 하는 조직인 우아한형제들은 그 창의성을 조직적으로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요? 리더로서 조직적으로 불어 넣은 영향이나 자극이 궁금합니다.

저는 결국 후배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언젠가 쇠퇴할 사람이기에 대물림의 형식으로 영향을 미치려고 합니다. 누구나 사회에 나가 젊은 날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면서 자신의 무기를 갖추잖아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능력을 인정받으면 그 사람에게 리더의 책임과 직책을 맡기게 되고, 리더로서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죠. 다만 이 과정에서 내가 잘났다고 내 능력만 갖고 팀을 운영하는 방식은 참 안 좋아요. 그동안의 경험과 시간이 쌓였으니 그 덕에 제 머릿속에는 그림이 다 그려져 있고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 나와 함께 하는 친구들은 아직 그 길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할 때도 있죠. 그렇지만 이들에게 내 것만 불어 넣으면 결국 일방적인 관계가 되고, 조직의 성장이 지속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결과물도 일정 수준에 멈춰요.

그래서 저는 ‘내가 하는걸’ 멈췄죠. 서서히도 아니고, 곧바로 빠졌어요. 마이크로매니징을 멈추면 일시적으로 퀄리티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기다려야 하죠. 저의 목표는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저보다 잘할 수 있게 하는 것이거든요.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친구가 밤새 해온 고민을 믿습니다.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믿는 거예요’. 때로는 제 중간 확인이나 피드백 없이 상부 보고를 하러 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요. 물론 위에서 오는 온갖 챌린지는 제가 방어해 주고,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라면 제가 책임을 집니다.



믿을만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로 했으니 믿는 것입니다.


그 친구도 스스로가 부족한 것을 알아요. 그런데 누군가가 자기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친구에게는 주도성이 생기고 성장이 시작돼요. 그 뒤로 그 친구의 성장은 시간의 문제이죠. 제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내 주위의 사람들이 더 잘하게 되니, 얼마나 서로 행복한 일인가요? (웃음) 저는 씨앗만 뿌리고 이 씨앗에 맞는 농작법만 가이드 해주면 놀라운 열매가 열리는걸요. 


Q7. 명수님은 크리에이티브의 총괄이자 조직의 리더로서 어떠한 기준을 갖고, 결과물이 세상으로 나갈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하시는 역할이실 텐데요. 어떠한 것을 기준으로 삼으시나요? 특히 크리에이티브의 결과물은 우리다움을 유지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그 기준이 유연하면서도 단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맥락에 맞닿아 있으면 무조건 OK죠. ‘맥락’은 시간을 읽어내는 ‘통시적 관점’과 다양한 경우를 다 훑을 수 있는 ‘다층적 관점’의 결합이에요.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이 자연스러우면 쉽습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결과물이 부자연스럽다거나, 과시를 한다거나, 정의 자체가 안 맞는 관습 덩어리가 되죠. 맥락적 사고가 결과물에 녹아 있으면 무엇을 더하고 더하지 말아야 할지, 어디서 끝을 내야 하는지도 본인이 알아요. 그래서 맥락에 맞는지 볼 수 있는 객관적 시각을 갈고닦는 데에 노력을 하고, 또 팀원들에게 그렇게 알려주고 피드백해요. 대중들은 우리만큼 결과물에 집중해서 보지 않기 때문에,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맥락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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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우아한형제들의 일문화를 다루는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 자료 출처 ‘B컷 by 배민’ 홈페이지


Q8. 그렇다면 조직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4~5년차의 실무자라면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특히 마이비레터는 브랜드를 가꾸는 실무자들이 많이 보는만큼, 조언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저는 좋은 리더를 만날 수 있는 (서로에게 이끌리는) 중력과 (상대의 그릇 크기를 가늠하는) 검증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좋은 선배나 리더를 만나는 것이 운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나를 알아보게 하는 방법도 있거든요. 어떤 권한을 갖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기와 단계이기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진짜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본인이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은 현실을 건사하기에도 힘드니 그것을 잊고 그냥 일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어떻게 보면 인식의 훈련인 것이죠. 내가 지금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지만, ‘잠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고 스스로 물을 수 있는 감각인 것이죠.

그 질문을 한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누구나 내면에 무언가가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뭔지를 모른다’는 문제가 ‘그럼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죠. 리더들은 이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구성원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이 가장 먼저 가닿는 사람이 아마 주변의 리더일 것이거든요. 이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리더라면 그 사람과 한 단계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할 일이나 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면 관계의 수명은 줄어드는 것이죠. 



