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green), 에코(eco),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하루에도 몇 번씩 보이는 단어들인데요. 그만큼 최근 친환경에 대한 관심과 이를 지향하고 실현하는 브랜드에게 가치의 기준을 세운다는 것이겠죠. 정부와 투자자들도 브랜드의 환경 행보를 중요하게 평가하는 중이고요. 이처럼 친환경은 브랜드들에게는 기본 소양이 되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친환경을 포장지로만 쓰는 브랜드들도 있어요. 재활용 소재 사용률이나, 환경친화적으로 제품을 만든다고 과장하는 식으로요. 이런 행위를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라고 부르고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고객도 판별의 눈을 점점 기르고 있고 그 기준 또한 높아지고 있어요. 그린 워싱이 발각(?)되는 순간 소셜 미디어에 공유되며,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 한 ‘진심’의 영역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에코’이죠. 그렇기에 제작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재부터 ‘식물성 섬유’를 사용한다면 환경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현재 야기되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인을 빗겨갈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정도 문제 해결과 차별화에 고민하는 브랜드라면 단순히 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 식물성 섬유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기 위함이지만요.
세련된 핸드백부터 지갑과 폰케이스까지 식물성 섬유가 활약할 수 있는 범위는 넓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꼭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어필하지 않아도, 패션 브랜드 그 자체로서 ‘사고 싶은 매력’을 만드는 브랜드들을 소개합니다.
01 톡톡 튀는 공간과 마케팅으로 꽃피운 녹색, 스탠드오일
스탠드오일은 개성있는 공간과 이벤트로 유명합니다 / 자료 출처 헤이팝 & 캐릿
강렬한 빨간색과 차분한 흰색이 눈을 사로잡는 성수동 매장. 트럭에 초대형 장미를 싣고 돌아다니고, 왕자님을 캐스팅해 서울 곳곳에서 신발을 신겨주는 이벤트. 스탠드오일은 개성 넘치는 공간과 이벤트로 국내외 고객을 사로잡은 패션 브랜드입니다. ‘일상에서 편하게 들고 다니는 데일리 백’을 키워드로 2018년 문을 열었죠. 10만 원대 가격과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대학생,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셀러브리티들이 사용해 더 유명해지면서 2022년 매출 200억 원을 기록했죠.
‘실용적인 아름다움’이 키워드인 스탠드오일의 제품들 / 자료 출처 스탠드오일 24 SUMMER CAPSULE COLLECTION
스탠드오일이 특별한 점은 모든 제품을 비건 레더(비동물성 가죽)으로 만들면서도, 그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스탠드오일 특유의 깔끔함과 실용성에 매력을 느끼고 제품을 구매하죠.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공간도 브랜드가 발전한다고 느끼게 하고요. 제품 구성도 고객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요. 2030을 메인 타깃으로 비건 레더 소재의 가방을 선보였고,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10대 고객의 의견을 수렴하여 패브릭 소재의 가방을 만드는 것이 한 예시이죠. 이렇게 애자일한 반응을 위해 샘플실을 별도로 구성해 둘 정도이고요. 그리고 가방 색깔과 모양을 제품명만 듣더라도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네이밍을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방을 편히 즐길 수 있도록 계속 발전시켜왔습니다.
새로운 슈즈 라인업도 일상에서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 자료 출처 패션포스트
최근 출시한 구두 컬렉션도 고객 수요에 주목한 결과인데요. 일상에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디자인에 발등이 편한 밴드, 폭신한 깔창, 쿠션을 더한 밑창 등으로 디테일을 보강했습니다. 물론 소재는 이전과 같이 비건 가죽이지만, 이번에도 친환경 대신 제품 자체의 컨셉과 컬렉션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스탠드오일 마케팅팀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브랜드가 커져도 스토리텔링을 중심에 두고, 소비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그 말처럼, 스탠드오일은 꼭 친환경을 강조하지 않아도 제품 자체의 매력, 브랜드만의 이야기를 고민할 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02 식물성이라고 얌전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비건타이거
우리나라에 ‘비건 패션’이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인 비건타이거 / 자료 출처 서울패션위크
비건타이거는 한국 비건 패션을 개척한 브랜드입니다. ‘비건 패션’이라는 표현 자체가 생소하던 2015년 런칭했는데요. 본래 패션 디자이너였던 양윤아 대표는 업계에서 벌어지는 동물 학대의 심각성을 깨닫고, 비영리단체에서 3년간 학대 고발 담당자로 일했어요. 이후 ‘동물 학대 없이 멋있는 패션’을 직접 만들자는 마음으로 브랜드를 선보였죠. 처음엔 낯설고 친환경만 앞세운다는 시선이 많았지만, 2017년부터 시선이 달라졌어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모피와 가죽 사용 중단을 발표하면서, 비건 패션에 대한 관심이 커졌거든요. 덕분에 이전부터 내공을 쌓아온 비건타이거도 같이 빛을 발할 수 있었죠.
