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Curation]#216 도발적인 컨셉을 잡아라, 리퀴드 데스


죽은 영혼들이 되살아나는 날, 할로윈데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레터에서는 독특한 호러 컨셉을 지닌 브랜드 하나를 같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미국의 Gen Z들을 사로잡은 생수 브랜드, <리퀴드 데스>(Liquid Death)입니다. ‘죽음의 물’,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데요. 해골이 그려진 캔만 봐서는 에너지 드링크나 맥주처럼 보입니다.

갈증을 죽여라(Murder Your Thirst). 이 도발적인 슬로건으로 시작된 리퀴드 데스의 실험적인 여정은 마케팅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2017년 론칭 이후 7년 만에 연간 매출이 3천억 원을 넘기고 아마존 생수 분야 매출 1위를 달성한 리퀴드 데스. 지루한 생수업계에 반향을 일으킨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상식을 파괴하는 브랜딩과 유머러스한 마케팅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랜드. 리퀴드 데스가 세계적인 팬덤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을 함께 보시죠!



01 로커는 리퀴드 데스를 마신다


리퀴드 데스의 창업자 마이크 세사리오는 광고 디렉터 출신입니다.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의 바이럴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죠. 마이크에게는 특별한 취미가 하나 있었는데요. 그는 진성 헤비메탈 팬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헤비메탈에 심취했던 아마추어 뮤지션이었거든요. 



누가 봐도 헤비메탈 찐팬인 리퀴드 데스 CEO 마이크 세사리오 / 출처 워싱턴 포스트


마이크는 2008년 락 페스티벌 워프트 투어에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무대 위의 락커들이 에너지 드링크 음료 ‘몬스터’의 캔에 물을 담아 마시고 있었던 거죠. 락커가 무대에서 맥주나 에너지 드링크는 몰라도 멋없게 평범한 생수를 마실 수는 없었으니까요. 콘서트의 스폰서여서 제약이 있기도 했고요. 더 심각했던 건 락 페스티벌에 참석한 청소년조차도 몰래 맥주를 구해서 마시거나 고카페인의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문제점이었습니다. 


스트레이트 엣지를 상징하는 X 타투  / 출처 straightedge worldwid


마이크는 여기서 영감을 얻습니다. ‘스트레이트 엣지’를 타겟으로 생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트레이트 엣지란, 헤비메탈과 펑크는 즐기지만 술, 담배, 약물을 삼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물론 마이크도 스트레이트 엣지였습니다. 그는 락커를 위한 생수 브랜드를 개발하고 물 마시는 행위를 힙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렇게 2년간의 고민 끝에 ‘리퀴드 데스’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악마의 생수로 인간의 갈증을 죽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펑크감성이 가득한 강렬한 로고 / 출처 Liquid Death


리퀴드 데스는 유니크한 캔 디자인으로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는데요. 검정색 알루미늄 캔에 Liquid Death라는 고딕 레터링과 섬뜩한 해골 로고를 중앙에 넣었습니다. 결코 생수답지 않은, 캔맥주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은 메탈과 펑크 팬들의 덕심을 자극합니다. 세계적인 팬덤을 100명의 애매한 관심보다 1명의 확실한 팬심을 자극한 전략이 먹힌 것이죠. 




02 22만 명이 서명한 영혼 계약서 캠페인


리퀴드 데스는 에비앙, 코카콜라 등 대기업 브랜드와의 경쟁 속에서도 지난 3년간 세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특히나 진입장벽이 높은 미국의 생수 브랜드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답은 내일이 없는 브랜드처럼 보이는 ‘선넘는 마케팅’에 있습니다. 리퀴드 데스를 세상에 알린 첫 광고부터 남달랐거든요.