내가 작은 그릇 안에서 굳지 않도록
내가 처한 환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거예요.


다만 깨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환경을 찾고자 하는 의지도 중요해요. 깨닫더라도 움직이지 않고 수동적으로 그 환경에 머무는 것은 위험하거든요. 저희 조직 안에도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괜찮은 친구인데 작은 그릇의 리더를 만나 2,3년 동안 소모되기만 하는 것이죠. 이 친구를 훌륭한(잠재력과 쓰임을 잘 알고 옳은 방향을 제안할 수 있는) 리더에게 옮겨주면 바로 각성하고 확 성장합니다. 그러면 리더와 팀원이 시너지를 내서 둘 다 성장해요. 물론 환경을 옮겼는데 이전의 리더가 더 괜찮은 리더였을 수도 있어요. 스스로의 능력과,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환경에 대한 메타 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한명수라는 브랜드


Q9. 명수님은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올해로 디자이너로서 30년 가까이 일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을 처음 시작하셨을 때 느꼈던 재미와 의미가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동안 다양한 커리어를 통과하며 바뀌어 온 일에 대한 명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30대 후반 즈음이 왜 일을 하고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좋은 디자인이고 나는 무엇으로 기쁨을 얻는가에 대한 모든 자의식이 크게 뒤집어진 시기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성취와 ‘나’의 재능으로 기쁨을 얻었어요. 그러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좀 더 넓은 의미의 성취를 찾게 되었죠. 나와 함께 일한 친구와 후배들이 나의 도움과 기다림 덕에 또는 내가 조금 더 인정해 준 덕에 성취감을 느끼는 것처럼, 함께 누릴 수 있는 성취를 통해 일에 대한 의미가 한 단계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어요. 소모적인 일보다는 지속 가능한 것을 추구할 때 더 살맛 난다고 해야 할까요. 개인적인 내면의 삶에도 의미가 있고요.


Q10. 마지막으로, 한명수라는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사실 제가 ‘본인 입으로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짓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부터 제가 무엇을 이야기하든 다 거짓입니다. (웃음) 다만 제가 30대 후반에 정한 것이 있긴 해요. 저라는 사람은 일터, 가정, 신앙 공동체 등 여러 단체와 사회연결망에서 각기 다른 기대와 역할을 부여받는데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같은 언어를 쓰기로 했어요.

집에 있는 딸에게나, 회사에서 만나는 CEO나, 교회나 사회에서 만나는 누구나에게 동일한 태도와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예전엔 눈치를 많이 보며 상황마다 다른 가면을 쓰느라 녹초가 되곤 했어요. 지금은 때론 격식 없어 보이고 가벼워 보이는 것도 같지만, 저 스스로가 억지스럽지 않아 참 마음이 편합니다. 우리 아내는 가끔 걱정하긴 하는데, 무엇보다 제 두 자녀가 ‘우리 아빠는 어딜 가도 똑같다’며 제일 좋아해요. (웃음) 사실 이게 제가 아닌 다른 사람도 동의해야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질 텐데, 다행스럽게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한다는 말을 꽤 많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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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마이비 북토크 : 컬리 워큐멘터리 도서 <굿 센스> 🟪

컬리는 왜 성공담이 아닌
‘일하는 감각’을 책으로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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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성장 스토리를 콘텐츠로 남기는 일, 많은 브랜드가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컬리 역시 10주년을 맞아 컬리의 10년을 아카이빙하고자 했는데요.


우리가 일해온 방식을 기록해 두자는 목표에 이야기가 단편적인 글로 흩어져 휘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해져
화려한 성공담 대신 구성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일해왔는가'를 책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이번 북토크에서는 이 책을 직접 기획하고 펴낸 두 에디터,
이재연·이석창 님을 만나 컬리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기록한 과정을 들어봅니다. 


📚 <굿 센스> 북토크 개요 

 ◾ 주제 : 컬리인의 ‘일하는 감각’ | <굿 센스>를 기획하고 펴낸 에디터들의 이야기 수집기
◾ 연사 : 컬리 브랜드경험컨텐츠그룹 이재연, 이석창
◾ 일시 : 7월 2일 목요일, 오후 7:30 - 9:00
◾ 장소 : 비마이비 도산 스페이스 (강남구 언주로 727 트리스빌딩 2층)
◾ 참가비 : 10,000원
※ 도서 <굿 센스>는 별도로 제공되지 않으며, 현장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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