소재의 차별성과 ‘친환경’이라는 표현 없이 그 자체로 멋진 옷들을 선보입니다 / 자료 출처 디자인프레스
비건타이거는 ‘멋있는’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하는 대신, 자연과 동물을 강렬한 색감과 화려한 패턴으로 재해석했어요. 진짜 같은 인조 모피부터 한지와 나일론을 합성해 만든 가죽 등 신소재도 꾸준히 개발했습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20년 2월엔 국내 비건 패션 브랜드 중 처음으로 뉴욕패션위크에 올랐습니다. <놀면 뭐하니> 속 유재석의 부캐 ‘지미 유’의 유니폼으로도 이름을 알렸죠.
비건타이거의 모든 디자인에는 ‘녹색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 자료 출처 Marie Claire KOREA
양윤아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는 ‘메시지’입니다. 옷에 패션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의 아픔을 다루고, 인조 소재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는 말을 담죠. ‘페이크가 가장 쿨하다(The Fake. The Coolest)’나 ‘내 털이지, 네 털이 아냐(My Fur. Not Yours)’처럼 직설적으로 보여줄 때도 있고, 동식물의 매력을 살려 포인트로 사용하기도 해요. 비건타이거는 이런 포인트들을 바탕으로, 그 자체로 매력적인 친환경 브랜드로 성장 중입니다. “비건 패션을 자랑할 수 있는 스타일로 만들고 싶다”는 양 대표의 말처럼요.
03 일관성이 없는 게 저희 매력이에요, 큐클리프
소재의 다양성 면에서 압도적인 브랜드, 큐클리프 / 자료 출처 큐클리프
큐클리프는 ‘이런 것도 재활용이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소재를 업사이클(upcycle)하는 브랜드입니다. 오가닉 코튼은 물론, 대표적으로 우산부터 현수막, 포스터, 버려진 의류, 밀가루 포대와 에어백까지. 총 15가지의 소재들을 다양한 제품으로 재창조하죠. 2016년 폐우산을 재활용한 카드 지갑으로 시작해, 소재의 범위를 넓히며 발전해 왔습니다. 지금은 폐자원 재활용을 넘어, 제품의 순환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개선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버려진 페트병 원사로 만든 현수막이 용도를 다하면 우산으로 만들고, 그 우산도 수명이 다 되면 파우치 등으로 만드는 거죠.
큐클리프의 우연정 디렉터는 초기에는 ‘우산 업사이클하면 큐클리프’를 목표로 일했어요. 특정 분야에서 명확히 이름을 알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옥외광고물협회에서 주최한 현수막 재활용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브랜드의 일관성’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공모전에 출품한 현수막 앞치마와 더블백을 살 수 없냐는 문의가 많았거든요. 우연정 디렉터는 그때 생각을 바꿔, ‘다양한 소재로 계속 새로움을 보여주자’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다룬 내공으로 하나뿐인 제품을 만드는 큐클리프 / 자료 출처 뉴스픽
얼핏 보면 일관성 없어 보일 수 있지만, 큐클리프는 오히려 그게 강점입니다. 다채로운 소재로 톡톡 튀는 제품을 만들 수 있거든요. 큐클리프는 이런 유연함을 살려 다양한 콜라보와 전시를 선보이고 있어요. 에어프레미아의 색깔을 담아 PET 재활용 섬유로 만든 파우치, 버려진 옷들과 PVC 재료를 조합한 지갑, 나이키 재고를 업사이클한 이벤트가 대표적이죠.
