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LG전자 HE사업본부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담당 오혜원 상무 | 브랜딩은 중력의 중심을 찾는 일
가전하면 LG, 그 중에서도 TV는 단연 LG의 올레드 TV입니다. 올레드 TV는 조금 더 특별한 브랜드입니다. 올레드 TV의 핵심 기술인 OLED(자발광형 소자, 오엘이디)는 아무나 구현해낼 수 없는 기술이기 때문이에요. 기술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가는 과정을 올레드 TV를 통해 볼 수도 있죠! 그런데 OLED가 뭐냐구요? 기술용어가 낯설 수 있는 수박레터 구독자를 위해, 간단한 설명을 시작으로 인터뷰를 시작할테니 걱정 마세요😉
혁신적인 기술이 이름이되고, 그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는 올레드 TV. 이 기술의 가치와 이름을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느낄 수 있도록 올레드 TV의 마케팅을 이끌고 있는 LG HE사업본부의 브랜드커뮤니케이션담당, 오혜원 상무가 2월 be, Brand의 주인공입니다.
01 올레드TV와 브랜딩
Q. 오혜원 상무님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LG HE사업본부의 브랜드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오혜원입니다. 제가 속한 LG전자의 HE(Home Entertainment) 사업부에서는 TV, 오디오, 뷰티 등 휴식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요. 휴미락이라고도 부르죠. 저는 HE 사업부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의 브랜딩 뿐 아니라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 중 특히 올레드 TV의 매력을 사람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담당’이 옛날 말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말의 무게를 느끼고 있어요. 꼭 임원이 아니어도 프로젝트에 책임과 권한을 갖고 프로젝트를 리드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커리어는 제일기획에서 시작했는데요, 거의 모든 브랜드를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많은 브랜드를 키워내었죠. 현재는 ‘올레드 TV’ 하나에만 집중해서 제 자식처럼 키우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수많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상무님이 느끼시는 올레드 TV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조직을 옮기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올레드 TV는 제가 제일기획 재직 당시에 경쟁자로서 저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그들의 기술이 부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잠시 올레드 TV를 잊고 있다가) 올레드 TV를 맡아서 같이 일해보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마치 학창 시절 첫 사랑을 떠올리는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돋았죠.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제일기획에서 LG전자로의 이동은 너무 먼 이동이잖아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길이었죠. 전 직장을 퇴사한 후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LG 임원분께서 만나자는 제의가 와서 가벼운 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죠. 전문가로서 저의 시각을 원하셔서 경쟁 관계의 관점에서 생각했었던 점을 솔직하게 모두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이 경청하시더라고요. 얘기가 끝나고, 앞으로 함께 일해보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제안을 주셨어요. 저를 어디에 쓸까라는 고민 보다는 우선 저와 함께 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신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었죠. 기존의 조직에 저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닌, 저 자체를 봐주신 것이니까요.
Q. 그렇다면 첫 사랑 같은 올레드 TV는 기존 TV와 무엇이 다른가요?
TV 기술의 기본 개념은 뒷판에서 광원 장치가 화면에 빛을 쏘는 것이에요. 그래서 아시는 것처럼 뒤가 뭉툭한 디자인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죠. 이후로 LCD가 개발되며 TV가 평평해지고 두께는 점점 얇아져도, 뒤에서 빛을 쏘는 방식이라면 두께와 활용에 한계가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빛을 내는 OLED (Organic Light Emitting Diode) 기술의 발견은 새로운 혁신이었죠. 별도의 광원 단자가 필요 없기 때문에 두께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고, 휘거나 투명한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그 활용은 무한대로 늘어나겠죠. 하지만 그 기술을 제품으로 구현해내는 것은 또 다른 과제였고, LG는 다른 모든 브랜드가 불가능하다며 손을 뗄 때에 포기하지 않고 결국 올레드 TV로 만들었습니다. 기술 이름은 ‘오엘이디’가 맞지만 저희가 ‘올레드’라고 부름으로써 고유의 브랜드가 되었어요.
올레드 TV로 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합니다. 투명 올레드 TV와 자동문의 결합 / [예시 이미지 출처 Live LG]
Q. 올레드 TV가 그만큼 독보적이고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만큼 비싼 가격은 하나의 진입 장벽인데요. 이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요즘 세대는 자신의 취향에 맞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몇 개월 할부가 되었던 사는 세대 잖아요. 가치를 아는 세대인 것 같아요. 저 같으면 그렇게 못해요. 가격만 보고 마음을 접기 보다는 이걸 내가 어떻게 쓸 거고 이걸 통해서 어떤 즐거움을 얻을 건지 분명하게 따져 보는거죠. 그래서 이들에게는 긴말하지 않고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디스플레이’라는 것을 어필하려 해요.
