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블리의 창업자 박소령 (전) 대표의 도서 <실패를 통과하는 일>은 사직서에 개인인감을 찍고 개인인감증명서를 제출하는 1인칭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그녀의 기억을 따라 지난 10년 동안 퍼블리가 시작되어 매각이 되는 과정의 재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펀드레이징/공동창업/전시 CEO/레이오프/주주 관계 등 스타트업의 일대기에 필요한 내용도 있어, 각 시기마다 고민이 있는 분들에게 조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과거에 일어난 ‘나의 기억’과 현재에 하는 ‘지금의 생각’이 휘몰아치다가 땅에 착륙하며 마무리를 짓죠.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실패의 모든 순간을 차갑게 기록한 ‘이 이야기의 결론이 과연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데요. 커버에 그려진 한밤중의 차가운 호수 위 물결처럼, 잔잔하게 여러 생각이 밀려오며 결말 이후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실패란 무엇일까요? failure의 어원인 faller는 라틴어로 ‘속이다’라는 뜻이 있다고 하네요. 이 책의 제목처럼 실패는 결론이 아닌, 통과하는 행위 그 자체 혹은 통과해야 하는 일에 그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패와 성공’의 차이를 ‘미련과 아쉬움’의 차이로 재정의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얼마나 용기를 내어 시작했고 후회 없이 어디까지 가봤고, 그래서 그게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해보지 않아 영원히 묻어 있는 후회가 아닌, 설령 계획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아쉬움이겠죠. 그래서 ‘그다음엔 생각했던 결과물에 보다 더 가깝게 해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성공을 향하는 중이면서도 실패를 통과하고 있다고 느낄지도 몰라요.
비마이비가 박소령 대표를 만나 실패를 통과해본 ‘박소령’이라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 오늘 인터뷰의 일정 부분은 박소령 대표의 신간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 대한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박소령 대표에게 큰 힘이 되어준 퍼블리의 전 동료(소리(전 멤버십 사업 리더), 소희(전 운영 조직 총괄), 광종(전 커리어리 사업 리더))가 등장합니다!
00. 안녕하세요, 마이비레터 구독자 여러분에게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안녕하세요, 박소령입니다. 저는 2015년 퍼블리를 창업해, 2024년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현재 안식년을 보내며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동안의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Q01. 그동안 개인적으로 해오신 기록도, 출간 제안도 많이 받아 출간의 기회가 그동안 많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개되지 못할 뻔했던 이야기를 이 시점에 공개하셨던 계기가 있으셨나요? 원고를 준비하셨던 과정도 궁금합니다.
우선 이 책의 원고는 스스로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책에도 등장하는 소리(전 멤버십 사업 리더), 소희(전 운영 조직 총괄), 광종(전 커리어리 사업 리더)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초고는 올해 1월 중순부터 썼고, 이 과정에서 소리의 도움이 컸죠. 소리에게 두 가지 부탁을 제가 했어요. 나를 쪼으며 데드라인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을 해줄 것, 그리고 첫 번째 독자로서 솔직한 피드백을 줄 것. 처음에는 두 달 내에 10개의 챕터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일주일에 2개의 챕터를 써야 했네요), 한 챕터씩 작성해서 보냈어요. 첫 번째 챕터를 읽고 바로 소리의 반응은 "이건 밖으로 안 내기엔 아깝다, 그리고 내가 아는 너라면 밖으로 낼 것 같다”였습니다. 그 이후로 챕터가 전개되는 동안 소리는 저에게 계속해서 확신을 주었습니다. 처음에 소리는 ‘이 글을 누구에게까지 공유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 역시 글을 쓰며 천천히 고민했어요. 우선 저는 지난 10년 동안 덕분에 잘 살았다는 의미를 담아, 진심으로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동시에 저에게 미래를 위한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었죠. 이 조건들에 맞는 분들을 떠올리다 보니, 초고를 마무리할 때쯤 20명을 추릴 수 있었어요.