이제 큐클리프는 ‘업사이클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브랜드가 목표라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제품의 순환 전체를 친환경적으로 개선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예요. PET 섬유를 재활용해 만든 현수막이 용도를 다하면 우산으로 만들고, 그 우산도 다 쓰면 파우치로 만드는 거죠. 큐클리프는 식물성 섬유를 포함한 다양한 재료를 재해석하는 역량으로, ‘생활 속 업사이클’이라는 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04 환경을 지키는 것도, 매력적인 패션도 기본기가 핵심, 누스미크
선인장이 구두가 될 수 있을까요? 친환경 브랜드들은 많지만, 품질과 디자인까지 매력적인 브랜드들은 찾기 쉽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손을 탄 재료로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업사이클 슈즈 브랜드 누스미크는 신발의 기초에 집중해,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성장 중인 브랜드입니다.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누스미크의 신발들 / 자료 출처 NUOSMIQ 21 AW COLLECTION
누스미크는 ‘본질’을 뜻하는 그리스어 ‘누스(nuos)’에 디자이너 이니셜을 붙인 이름입니다. 10년 넘게 신발 디자이너로 활동한 김희선 대표가 ‘클래식한 편안함을 친환경적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담아서 지었어요. 누스미크는 비건 레더를 응용하고 쉽게 보기 어려운 선인장을 활용한 가죽으로 신발을 디자인하는데요. 여기에 더해 도시 폐기물들의 이야기, 코로나19 동안 느낀 삶의 무료함 등 독특한 주제로 컬렉션을 만들며 이야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디자인과 착화감 역시 동시에 챙기며,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습니다. 올해 초에는 밀라노 패션쇼에서 한복 브랜드 단하(Danha)와 함께한 라인업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2024년 초 단하와 콜라보한 밀라노 패션쇼 컬렉션 / 자료 출처 Danha Fashion Show
누스미크가 만드는 신발들은 단정하고 편합니다. 여기에 친환경이라는 기준을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적용했죠. 버려진 가죽으로 만든 첼시 부츠, 비건 레더에 인조털을 두른 레이스업 로퍼, 삼다수 페트병 재활용 원사로 만든 스니커즈 등. 누스미크는 ‘편안하면서 스타일까지 갖춘’ 고유한 기본기를 지키며 성장 중입니다.
05 고품질 ‘종이 가죽’으로 ‘진짜 에코백’을 만듭니다, 메일팩
메일팩은 자연에서 온 종이를 튼튼한 가방으로 만듭니다 / 자료 출처 세컨드히어로
누구나 하나는 가지고 있는 에코백. 일회용품을 덜 쓰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환경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어요. 2018년 덴마크에서는 환경 영향을 줄이려면 면 재질 에코백은 최소 7천 번 이상 써야 한다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캔버스 등으로 만들어진 에코백은 재활용도 어렵고요. 그 때문에 에코백이 마케팅 수단의 하나가 되었다는 우려도 큽니다.
메일팩은 말만 에코백이 아닌 ‘진짜 에코백’을 만듭니다. 종이를 ‘나무가 선물하는 가죽’으로 재정의하고, 종이 기반 원단과 실로 가방을 만들거든요. 나무도 불법 벌채 없이, 지속 가능하게 경영되는 산림에서만 공급받습니다. 별도 화학 처리나 코팅도 하지 않죠. 하지만 원단이 고밀도여서 자체적으로 방수가 되고, 기존 가죽 제품과 비교해도 품질에서 밀리지 않습니다.
메일팩 가방에는 만든 사람과 재료의 정보가 적혀 있습니다 / 자료 출처 무브먼트랩
메일팩의 가방들은 미니멀하고 디테일이 뛰어납니다. ‘아키타입(archetype)’ 시리즈는 크기를 10개로 규격화해, 자주 가는 공간별로 알맞은 가방을 살 수 있게 준비했어요. 로고나 장식은 최소화해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죠. 제품 패키지는 종이로 만들고, 포장 테이프도 실을 넣은 종이 재질 테이프를 사용해 환경 부담을 최소화합니다.