저희끼리는 올레드 TV 때문에 디스플레이 영역에서 눈 버렸다고 해요. 한 번 보고 나면 다른 디스플레이로는 올레드 TV와 같은 느낌을 낼 수 없기 때문이에요. (웃음)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거죠. 올레드 TV를 경험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올레드 TV를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앞으로는 그걸 포기할 수 없는 정도의 차이라고 자부해요. 우리는 한정된 시간을 살기 때문에 이왕이면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좋은 경험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올레드 TV / [자료 LiVE LG]
02 마케팅 | COG : 중력이 끌어당기는 중심을 찾기
Q. 그렇다면 상무님은 사람들이 올레드 TV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어떤 마케팅을 펼치시나요? 상무님이 생각하는 마케팅이 궁금합니다.
마케팅은 중력의 중심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COG(Center of Gravity),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중력의 중심인거죠. 건축하는 분과 얘기할때 COG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설계할 때에 COG를 가장 먼저 설계 하신대요. 예를 들어 카페를 만들 때에 카페 안에서도 한 스팟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드는 것이죠. 그 말이 마음에 너무 와 닿았습니다. 마케팅의 시각으로 보면 팬들이 열광할 하나의 브랜드를 만든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아미도 BTS라는 중심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고요. 그 중심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이 일의 매력이기도 해요. 흔히 말하는 세분화는 바로, 올바른 중심축을 찾아 그곳으로 축을 옮겨 두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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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중심을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에 두는 것이 아닌, 우리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옮겨 두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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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드 TV에도 이 COG를 찾는 일을 적용했어요. 올레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있겠지만 다 흩어져 있죠. 그런데 이들이 모이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흐름을 찾을 수 있어요. 저는 그 흐름을 SNS에서 찾았어요.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축을 갖고 모인다는 사실은 틀림 없었죠.
Q. 취향이 다양한 요즘, 그만큼 ‘축’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올레드 TV의 마케팅을 게임 인더스트리에 집중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원래는 어둠 속에서 안 보이던 것들이 올레드TV로는 보이기 시작했다는 반응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를 봐도 ‘반지의 제왕’도 어둠 속 적들이 보이고, ‘타이타닉’은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별이 보여 감동이 배가 되고요.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축이 게임이었어요. 게임이 가장 트렌디 했고, 무엇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주변에게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50만원짜리 모니터도 있지만 200만원 짜리 올레드 TV를 사고, 그 경험을 같은 유저들에게 자발적으로 ‘영업’하는 거죠.
저희는 ‘포르자 호라이즌’이라는 게임에 특히 집중했습니다. 게임 인더스트리에서 이 게임이 차지하는 포션은 미미하지만, 화질에 굉장히 민감한 게임이기 때문이에요. 게임 속에서 드라이빙하며 이들이 만나는 풍경은 단순 배경이 아니에요. 게임 도중에 멋진 경치를 만나면 스크린 샷을 찍어서 ‘베스트 뷰 포인트best view point’라는 해시 태그를 달고 유저들끼리 공유하는 일종의 문화예요. 그래서 진짜 같이 보이는 화질이 너무도 중요한거죠. 날씨의 변화도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예전에는 눈 오는 날 보이지 않던 눈 결정이 올레드 TV로 보니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이런 디테일한 포인트까지 구현한 포르자도 대단하긴 해요. (웃음)
소규모이긴 하지만 올레드로 이 게임을 경험해본 진짜 팬들을 모아서 오프라인 행사도 했어요.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는 행사를 통해 올레드에 대한 자부심을 우리만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죠. 우리 브랜드의 가치와 매력을 열광하는 사람들로 좁히고 좁혀서 들어간다는 면에서, 중심축 그들에게 옮긴다는 것은 팬덤 마케팅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올레드 TV와 게임, 그리고 팬들과의 만남 / [출처 youtube LG UK]
Q. 영국에서의 ‘게임’에 대한 좋은 기억이 금성오락실로 이어진 것일까요?
게임 인더스트리에 올레드 TV를 접목한 마케팅을 경험한 후, 우리나라에도 접목해 보려니 또 전혀 다른 시장인 거예요. '요즘 우리나라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특징이 뭘까?'를 찾다 보니 레트로와 럭셔리로 좁혀졌죠. 게임을 좋아한다라는 것은 같았지만 세부적인 특징은 달랐기 때문에 이들에게 맞는 중심축으로 조정해야했어요. ‘성수’라는 로컬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물이 ‘금성오락실’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성수에서 트렌디하게 즐기면서 ‘똑같은 게임이더라도 우리집 모니터랑 이렇게 느낌이 다르구나’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했죠. 나중에 가서 ‘내가 경험해보니 정말 좋았어’라는 기억과 함께 ‘여력이 되면 올레드TV를 사고싶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판단으로 오락실을 열었어요.