22억 원을 투자받은 바로 그 가짜광고 / 출처 Liquid Death 유튜브

마이크는 정식으로 제품을 출시하기 전, 시장성을 먼저 테스트하기 위해 오직 패키지만으로 가짜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여배우가 나와 갈증을 죽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꽁꽁 묶여있는 남자의 얼굴에 생수를 붓는 장면은 B급 광고 그 자체였는데요. 해당 광고는 4개월 만에 300만 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고, 무려 22억 원의 투자금을 확보하게 됐죠. 확신에 찬 마이크는 알프스의 샘물 업체와 물 공급 예약을 체결했고, 그렇게 2019년 진짜 리퀴드 데스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리퀴드 데스에게 영혼을 팔고만 비마이비의 영혼 계약서(좌) 토니 호크의 피가 들어간 스케이트 보드(우) / 출처 Liquid Death


홈페이지 멤버십 가입도 남달랐어요. ‘Sell your soul’ 영혼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요. 서명을 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영혼은 리퀴드 데스의 소유가 됩니다. 가입비가 무료이고 티셔츠 굿즈 증정하는 혜택이 함께 주어지죠. 여기서 계약에 서명하는 것을 넘어 계약을 실행해버리기도 합니다. 2021년 전설적인 스케이트보드 선수 토니 호크가 계약서에 서명을 했는데요. 이제 리퀴드 데스의 소유가 된 토니 호크의 피를 뽑아서 페인트에 섞은 다음 한정판 스케이트 보드 100개를 제작하는 다소 엽기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했어요. 이 스케이트 보드는 단 20분 만에 매진되었습니다. 


아기라고 봐주지 않는 마니악한 마케팅 / 출처 Liquid Death 


‘KILLER BABY NAMER’라는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해 아이 이름을 악마나 킬러의 이름으로 지으면 리퀴드 데스를 평생 공짜로 주기도 했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아기 이름 짓는 웹사이트도 만들었는데요. 성을 입력하기만 하면 무작위로 킬러 이름을 작명해 줍니다. 리퀴드 데스의 광고 전략은 한마디로 ‘지루하면 죽는다’가 아닐까요?




03 안티들을 정면돌파하는 미움받을 용기


마케팅 담당자를 해고해라 (Fire your Marketing Guy)

너희 사업이 망하길 바란다 (Go Out Of Business)

가장 바보같은 물 이름 (Bumbest Name Ever for Water)


2020년 발매된 리퀴드 데스의 ‘Fire Your Marketing Guy’ / 출처 Spotify


리퀴드 데스의 한 앨범에 수록된 노래 제목들이에요. 비난에 가까운 이 제목들의 출처는 리퀴드 데스 SNS에 달린 악플입니다. 선넘는 마케팅에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 악마를 모티브로 한 콘텐츠들은 크리스천 비율이 70프로나 되는 미국인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보통 브랜드 SNS 계정에 악플이 달리면 화난 고객들을 달래기 위해 빠르게 피드백을 주거나 법적 대응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요. 무슨 배짱인지 리퀴드 데스는 그걸 노래로 만들어서 출시해버립니다. 그야말로 미움받을 용기가 대단하죠. 


한술 더 떠서 바이닐(LP)도 출시했다  / 출처 Liquid Death


앨범 제목은 최고의 증오(Greatest Hates). 무려 10곡, 총 22분짜리 앨범을 출시했습니다. 심지어 기타리스트 제임스 말론, 드러머 거스 라오스 같은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반응이 더 뜨거웠고 리퀴드 데스를 저주하는 뮤직비디오도 보란듯이 제작합니다. 최고의 증오 앨범은 공개되자마자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에서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합니다. 


아이스티 광고중 헤비메탈을 부르는 할머니들 / 출처 Liquid Death


이러한 파격적인 시도 때문에 노인들이 싫어하는 브랜드로도 널리 알려져 있죠. 미국내 55세 이상 성인의 40%가 리퀴드 데스를 ‘싫어한다’고 응답했거든요. 그렇지만 이러한 여론에 굴할 브랜드가 아니죠. 리퀴드 데스는 신제품인 아이스티 3종을 출시했을 때 그들의 안티층인 ‘할머니’들의 에너지 음료로 포지셔닝 했습니다. 저칼로리, 저당, 비타민 등 건강을 신경 쓴 카페인 음료이니까요. 광고에서는 할머니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헤비메탈을 연주하며 킥복싱을 즐깁니다. 리퀴드 데스 부사장 그레그 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당신의 브랜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무언가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04 플라스틱 죽이기에 진심인 ESG 브랜드