제조 과정과 재료 등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메일팩의 전시 / 자료 출처 무브먼트랩
메일팩은 브랜드의 과정도 다각도로 공유합니다. 중고 가구 플랫폼 무브먼트랩에서는 가방이 만들어지는 단계, 실제 사용된 재료들을 전시했어요. 수자원 NGO 단체와 콜라보해 우간다 식수 개발 프로젝트에 기부하고, 독립서점 인덱스숍과 함께 메일팩이 영감을 얻은 책과 자료 등을 전시하기도 했죠. 단순히 특이한 소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이로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와 이야기를 자세히 보여주며 고객과 소통합니다.
“낮은 가격의 에코백으로도 자신의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때 소비되는 가방이 메일팩이면 좋겠습니다.” 메일팩 브랜드 매니저의 인터뷰 내용인데요. 그동안의 행보와 제품들 덕분에 더욱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메일팩은 브랜드가 환경을 지켜야 하는 이유, 실천 방법 등에 대한 고유한 기준을 지키고 실천하면 ‘사고 싶은 친환경’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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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로도 브랜딩을 할 수 있다. 식물이라고 순한 것이 아닌, 충분히 매력적인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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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비레터 객원에디터 | 최진수
브랜드와 영화, 음악, 책, 공간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탐구하는 최진수입니다. 1일 1인사이트 뉴스레터 롱블랙, 진정성 있는 패션 웹진 온큐레이션, 그리고 브랜드에 진심인 비마이비까지. 브랜드와 마케팅에 대한 다채로운 시도들을 직접 경험하고, 탐구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꾸준하게 해 오고 있습니다. 항상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환영합니다.
‘한국 스트리트 패션’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 브라운브레스 (Brownbreath)가 저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제가 가장 닮아가고 싶은 브랜드입니다. 2006년부터 ‘메시지를 전파한다 (Spread the Message)’를 모토로 힙합 앨범, 전시회 등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왔습니다. 꾸준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에서 제가 떠올랐고,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브랜드입니다.
editor | BemyB
my B letter의 본문과 큐레이션을 포함, 비마이비의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비마이비에게 있습니다.
<비마이비의 모든 콘텐츠 자산의 무단 사용 및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콘텐츠의 활용을 금지합니다>
그린(green), 에코(eco),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하루에도 몇 번씩 보이는 단어들인데요. 그만큼 최근 친환경에 대한 관심과 이를 지향하고 실현하는 브랜드에게 가치의 기준을 세운다는 것이겠죠. 정부와 투자자들도 브랜드의 환경 행보를 중요하게 평가하는 중이고요. 이처럼 친환경은 브랜드들에게는 기본 소양이 되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친환경을 포장지로만 쓰는 브랜드들도 있어요. 재활용 소재 사용률이나, 환경친화적으로 제품을 만든다고 과장하는 식으로요. 이런 행위를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라고 부르고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고객도 판별의 눈을 점점 기르고 있고 그 기준 또한 높아지고 있어요. 그린 워싱이 발각(?)되는 순간 소셜 미디어에 공유되며,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 한 ‘진심’의 영역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에코’이죠. 그렇기에 제작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재부터 ‘식물성 섬유’를 사용한다면 환경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현재 야기되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인을 빗겨갈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정도 문제 해결과 차별화에 고민하는 브랜드라면 단순히 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 식물성 섬유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기 위함이지만요.
세련된 핸드백부터 지갑과 폰케이스까지 식물성 섬유가 활약할 수 있는 범위는 넓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꼭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어필하지 않아도, 패션 브랜드 그 자체로서 ‘사고 싶은 매력’을 만드는 브랜드들을 소개합니다.
01 톡톡 튀는 공간과 마케팅으로 꽃피운 녹색, 스탠드오일
스탠드오일은 개성있는 공간과 이벤트로 유명합니다 / 자료 출처 헤이팝 & 캐릿
강렬한 빨간색과 차분한 흰색이 눈을 사로잡는 성수동 매장. 트럭에 초대형 장미를 싣고 돌아다니고, 왕자님을 캐스팅해 서울 곳곳에서 신발을 신겨주는 이벤트. 스탠드오일은 개성 넘치는 공간과 이벤트로 국내외 고객을 사로잡은 패션 브랜드입니다. ‘일상에서 편하게 들고 다니는 데일리 백’을 키워드로 2018년 문을 열었죠. 10만 원대 가격과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대학생,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셀러브리티들이 사용해 더 유명해지면서 2022년 매출 200억 원을 기록했죠.