금성오락실 속 올레드 TV도 당장이 아닌 10년 후를 바라봅니다 / [사진 비마이비]
Q. 또 다른 축인 ‘아트’도 눈에 띕니다. 런던에서 올레드 TV를 활용한 미디어 아트 전시를 개최하셨죠?
게임에 더불어 ‘아트’는 또 다른 중심축이었어요. 아트는 제가 늘 관심 있었던 분야였고, 올레드 TV에 미디어 아트를 담으면 TV의 역할이 ‘수동적인 TV’에 국한 되지 않고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하나의 액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더 나아가 아트와 TV를 연관 지어,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고 발전이 된 거죠.
다양한 미디어 아트 작가들에게 저희 올레드 TV를 통해서 구현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를 만들고 함께 전시하자는 제안을 했어요. 런던 아트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열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13개의 작품이라는 보통의 미디어 아트 전시보다 작은 규모와 코로나 19로 움츠러든 상황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연일 매진되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위로를 드릴 수 있었어요. 싸지 않은 티켓 가격에도 유기적이고 자발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고, 현장 모습을 틱톡에 담아 자신만의 콘텐츠로 재가공한 분도 계셨죠. 사람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면서 저도 뿌듯함과 위로를 받았어요.
아직 미디어 아트가 받아 들여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분명 미래의 아트는 디지털 캔버스 속으로 들어갈 거라고 예상해요. 그때가 되었을 때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면, 올레드 TV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크겠죠?
런던 아트갤러리 180 스튜디오(180 The Stran)에서 열린 빛, 현대미술의 새 물결(LŪX, New Wave of Contemporary Art)에서 올레드 TV가 구현한 미디어 아트 / [자료 Live LG]
03 커리어와 조직 생활
Q. 앞서 커리어를 제일기획에서 시작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당시 하셨던 일도 궁금합니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제일기획에서 태어났다고 얘기해요. 어릴 때 입사한 첫 직장이자 25년을 함께 한 직장이기 때문이에요. 제일기획에서 했던 일을 역순으로 말씀드리자면, 3년 동안은 글로벌 제작본부장(CCO)로서 글로벌에 관련된 모든 클라이언트의 제작 및 서비스를 책임지는 역할을 했어요. 그 전에는 오랫동안 국내 광고를 했는데요, 전자 브랜드를 포함해서 금융 브랜드와 건설 브랜드까지 거의 모든 산업의 브랜드를 한 번씩은 다 겪어보며 커뮤니케이션의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었죠.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브랜드를 만나며 남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일에 대한 가치와 즐거움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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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하나의 브랜드에 집중하며 브랜드를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요. 브랜드의 생로병사를 함께 하는 전체의 스펙트럼을 보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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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즐거움만으로 꾸준히 커리어를 지속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상무님만의 숨겨진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를 끌어가는 원천은 호기심이에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끝없이 궁금해했죠. ‘이 브랜드는 어떻게 태어났고 왜 이런 이름을 달게 되었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죠. 덕분에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즐거웠고, 다음 맡을 브랜드로 새로운 호기심으로 연결됐어요.
저희끼리는 유모라고 표현해요. 남이 잘 낳은 브랜드라는 자식을 막 잘 먹이고 예쁘게 입혀서 남들 눈에도 예뻐 보이게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결국에는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손댈 수 없는 부분에 대한 허탈함과 허전함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말씀드렸던 ‘호기심’이 저를 현재의 브랜드 ‘담당’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호기심이 안테나라고 생각해요. 안테나는 의도적으로 열어야 하는 것이잖아요. 남에 대한 관심을 접지 않고 열어 두는 것이죠. 이 안테나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은 일종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안테나를 펼치고 있어요. 총량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힘 조절을 하는 거죠. 언제 에너지를 끌어 올리고 어떻게 배분하냐에 따라, 에너제틱하고 호기심 넘치는 사람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되는 것이에요.
