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익숙한 언어가 이루는 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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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과잉, 콘텐츠 과잉,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삽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잘 만든 광고 카피도 소음으로 들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광고 카피뿐만 아니라 상품이나 서비스 이용에 꼭 필요한 짧은 안내 문구도 휙 넘길 때가 많아요. 잘 알지 못하는 금융 상품을 이용하기 전엔 지레 겁부터 먹기도 하고요. 오늘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사용자에게 더욱 친밀한 경험을 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UX(User Experience) Writing을 살펴볼 거예요. 다들 준비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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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이 찾는 인재

카피라이터와 UX Writer의 차이는 이 표를 참고하면 이해가 빠를 거예요. @Anastasiia Marushevska

Copywriting과 UX Writing, 뭐가 다르냐고요?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카피라이팅은 사용자를 낚아채기 위한 후킹 메시지라면, UX Writing은 사용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언어예요. 즉, 사용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문체를 쓰는 게 핵심이죠. 사용자 경험이 브랜딩에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면서 여러 글로벌 기업에서는 UX Writer를 대거 채용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다소 가볍게 여겨지던 메뉴 버튼이나 상품 이용 안내 및 주의사항 등에 들어가는 문구도 이제 UX Writer들의 치열한 고민 끝에 들어간다고 해요.


Linkedin에 UX Writer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예요. @Rightbrain Lab님의 브런치


그러면 여러 글로벌 기업은 UX Writing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구글(Google)은 ‘사용자가 목적을 쉽게 달성하도록 도울 수 있는 카피를 작성하여 디자인과 제품의 경험 향상’, 애플(Apple)은 ‘언어에 대한 열정과 우아한 사용자 환경 만들기/아이디어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좋고 짧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능력’, 드롭박스(Dropbox)는 ‘복잡한 기술 대화를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요령/ 통제된 어휘 내에서 창의적이고 일관된 능력’ 등으로 UX Writing을 정의하고 있어요.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사용자의 편안한 경험을 위해 소통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럼, 이제 국내의 사례들을 볼까요?



잡초가 뽑힌 문장의 미

국내에도 UX Writing의 중요함은 이미 자리 잡았지만, 아직까지 UX Writer 공식 채용이 많진 않아요. 국내 기업 중 UX Writer를 공식 직군으로 둔 곳이 바로 토스(toss)인데요.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토스의 설립 목표는 금융의 혁신을 이루는 거예요. 혁신 대상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금융 정보의 평등을 이루는 것도 그에 해당합니다.

토스의 UX Writer는 단순히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를 만들고 서비스나 상품의 워딩을 작성하는 일을 하지 않아요. 엄밀히 말하면 텍스트 디자이너에 가깝죠. 사용자가 단번에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 용어를 소비자 언어로 치환하는 UX Writer에게는 문장 구사력, 어휘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적 감각도 중요하다는데요. 문장의 길이나 사용 단어가 심미적 요소를 해치지 않는지도 봐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불필요한 단어나 미사여구를 줄이는 작업이 핵심 작업 중 하나라고 합니다. (토스는 이 작업을 잡초 뽑기라고 합니다.)


토스의 UX Writing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잡초 뽑기! © 토스 공식 브랜드미디어, 토스피드


또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브랜드와 교감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이들의 역할이에요. 금융 서비스라고 하면 딱딱한 사무적인 태도를 떠올리기 쉬운데, 토스의 서비스를 받고 나면 마음이 부드러워져요. 돈으로 굴러가는 팍팍한 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되죠. 토스가 UX writing을 통해 내는 목소리만 들어도 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나요? 금융 정보의 허들을 낮추고, 금융 서비스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고자 하는 것 말이에요. 여러분의 브랜드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나요?

대출 잔액 안내 푸시 알림 before와 after. 따뜻한 격려에 마음이 뭉클해지네요. T_T © 토스 공식 브랜드미디어, 토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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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문구 편집숍의 관점

UX Writing은 판매보다 제품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제품에 집중하는 것도 판매를 위한 것 아니냐고요? 조금 달라요. 판매에 목적을 둔 카피는 해당 제품이 다른 것보다 뛰어나다는 걸 부각시키려 애쓰겠지만, 제품을 주목한 카피는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고 제품의 고유한 스토리를 말하거든요. 물론 ‘가장’, ‘최고’, ‘최초’를 사용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에요.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 정말 그 제품이 최고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제품의 스토리에선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봤을 때, 후자가 훨씬 사용자 친화적인 화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포인트오브뷰를 비롯한 여느 편집숍에서도 판매되는 사과 문진이지만, 이곳의 제품은 유독 특별하게 느껴져요. © 포인트오브뷰 홈페이지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의 카피를 보면 어떤 말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포인트오브뷰는 문구 편집숍으로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게 아닌, 타사 제품을 큐레이션 해서 판매하는 곳입니다. 편집숍 특성상 타 매장과 동일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제품에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어렵죠. 게다가 제품으로 자신들만의 색을 나타내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포인트오브뷰는 소비자들에게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관점을 제공합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제품이지만, 어디에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제품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발굴하죠. (실제로 제가 만난 한 인터뷰이는 P.O.V만의 관점에 끌려 제품을 구입한대요. 다른 편집숍에서는 구매하지 않고요.)