‘실용적인 아름다움’이 키워드인 스탠드오일의 제품들 / 자료 출처 스탠드오일 24 SUMMER CAPSULE COLLECTION
스탠드오일이 특별한 점은 모든 제품을 비건 레더(비동물성 가죽)으로 만들면서도, 그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스탠드오일 특유의 깔끔함과 실용성에 매력을 느끼고 제품을 구매하죠.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공간도 브랜드가 발전한다고 느끼게 하고요. 제품 구성도 고객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요. 2030을 메인 타깃으로 비건 레더 소재의 가방을 선보였고,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10대 고객의 의견을 수렴하여 패브릭 소재의 가방을 만드는 것이 한 예시이죠. 이렇게 애자일한 반응을 위해 샘플실을 별도로 구성해 둘 정도이고요. 그리고 가방 색깔과 모양을 제품명만 듣더라도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네이밍을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방을 편히 즐길 수 있도록 계속 발전시켜왔습니다.
새로운 슈즈 라인업도 일상에서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 자료 출처 패션포스트
최근 출시한 구두 컬렉션도 고객 수요에 주목한 결과인데요. 일상에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디자인에 발등이 편한 밴드, 폭신한 깔창, 쿠션을 더한 밑창 등으로 디테일을 보강했습니다. 물론 소재는 이전과 같이 비건 가죽이지만, 이번에도 친환경 대신 제품 자체의 컨셉과 컬렉션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스탠드오일 마케팅팀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브랜드가 커져도 스토리텔링을 중심에 두고, 소비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그 말처럼, 스탠드오일은 꼭 친환경을 강조하지 않아도 제품 자체의 매력, 브랜드만의 이야기를 고민할 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02 식물성이라고 얌전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비건타이거
우리나라에 ‘비건 패션’이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인 비건타이거 / 자료 출처 서울패션위크
비건타이거는 한국 비건 패션을 개척한 브랜드입니다. ‘비건 패션’이라는 표현 자체가 생소하던 2015년 런칭했는데요. 본래 패션 디자이너였던 양윤아 대표는 업계에서 벌어지는 동물 학대의 심각성을 깨닫고, 비영리단체에서 3년간 학대 고발 담당자로 일했어요. 이후 ‘동물 학대 없이 멋있는 패션’을 직접 만들자는 마음으로 브랜드를 선보였죠. 처음엔 낯설고 친환경만 앞세운다는 시선이 많았지만, 2017년부터 시선이 달라졌어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모피와 가죽 사용 중단을 발표하면서, 비건 패션에 대한 관심이 커졌거든요. 덕분에 이전부터 내공을 쌓아온 비건타이거도 같이 빛을 발할 수 있었죠.
소재의 차별성과 ‘친환경’이라는 표현 없이 그 자체로 멋진 옷들을 선보입니다 / 자료 출처 디자인프레스
비건타이거는 ‘멋있는’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하는 대신, 자연과 동물을 강렬한 색감과 화려한 패턴으로 재해석했어요. 진짜 같은 인조 모피부터 한지와 나일론을 합성해 만든 가죽 등 신소재도 꾸준히 개발했습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20년 2월엔 국내 비건 패션 브랜드 중 처음으로 뉴욕패션위크에 올랐습니다. <놀면 뭐하니> 속 유재석의 부캐 ‘지미 유’의 유니폼으로도 이름을 알렸죠.
비건타이거의 모든 디자인에는 ‘녹색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 자료 출처 Marie Claire KOREA
양윤아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는 ‘메시지’입니다. 옷에 패션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의 아픔을 다루고, 인조 소재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는 말을 담죠. ‘페이크가 가장 쿨하다(The Fake. The Coolest)’나 ‘내 털이지, 네 털이 아냐(My Fur. Not Yours)’처럼 직설적으로 보여줄 때도 있고, 동식물의 매력을 살려 포인트로 사용하기도 해요. 비건타이거는 이런 포인트들을 바탕으로, 그 자체로 매력적인 친환경 브랜드로 성장 중입니다. “비건 패션을 자랑할 수 있는 스타일로 만들고 싶다”는 양 대표의 말처럼요.