Q. 상무님은 어떤 리더이세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원칙 한 가지만 말씀해주세요.
저는 원칙을 세우지 않는 리더에요. 제가 친구들에게 주는 반응도 일관적이지 않죠. 사실 마케터는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매일매일 다른 일을 접해야 하는 업이잖아요. 그것이 마케팅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이렇게 진짜 매일 변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원칙이나 신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 대신에 제가 지키는 것이 있어요. 만약 어제와 오늘의 제 디렉션이 달랐다면 바로 솔직하게 사과해요. ‘내가 부족하고 변덕 부려서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하고 다시 협의하는 거죠.
제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없고, 잘 할 수도 없으니 그럴 때에는 도움을 받습니다. 도움을 받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저에게 그 도움이란 이양하는 것인데요.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일종의 모병제이죠. 가장 하고 싶은 사람에게 키를 맡기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모아요. 그러다 보니, 주니어가 프로젝트의 메인을 맡은 후에 나이가 있는 책임이 도와줘도 되냐고 묻는 뿌듯한 상황도 벌어지곤 하죠.
추진력이 있다 보니 일을 할 때는 일에 집념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 무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외에는 인간적으로 친근한 매력이 이런 점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웃음)
Q. 상무님의 커리어를 존경하고 같은 길을 걷는 주니어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마케터로서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마케터는 매일 같은 루틴을 포기한, 흔들리는 배에 탄 사람이죠. 그래서 배가 흔들릴 때 나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티면 오히려 멀미해요. 이 방향으로도 저 방향으로도 흔들려봐야 해요. 누구와 함께 타고 있는지에 따라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시너지가 날 수 있어서, 비정형의 일을 하는 즐거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5년차까지는 인풋할 시기거든요. 저도 청소년기까지 읽었던 책을 통해 얻은 인문학적 지식이 글로벌 업무를 하며 사람들을 만났을 때 빛을 발했어요. 딴짓도 분명 자신이 갈망하는 쪽으로 하게 되어있어요. 다양하게 시도하고, 서로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나누고, 각자 또 다른 해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경험을 하고 사람과 부딪히는 것이 다음 20년을 살게 하는 자산이 되어 줄 거예요.
04 '오혜원'이라는 브랜드
Q. 상무님에게 좋은 브랜드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좋은 브랜드란 (27년 동안 변함없이) 떠올렸을 때 행복을 주는 브랜드에요. 이 기준이 저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 만들기도 하는데, 수많은 브랜드가 제 손을 거쳐 갔기 때문에 내가 그 브랜드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줬을까 하는 숙제를 항상 던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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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는 왜 광고를 해?’라고 사람들이 물어볼 때 광고로 세상 사람들에게 위로와 선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 한다고 얘기하거든요. 브랜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생기는 그런 브랜드가 좋고, 그래서 저도 책임감이 생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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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오락실 문 닫는 날 아침에 20대 중반 남성분이 음료수를 몇 개 들고 오셨어요. 입구 앞에 있는 직원들한테 나눠 주시곤 90도로 인사하시면서 “그동안 너무 행복했습니다”라고 하시는데, 그 모습은 평생 잊지 못 할거예요. 직장이 근처여서 점심시간마다 30분씩, 어떤 날은 밥도 안 드시고 1시간씩 거의 매일 오셔서 스트레스를 풀고 가셨대요. ‘금성오락실’이 일시적인 팝업으로 끝날 수 있는 브랜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에게는 ‘떠올렸을 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브랜드’였던 거죠. 그 날 보람을 느끼면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Q. 상무님은 어떤 브랜드 좋아하세요?
이것도 매일 바뀌지만, 브랜드의 행보를 볼수록 ‘어? 이게 된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브랜드가 부러워요. 저는 대기업 스타일이라 정교하게 맞춰진 일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그런 브랜드들로부터 신선한 충격을 받아요. 대표적인 브랜드는 무신사였어요. 그 브랜드가 좋다 싫다가 아니라, 처음 무신사의 의미를 들었을 때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다’라는 것을 알고 ‘이게 젊은 애들하고 소통하는 방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직관적인 줄임말로 브랜드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놀라웠죠. 저는 가질 수 없는 접근법이였어요.
또 하나를 꼽자면, 구찌를 좋아합니다. 레거시를 갖고 있되 끊임 없이 변신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쌓아온 자산을 내려 놓고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는 유연성이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남녀의 구별도 없죠. 그래서 구찌를 좋아합니다
2월 be, Brand의 주인공, 오혜원 상무 / [사진 비마이비]
Q. 마지막으로 오혜원이라는 브랜드가 궁금합니다.
오혜원은 진짜 매일매일이 달라요. 자고 나면 매일 얼굴이 바뀌는 영화 <뷰티인사이드> 주인공처럼요. 저는 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제 만났던 나와 지금의 제가 다르고, 오늘의 나는 이걸 좋아했지만 내일은 또 다른걸 좋아하겠죠. 그런 스스로를 좋아해요. 그래서 매일 변신하는 브랜드라고 말하고 싶어요.