‘플라스틱에게 죽음을(Death to Plastic)’. 리퀴드 데스의 메인 슬로건입니다. 슬로건을 보면 플라스틱을 완강하게 반대하는 ESG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해골이 그려진 마니악한 브랜드가 환경을 생각한다니, 정말 반전이지 않나요? 리퀴드 데스의 친환경 철학은 제품 패키지에서부터 드러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리퀴드 데스의 반전매력 / 출처 Liquid Death


리퀴드 데스는 모든 제품을 500mL 알루미늄 캔에 담아 판매합니다. 일반적인 생수 패키지 소재인 플라스틱은 미국 내 재활용 수준이 20%에 불과한데요. 플라스틱의 약 3배인 70%가량 재활용이 가능한 알루미늄으로 패키지를 제작한 것이죠. 더 나아가, 리퀴드 데스 1캔이 판매될 때마다 수익의 10%을 환경단체에 기부합니다. 마치 마이크의 롤 모델인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처럼 말이에요. 


‘플라스틱 사랑의 집’ 캠페인에 사용된 우표 스티커 / 출처 Liquid Death


2021년에는 플라스틱 병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대기업, 코카콜라를 저격하는 친환경 캠페인을 벌입니다. ‘플라스틱 사랑의 집’(Loving Homes for Plastic) 캠페인인데요. 온라인으로 리퀴드 데스를 주문하면 우표 스티커를 함께 줍니다. 이 스티커를 패트병에 붙여 우편함에 넣으면 코카콜라 본사로 배송됩니다. 이렇듯 ESG를 도발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리퀴드 데스만의 매력이죠. 


알프스를 강조하는 에비앙 로고 / 출처 evian


강렬한 비주얼과 컨셉에 숨겨져 있지만, 리퀴드 데스의 생수 퀄리티는 최상급입니다. 알프스 산맥에 흐르는 청정수를 운송해 100% 자연수를 판매해요. 아마존에서 평균 별점 4.6점에, 입점 조건이 까다로운 프리미엄 식료품점 홀 푸드 마켓에도 입점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퀴드 데스는 물에 대한 품질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직 “타도 플라스틱!”을 외치며 일관된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해 다른 생수 브랜드와 차별화된 길을 걸어왔어요. 




05 Entertain or Die!

광고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2024 칸 라이언즈’(Cannes Lions)에 리퀴드 데스의 CEO, 마이크 세사리오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올해로 71회를 맞는 프랑스의 국제 광고 페스티벌 칸 라이언즈는 매년 6월 셋째 주에 5일간 열리는 축제입니다. 마이크는 리퀴드 데스만의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에 대해 강연을 펼쳤는데요. 세미나가 열린 로톤드홀에 가장 많은 관객들을 끌어모은 연사였습니다. 행사장 외부까지 엄청난 인파가 몰리며 리퀴드 데스에 대한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의 관심이 집중됐죠. 


마이크 세사리오 리퀴드 데스 CEO / 출처 Brand Brief


세션 주제는 ‘Entertain or Die!’. 이제 광고가 재밌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메세지를 전합니다. 마이크는 광고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지만, 재밌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지 묻는다면 대부분 어려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광고는 쉽지만, 엔터테인먼트는 어렵다"라고 운을 뗐죠. 



마이크 세사리오 리퀴드 데스 CEO / 출처 Brand Brief


보통 대기업과 대형 브랜드는 광고와 마케팅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셀럽들을 모델로 내세워 제품의 기능이나 장점을 알리는데 주력합니다. 하지만 리퀴드 데스는 저예산으로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가성비 전략을 추구하고 있죠. 아이들과 임산부가 마치 맥주를 마시는 듯한 광고를 선보이는가 하면 악마와 지옥 등 생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를 내세우고, 기발하면서도 파격적인 전략으로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그는 "리퀴드 데스의 미션이자 모토는 사람들을 위한 건강한 음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플라스틱도 싫고, 아이들이 설탕이 가득한 음료를 마시는 것도 싫다. 몸에 좋은 건강한 제품을 만들면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친환경과 메탈컨셉에 유머를 녹여 앞으로가 더 궁금해지는 브랜드 리퀴드 데스. 리퀴드 데스는 이제 더 이상 마니악한 물 브랜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팬덤을 지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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