03 일관성이 없는 게 저희 매력이에요, 큐클리프
소재의 다양성 면에서 압도적인 브랜드, 큐클리프 / 자료 출처 큐클리프
큐클리프는 ‘이런 것도 재활용이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소재를 업사이클(upcycle)하는 브랜드입니다. 오가닉 코튼은 물론, 대표적으로 우산부터 현수막, 포스터, 버려진 의류, 밀가루 포대와 에어백까지. 총 15가지의 소재들을 다양한 제품으로 재창조하죠. 2016년 폐우산을 재활용한 카드 지갑으로 시작해, 소재의 범위를 넓히며 발전해 왔습니다. 지금은 폐자원 재활용을 넘어, 제품의 순환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개선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버려진 페트병 원사로 만든 현수막이 용도를 다하면 우산으로 만들고, 그 우산도 수명이 다 되면 파우치 등으로 만드는 거죠.
큐클리프의 우연정 디렉터는 초기에는 ‘우산 업사이클하면 큐클리프’를 목표로 일했어요. 특정 분야에서 명확히 이름을 알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옥외광고물협회에서 주최한 현수막 재활용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브랜드의 일관성’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공모전에 출품한 현수막 앞치마와 더블백을 살 수 없냐는 문의가 많았거든요. 우연정 디렉터는 그때 생각을 바꿔, ‘다양한 소재로 계속 새로움을 보여주자’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다룬 내공으로 하나뿐인 제품을 만드는 큐클리프 / 자료 출처 뉴스픽
얼핏 보면 일관성 없어 보일 수 있지만, 큐클리프는 오히려 그게 강점입니다. 다채로운 소재로 톡톡 튀는 제품을 만들 수 있거든요. 큐클리프는 이런 유연함을 살려 다양한 콜라보와 전시를 선보이고 있어요. 에어프레미아의 색깔을 담아 PET 재활용 섬유로 만든 파우치, 버려진 옷들과 PVC 재료를 조합한 지갑, 나이키 재고를 업사이클한 이벤트가 대표적이죠.
이제 큐클리프는 ‘업사이클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브랜드가 목표라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제품의 순환 전체를 친환경적으로 개선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예요. PET 섬유를 재활용해 만든 현수막이 용도를 다하면 우산으로 만들고, 그 우산도 다 쓰면 파우치로 만드는 거죠. 큐클리프는 식물성 섬유를 포함한 다양한 재료를 재해석하는 역량으로, ‘생활 속 업사이클’이라는 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04 환경을 지키는 것도, 매력적인 패션도 기본기가 핵심, 누스미크
선인장이 구두가 될 수 있을까요? 친환경 브랜드들은 많지만, 품질과 디자인까지 매력적인 브랜드들은 찾기 쉽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손을 탄 재료로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업사이클 슈즈 브랜드 누스미크는 신발의 기초에 집중해,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성장 중인 브랜드입니다.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누스미크의 신발들 / 자료 출처 NUOSMIQ 21 AW COLLECTION
누스미크는 ‘본질’을 뜻하는 그리스어 ‘누스(nuos)’에 디자이너 이니셜을 붙인 이름입니다. 10년 넘게 신발 디자이너로 활동한 김희선 대표가 ‘클래식한 편안함을 친환경적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담아서 지었어요. 누스미크는 비건 레더를 응용하고 쉽게 보기 어려운 선인장을 활용한 가죽으로 신발을 디자인하는데요. 여기에 더해 도시 폐기물들의 이야기, 코로나19 동안 느낀 삶의 무료함 등 독특한 주제로 컬렉션을 만들며 이야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디자인과 착화감 역시 동시에 챙기며,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습니다. 올해 초에는 밀라노 패션쇼에서 한복 브랜드 단하(Danha)와 함께한 라인업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2024년 초 단하와 콜라보한 밀라노 패션쇼 컬렉션 / 자료 출처 Danha Fashion Show
누스미크가 만드는 신발들은 단정하고 편합니다. 여기에 친환경이라는 기준을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적용했죠. 버려진 가죽으로 만든 첼시 부츠, 비건 레더에 인조털을 두른 레이스업 로퍼, 삼다수 페트병 재활용 원사로 만든 스니커즈 등. 누스미크는 ‘편안하면서 스타일까지 갖춘’ 고유한 기본기를 지키며 성장 중입니다.