가전하면 LG, 그 중에서도 TV는 단연 LG의 올레드 TV입니다. 올레드 TV는 조금 더 특별한 브랜드입니다. 올레드 TV의 핵심 기술인 OLED(자발광형 소자, 오엘이디)는 아무나 구현해낼 수 없는 기술이기 때문이에요. 기술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가는 과정을 올레드 TV를 통해 볼 수도 있죠! 그런데 OLED가 뭐냐구요? 기술용어가 낯설 수 있는 수박레터 구독자를 위해, 간단한 설명을 시작으로 인터뷰를 시작할테니 걱정 마세요😉
혁신적인 기술이 이름이되고, 그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는 올레드 TV. 이 기술의 가치와 이름을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느낄 수 있도록 올레드 TV의 마케팅을 이끌고 있는 LG HE사업본부의 브랜드커뮤니케이션담당, 오혜원 상무가 2월 be, Brand의 주인공입니다.
01 올레드TV와 브랜딩
Q. 오혜원 상무님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LG HE사업본부의 브랜드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오혜원입니다. 제가 속한 LG전자의 HE(Home Entertainment) 사업부에서는 TV, 오디오, 뷰티 등 휴식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요. 휴미락이라고도 부르죠. 저는 HE 사업부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의 브랜딩 뿐 아니라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 중 특히 올레드 TV의 매력을 사람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담당’이 옛날 말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말의 무게를 느끼고 있어요. 꼭 임원이 아니어도 프로젝트에 책임과 권한을 갖고 프로젝트를 리드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커리어는 제일기획에서 시작했는데요, 거의 모든 브랜드를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많은 브랜드를 키워내었죠. 현재는 ‘올레드 TV’ 하나에만 집중해서 제 자식처럼 키우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수많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상무님이 느끼시는 올레드 TV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조직을 옮기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올레드 TV는 제가 제일기획 재직 당시에 경쟁자로서 저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그들의 기술이 부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잠시 올레드 TV를 잊고 있다가) 올레드 TV를 맡아서 같이 일해보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마치 학창 시절 첫 사랑을 떠올리는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돋았죠.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제일기획에서 LG전자로의 이동은 너무 먼 이동이잖아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길이었죠. 전 직장을 퇴사한 후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LG 임원분께서 만나자는 제의가 와서 가벼운 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죠. 전문가로서 저의 시각을 원하셔서 경쟁 관계의 관점에서 생각했었던 점을 솔직하게 모두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이 경청하시더라고요. 얘기가 끝나고, 앞으로 함께 일해보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제안을 주셨어요. 저를 어디에 쓸까라는 고민 보다는 우선 저와 함께 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신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었죠. 기존의 조직에 저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닌, 저 자체를 봐주신 것이니까요.
Q. 그렇다면 첫 사랑 같은 올레드 TV는 기존 TV와 무엇이 다른가요?
TV 기술의 기본 개념은 뒷판에서 광원 장치가 화면에 빛을 쏘는 것이에요. 그래서 아시는 것처럼 뒤가 뭉툭한 디자인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죠. 이후로 LCD가 개발되며 TV가 평평해지고 두께는 점점 얇아져도, 뒤에서 빛을 쏘는 방식이라면 두께와 활용에 한계가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빛을 내는 OLED (Organic Light Emitting Diode) 기술의 발견은 새로운 혁신이었죠. 별도의 광원 단자가 필요 없기 때문에 두께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고, 휘거나 투명한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그 활용은 무한대로 늘어나겠죠. 하지만 그 기술을 제품으로 구현해내는 것은 또 다른 과제였고, LG는 다른 모든 브랜드가 불가능하다며 손을 뗄 때에 포기하지 않고 결국 올레드 TV로 만들었습니다. 기술 이름은 ‘오엘이디’가 맞지만 저희가 ‘올레드’라고 부름으로써 고유의 브랜드가 되었어요.
올레드 TV로 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합니다. 투명 올레드 TV와 자동문의 결합 / [예시 이미지 출처 Live LG]
Q. 올레드 TV가 그만큼 독보적이고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만큼 비싼 가격은 하나의 진입 장벽인데요. 이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요즘 세대는 자신의 취향에 맞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몇 개월 할부가 되었던 사는 세대 잖아요. 가치를 아는 세대인 것 같아요. 저 같으면 그렇게 못해요. 가격만 보고 마음을 접기 보다는 이걸 내가 어떻게 쓸 거고 이걸 통해서 어떤 즐거움을 얻을 건지 분명하게 따져 보는거죠. 그래서 이들에게는 긴말하지 않고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디스플레이’라는 것을 어필하려 해요.