포인트오브뷰의 카피는 그 자체만으로도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제품에 끌린 것보다 포인트오브뷰의 해석에 감동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많은 브랜드가 고객에게 새로움을 주기 위해 고민할 텐데요. 꼭 상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지 않고도 새로움을 안길 수 있어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는 관점을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닐까요?



정체성이 담긴 당근마켓의 언어

당근마켓도 언어를 통해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냅니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앱이기 전에, 동네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소셜 커뮤니티예요. 당근마켓 이전에 동네 커뮤니티라고 하면 포털사이트의 지역 맘 카페를 비롯한 카페 중심으로 이뤄졌는데요. 가입부터 본인 인증까지 절차가 복잡하고,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근마켓에선 GPS로 간단하게 동네 인증을 할 수 있고, 인증만 하면 누구나 동네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죠.

당근마켓에서 사용자를 차단할 때 뜨는 알람 문구 

당근마켓은 이렇게 장벽이 낮은 동네 커뮤니티이다 보니 딱딱한 사무적인 말투보다 이웃끼리 나누는 대화체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사용자를 차단하기 전 띄우는 알림에서도 어떤 기능이 제한되는지 설명한 후 이 사람을 정말 차단하겠냐고 되묻는 식이죠. 그리고 차단을 한 후에는 ‘차단되었습니당.’ 이라고 안내를 띄워요. ‘~당’ 도 당근마켓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당근마켓만의 어투예요.


작년에는 이벤트로 당근 거래 장바구니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는데요.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당근이세요?’가 적힌 가방 말이에요. 이 질문은 당근마켓 이용자들이 실제 거래를 할 때 사용하는 말이에요. 거래자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묻는 말이죠. 당근마켓은 이렇게 사용자들의 실제 언어를 놓치지 않고 캐치해 당근마켓 공식 언어로 만들었어요. 커뮤니티만의 언어는 구성원들의 결속력과 유대감을 더 높여주는 것 같아요. 당근마켓의 UX Writing은 단순히 쉽고 간결한 표현이 아닌, 하나의 세계관이 되는 게 아닐까요? 이 사례를 보니, UX Writing이 요즘 최대 화두인 브랜드 팬덤을 만드는 일에도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뚜렷한 목소리를 내는 우아한 태도

앞선 브랜드들이 UX Writing을 사용하며 내는 공통된 효과가 있어요. 바로, 브랜드의 통일된 목소리를 낸다는 거예요. 브랜드의 어떤 담당자가 글을 쓰더라도 고객은 브랜드의 목소리를 헷갈려 하지 않아요. 언제나 동일한 브랜드 정체성을 경험하죠. 어떤 브랜드에선 이를 위해 내부 글쓰기 가이드를 만들기도 해요.우아한형제들’의 글쓰기 가이드 제작기를 보면 구성원들이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볼 수 있어요.


우아한형제들의 고객은 두 대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하나는 음식을 주문하는 고객들이라면, 다른 하나는 ‘배달의민족’에 입점하는 가게 사장님들이에요. 우아한형제들은 사장님들과의 소통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을 향상시키거나 유지하려면 입점 가게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려면 사장님들과 눈을 맞추고 사장님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해야 하죠. 처음엔 별문제가 없었을지 몰라도, 회사가 커지고 채널이 다양해질수록 각 채널마다 조금씩 다른 톤을 갖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래서 ‘우아한형제들 글쓰기 가이드’를 만들었대요. 구성원 어느 누구라도 ‘우아한형제’라는 브랜드로 말할 수 있도록요.

우아한형제들의 글쓰기 가이드 장표 중. © 김지현 님의 브런치, '글쓰기 가이드는 어떻게 써야 할까'

내부용이라 가이드 전문을 볼 순 없지만, ‘테크닉’이 아니라 ‘태도’를 핵심으로 잡았다는 점이 정말 인상 깊더라고요. 우리는 왜 사장님을 생각해야 하는가, 사장님을 생각한다는 건 무엇인가, 사장님을 생각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는가 등의 질문에 배민스러움으로 답하고 정의한 거죠. 그렇게 배민다운 태도를 합의한 덕분에 구성원들은 말투가 조금씩 다를지언정 일관된 브랜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해요. 우리가 누군가를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말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언변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에요. 나를 세심하게 살피는 그의 배려 덕분이죠. 결국 UX Writing은 상대를 얼마나 생각하느냐에 따라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잠깐! 글을 마치기 전에 수박 어워즈가 있겠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이번 사례로 소개된 토스가 그동안 수박레터에 무려 5번이나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을요. 

수박레터 역사상 최다 선정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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