05 고품질 ‘종이 가죽’으로 ‘진짜 에코백’을 만듭니다, 메일팩
메일팩은 자연에서 온 종이를 튼튼한 가방으로 만듭니다 / 자료 출처 세컨드히어로
누구나 하나는 가지고 있는 에코백. 일회용품을 덜 쓰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환경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어요. 2018년 덴마크에서는 환경 영향을 줄이려면 면 재질 에코백은 최소 7천 번 이상 써야 한다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캔버스 등으로 만들어진 에코백은 재활용도 어렵고요. 그 때문에 에코백이 마케팅 수단의 하나가 되었다는 우려도 큽니다.
메일팩은 말만 에코백이 아닌 ‘진짜 에코백’을 만듭니다. 종이를 ‘나무가 선물하는 가죽’으로 재정의하고, 종이 기반 원단과 실로 가방을 만들거든요. 나무도 불법 벌채 없이, 지속 가능하게 경영되는 산림에서만 공급받습니다. 별도 화학 처리나 코팅도 하지 않죠. 하지만 원단이 고밀도여서 자체적으로 방수가 되고, 기존 가죽 제품과 비교해도 품질에서 밀리지 않습니다.
메일팩 가방에는 만든 사람과 재료의 정보가 적혀 있습니다 / 자료 출처 무브먼트랩
메일팩의 가방들은 미니멀하고 디테일이 뛰어납니다. ‘아키타입(archetype)’ 시리즈는 크기를 10개로 규격화해, 자주 가는 공간별로 알맞은 가방을 살 수 있게 준비했어요. 로고나 장식은 최소화해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죠. 제품 패키지는 종이로 만들고, 포장 테이프도 실을 넣은 종이 재질 테이프를 사용해 환경 부담을 최소화합니다.
제조 과정과 재료 등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메일팩의 전시 / 자료 출처 무브먼트랩
메일팩은 브랜드의 과정도 다각도로 공유합니다. 중고 가구 플랫폼 무브먼트랩에서는 가방이 만들어지는 단계, 실제 사용된 재료들을 전시했어요. 수자원 NGO 단체와 콜라보해 우간다 식수 개발 프로젝트에 기부하고, 독립서점 인덱스숍과 함께 메일팩이 영감을 얻은 책과 자료 등을 전시하기도 했죠. 단순히 특이한 소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이로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와 이야기를 자세히 보여주며 고객과 소통합니다.
“낮은 가격의 에코백으로도 자신의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때 소비되는 가방이 메일팩이면 좋겠습니다.” 메일팩 브랜드 매니저의 인터뷰 내용인데요. 그동안의 행보와 제품들 덕분에 더욱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메일팩은 브랜드가 환경을 지켜야 하는 이유, 실천 방법 등에 대한 고유한 기준을 지키고 실천하면 ‘사고 싶은 친환경’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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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비레터 객원에디터 | 최진수
브랜드와 영화, 음악, 책, 공간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탐구하는 최진수입니다. 1일 1인사이트 뉴스레터 롱블랙, 진정성 있는 패션 웹진 온큐레이션, 그리고 브랜드에 진심인 비마이비까지. 브랜드와 마케팅에 대한 다채로운 시도들을 직접 경험하고, 탐구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꾸준하게 해 오고 있습니다. 항상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환영합니다.
‘한국 스트리트 패션’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 브라운브레스 (Brownbreath)가 저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제가 가장 닮아가고 싶은 브랜드입니다. 2006년부터 ‘메시지를 전파한다 (Spread the Message)’를 모토로 힙합 앨범, 전시회 등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왔습니다. 꾸준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에서 제가 떠올랐고,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브랜드입니다.
editor | Bem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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