저희끼리는 올레드 TV 때문에 디스플레이 영역에서 눈 버렸다고 해요. 한 번 보고 나면 다른 디스플레이로는 올레드 TV와 같은 느낌을 낼 수 없기 때문이에요. (웃음)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거죠. 올레드 TV를 경험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올레드 TV를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앞으로는 그걸 포기할 수 없는 정도의 차이라고 자부해요. 우리는 한정된 시간을 살기 때문에 이왕이면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좋은 경험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올레드 TV / [자료 LiVE LG]
02 마케팅 | COG : 중력이 끌어당기는 중심을 찾기
Q. 그렇다면 상무님은 사람들이 올레드 TV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어떤 마케팅을 펼치시나요? 상무님이 생각하는 마케팅이 궁금합니다.
마케팅은 중력의 중심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COG(Center of Gravity),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중력의 중심인거죠. 건축하는 분과 얘기할때 COG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설계할 때에 COG를 가장 먼저 설계 하신대요. 예를 들어 카페를 만들 때에 카페 안에서도 한 스팟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드는 것이죠. 그 말이 마음에 너무 와 닿았습니다. 마케팅의 시각으로 보면 팬들이 열광할 하나의 브랜드를 만든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아미도 BTS라는 중심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고요. 그 중심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이 일의 매력이기도 해요. 흔히 말하는 세분화는 바로, 올바른 중심축을 찾아 그곳으로 축을 옮겨 두는 일이에요.
올레드 TV에도 이 COG를 찾는 일을 적용했어요. 올레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있겠지만 다 흩어져 있죠. 그런데 이들이 모이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흐름을 찾을 수 있어요. 저는 그 흐름을 SNS에서 찾았어요.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축을 갖고 모인다는 사실은 틀림 없었죠.
Q. 취향이 다양한 요즘, 그만큼 ‘축’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올레드 TV의 마케팅을 게임 인더스트리에 집중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원래는 어둠 속에서 안 보이던 것들이 올레드TV로는 보이기 시작했다는 반응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를 봐도 ‘반지의 제왕’도 어둠 속 적들이 보이고, ‘타이타닉’은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별이 보여 감동이 배가 되고요.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축이 게임이었어요. 게임이 가장 트렌디 했고, 무엇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주변에게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50만원짜리 모니터도 있지만 200만원 짜리 올레드 TV를 사고, 그 경험을 같은 유저들에게 자발적으로 ‘영업’하는 거죠.
저희는 ‘포르자 호라이즌’이라는 게임에 특히 집중했습니다. 게임 인더스트리에서 이 게임이 차지하는 포션은 미미하지만, 화질에 굉장히 민감한 게임이기 때문이에요. 게임 속에서 드라이빙하며 이들이 만나는 풍경은 단순 배경이 아니에요. 게임 도중에 멋진 경치를 만나면 스크린 샷을 찍어서 ‘베스트 뷰 포인트best view point’라는 해시 태그를 달고 유저들끼리 공유하는 일종의 문화예요. 그래서 진짜 같이 보이는 화질이 너무도 중요한거죠. 날씨의 변화도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예전에는 눈 오는 날 보이지 않던 눈 결정이 올레드 TV로 보니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이런 디테일한 포인트까지 구현한 포르자도 대단하긴 해요. (웃음)
소규모이긴 하지만 올레드로 이 게임을 경험해본 진짜 팬들을 모아서 오프라인 행사도 했어요.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는 행사를 통해 올레드에 대한 자부심을 우리만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죠. 우리 브랜드의 가치와 매력을 열광하는 사람들로 좁히고 좁혀서 들어간다는 면에서, 중심축 그들에게 옮긴다는 것은 팬덤 마케팅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올레드 TV와 게임, 그리고 팬들과의 만남 / [출처 youtube LG UK]
Q. 영국에서의 ‘게임’에 대한 좋은 기억이 금성오락실로 이어진 것일까요?
게임 인더스트리에 올레드 TV를 접목한 마케팅을 경험한 후, 우리나라에도 접목해 보려니 또 전혀 다른 시장인 거예요. '요즘 우리나라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특징이 뭘까?'를 찾다 보니 레트로와 럭셔리로 좁혀졌죠. 게임을 좋아한다라는 것은 같았지만 세부적인 특징은 달랐기 때문에 이들에게 맞는 중심축으로 조정해야했어요. ‘성수’라는 로컬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물이 ‘금성오락실’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성수에서 트렌디하게 즐기면서 ‘똑같은 게임이더라도 우리집 모니터랑 이렇게 느낌이 다르구나’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했죠. 나중에 가서 ‘내가 경험해보니 정말 좋았어’라는 기억과 함께 ‘여력이 되면 올레드TV를 사고싶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판단으로 오락실을 열었어요.
금성오락실 속 올레드 TV도 당장이 아닌 10년 후를 바라봅니다 / [사진 비마이비]
Q. 또 다른 축인 ‘아트’도 눈에 띕니다. 런던에서 올레드 TV를 활용한 미디어 아트 전시를 개최하셨죠?
게임에 더불어 ‘아트’는 또 다른 중심축이었어요. 아트는 제가 늘 관심 있었던 분야였고, 올레드 TV에 미디어 아트를 담으면 TV의 역할이 ‘수동적인 TV’에 국한 되지 않고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하나의 액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더 나아가 아트와 TV를 연관 지어,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고 발전이 된 거죠.
다양한 미디어 아트 작가들에게 저희 올레드 TV를 통해서 구현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를 만들고 함께 전시하자는 제안을 했어요. 런던 아트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열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13개의 작품이라는 보통의 미디어 아트 전시보다 작은 규모와 코로나 19로 움츠러든 상황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연일 매진되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위로를 드릴 수 있었어요. 싸지 않은 티켓 가격에도 유기적이고 자발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고, 현장 모습을 틱톡에 담아 자신만의 콘텐츠로 재가공한 분도 계셨죠. 사람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면서 저도 뿌듯함과 위로를 받았어요.
아직 미디어 아트가 받아 들여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분명 미래의 아트는 디지털 캔버스 속으로 들어갈 거라고 예상해요. 그때가 되었을 때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면, 올레드 TV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크겠죠?
런던 아트갤러리 180 스튜디오(180 The Stran)에서 열린 빛, 현대미술의 새 물결(LŪX, New Wave of Contemporary Art)에서 올레드 TV가 구현한 미디어 아트 / [자료 Live LG]
03 커리어와 조직 생활
Q. 앞서 커리어를 제일기획에서 시작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당시 하셨던 일도 궁금합니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제일기획에서 태어났다고 얘기해요. 어릴 때 입사한 첫 직장이자 25년을 함께 한 직장이기 때문이에요. 제일기획에서 했던 일을 역순으로 말씀드리자면, 3년 동안은 글로벌 제작본부장(CCO)로서 글로벌에 관련된 모든 클라이언트의 제작 및 서비스를 책임지는 역할을 했어요. 그 전에는 오랫동안 국내 광고를 했는데요, 전자 브랜드를 포함해서 금융 브랜드와 건설 브랜드까지 거의 모든 산업의 브랜드를 한 번씩은 다 겪어보며 커뮤니케이션의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었죠.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브랜드를 만나며 남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일에 대한 가치와 즐거움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Q. 즐거움만으로 꾸준히 커리어를 지속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상무님만의 숨겨진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를 끌어가는 원천은 호기심이에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끝없이 궁금해했죠. ‘이 브랜드는 어떻게 태어났고 왜 이런 이름을 달게 되었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죠. 덕분에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즐거웠고, 다음 맡을 브랜드로 새로운 호기심으로 연결됐어요.
저희끼리는 유모라고 표현해요. 남이 잘 낳은 브랜드라는 자식을 막 잘 먹이고 예쁘게 입혀서 남들 눈에도 예뻐 보이게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결국에는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손댈 수 없는 부분에 대한 허탈함과 허전함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말씀드렸던 ‘호기심’이 저를 현재의 브랜드 ‘담당’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호기심이 안테나라고 생각해요. 안테나는 의도적으로 열어야 하는 것이잖아요. 남에 대한 관심을 접지 않고 열어 두는 것이죠. 이 안테나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은 일종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안테나를 펼치고 있어요. 총량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힘 조절을 하는 거죠. 언제 에너지를 끌어 올리고 어떻게 배분하냐에 따라, 에너제틱하고 호기심 넘치는 사람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되는 것이에요.
Q. 상무님은 어떤 리더이세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원칙 한 가지만 말씀해주세요.
저는 원칙을 세우지 않는 리더에요. 제가 친구들에게 주는 반응도 일관적이지 않죠. 사실 마케터는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매일매일 다른 일을 접해야 하는 업이잖아요. 그것이 마케팅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이렇게 진짜 매일 변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원칙이나 신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 대신에 제가 지키는 것이 있어요. 만약 어제와 오늘의 제 디렉션이 달랐다면 바로 솔직하게 사과해요. ‘내가 부족하고 변덕 부려서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하고 다시 협의하는 거죠.
제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없고, 잘 할 수도 없으니 그럴 때에는 도움을 받습니다. 도움을 받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저에게 그 도움이란 이양하는 것인데요.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일종의 모병제이죠. 가장 하고 싶은 사람에게 키를 맡기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모아요. 그러다 보니, 주니어가 프로젝트의 메인을 맡은 후에 나이가 있는 책임이 도와줘도 되냐고 묻는 뿌듯한 상황도 벌어지곤 하죠.
추진력이 있다 보니 일을 할 때는 일에 집념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 무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외에는 인간적으로 친근한 매력이 이런 점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웃음)
Q. 상무님의 커리어를 존경하고 같은 길을 걷는 주니어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마케터로서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마케터는 매일 같은 루틴을 포기한, 흔들리는 배에 탄 사람이죠. 그래서 배가 흔들릴 때 나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티면 오히려 멀미해요. 이 방향으로도 저 방향으로도 흔들려봐야 해요. 누구와 함께 타고 있는지에 따라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시너지가 날 수 있어서, 비정형의 일을 하는 즐거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5년차까지는 인풋할 시기거든요. 저도 청소년기까지 읽었던 책을 통해 얻은 인문학적 지식이 글로벌 업무를 하며 사람들을 만났을 때 빛을 발했어요. 딴짓도 분명 자신이 갈망하는 쪽으로 하게 되어있어요. 다양하게 시도하고, 서로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나누고, 각자 또 다른 해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경험을 하고 사람과 부딪히는 것이 다음 20년을 살게 하는 자산이 되어 줄 거예요.
04 '오혜원'이라는 브랜드
Q. 상무님에게 좋은 브랜드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좋은 브랜드란 (27년 동안 변함없이) 떠올렸을 때 행복을 주는 브랜드에요. 이 기준이 저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 만들기도 하는데, 수많은 브랜드가 제 손을 거쳐 갔기 때문에 내가 그 브랜드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줬을까 하는 숙제를 항상 던져요.
금성오락실 문 닫는 날 아침에 20대 중반 남성분이 음료수를 몇 개 들고 오셨어요. 입구 앞에 있는 직원들한테 나눠 주시곤 90도로 인사하시면서 “그동안 너무 행복했습니다”라고 하시는데, 그 모습은 평생 잊지 못 할거예요. 직장이 근처여서 점심시간마다 30분씩, 어떤 날은 밥도 안 드시고 1시간씩 거의 매일 오셔서 스트레스를 풀고 가셨대요. ‘금성오락실’이 일시적인 팝업으로 끝날 수 있는 브랜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에게는 ‘떠올렸을 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브랜드’였던 거죠. 그 날 보람을 느끼면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Q. 상무님은 어떤 브랜드 좋아하세요?
이것도 매일 바뀌지만, 브랜드의 행보를 볼수록 ‘어? 이게 된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브랜드가 부러워요. 저는 대기업 스타일이라 정교하게 맞춰진 일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그런 브랜드들로부터 신선한 충격을 받아요. 대표적인 브랜드는 무신사였어요. 그 브랜드가 좋다 싫다가 아니라, 처음 무신사의 의미를 들었을 때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다’라는 것을 알고 ‘이게 젊은 애들하고 소통하는 방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직관적인 줄임말로 브랜드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놀라웠죠. 저는 가질 수 없는 접근법이였어요.
또 하나를 꼽자면, 구찌를 좋아합니다. 레거시를 갖고 있되 끊임 없이 변신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쌓아온 자산을 내려 놓고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는 유연성이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남녀의 구별도 없죠. 그래서 구찌를 좋아합니다
2월 be, Brand의 주인공, 오혜원 상무 / [사진 비마이비]
Q. 마지막으로 오혜원이라는 브랜드가 궁금합니다.
오혜원은 진짜 매일매일이 달라요. 자고 나면 매일 얼굴이 바뀌는 영화 <뷰티인사이드> 주인공처럼요. 저는 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제 만났던 나와 지금의 제가 다르고, 오늘의 나는 이걸 좋아했지만 내일은 또 다른걸 좋아하겠죠. 그런 스스로를 좋아해요. 그래서 매일 변신하는 브랜드라고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