3월 20일 정도에 완성된 초고를 이분들에게 쭉 메일을 드리고, 4월 12일 토요일 오후(회사를 처음 세운 날짜는 4월 15일), 마지막까지 있었던 성수동 카우앤독에 모여서 일종의 프라이빗 북토크를 열었습니다. 그렇게 여섯 분이 일정이 가능하다고 답변을 주셨고, 함께 모여 글을 읽고 난 뒤 저에게 주실 수 있는 조언을 나누었어요. 또한 이 초고의 향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요. 정해두고 시작한 것은 없었기에 역시 의견이 상당히 갈렸어요. 과연 이 초고를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을지, 낸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낸다면 그 형태가 꼭 책이어야 할지, 어떤 포맷의 콘텐츠여야 할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죠. 어떤 분은 기억을 헤집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았겠냐는 염려도 해주셨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책으로 나왔고, 어쩌면 사실 저는 직관적으로는 밖으로 내보이고 싶었나 봐요. 다만 그에 대한 이유는 직관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유를 한 달 정도 여러 가지로 막 고민했어요. 결국 시작은 나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였지만,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라면 나에게도 세상에도 의미 있는 안식년이 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었죠.
Q02.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서는 실패를 날 것의 기록으로 다루었어요. NEXT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요. 실패 이후의 성공 혹은 미화가 아니라 더욱 진실한 기록이라고 느껴지는데요. 그렇기에 오히려 처음부터 ‘실패에 대한 이야기’로 방향을 잡으셨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키워드가 나왔을까요?
사실 편집자님은 저에게 제목에 들어갔으면 하는 키워드가 있는지 물었는데, 저는 없다고 답했었어요. 이 책이 나오기까지 원고를 7번 정도를 뒤엎었다고 할 정도로 톤앤매너나 문체, 내용 등을 많이 바꿨는데, 그 이유는 차갑고 호수 같은 느낌의 드라이한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출판사에서 제시한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좋았어요. 실패라는 키워드가 전면에 나와 있는 것이 멋부리지 않고 담백하며 드라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7월 즈음에 6월 무렵 쓴 원고를 다시 보니, 몇 번의 퇴고를 거쳤음에도 여전히 저의 감정이 너무 많이 묻어 있어 유치하고 깊이가 얕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제목 역시 주변의 의견을 좀 들어 봤는데, 실패라는 키워드가 좀 밋밋하다, 혹은 전면에 내세워서 잘 된 사례가 많지 않아 리스키 하다 등의 솔직하고 감사한 의견도 있었죠.
다만 저의 약점을 선제적으로 밝히고 진솔한 기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최근에 ‘아르슬란 전기’를 읽었는데, 주 내용은 아르슬란은 왕의 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왕위에 오른다는 것이에요. 이때 조언자가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감추지 말고 처음부터 당당하게 밝히자, 그래야만 이 약점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하지 않고 되려 그것이 강점이자 보호막이 된다’라는 조언을 해요. 아르슬란은 이 조언을 따르죠. 이 이야기가 너무 인상 깊었던 무렵에 ‘실패를 통과하는 일’이라는 제목을 받아, 그 의미가 더 와닿았죠. 그리고 저는 ‘책’은 팔아야 하는 상품이고 저의 역할과 의무는 충실하게 그 책의 내용을 쓰는 것,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잘 만들고 잘 파는 방법을 아는 전문가인 출판사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책을 읽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실패를 통과하는 일’ / 자료 출처 북스톤
Q03. 대표님과 퍼블리의 10년의 기록과 10개의 씬이 담긴 이 책, 이 중에서 가장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파트는 어디일까요?
저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어느 분이 읽어도 이 책의 내용과 배경을 이해하시기에 가장 적절한 파트가 아닐까 해요. 프롤로그를 가장 마지막에, 에필로그는 그 직전에 쓴 글이다보니 저의 생각이 가장 잘 정리된 부분이기도 하고요. 제가 100일 동안 곰처럼 마늘과 쑥만 먹으며 동굴에서 글만 썼었기 때문에, 가장 압축적으로 정리된 부분이 이 두 부분이었어요.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가장 보편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10개의 파트는 당연히 현재의 상황과 직업, 역할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Q04. 그렇다면 퍼블리와 함께 한 10년 중 가장 기뻤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을 꼽아주신다면요?
가장 신났을 때에는 전시 CEO로 살았던 12월 31일이었어요. 실제로 성과가 나오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후회했던 적도 없었고요. 더구나 그 과정과 성과를 저 혼자 해낸 것도 아니고, 모든 팀원들이 모든 것을 걸어 이루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깊었어요. 회사가 반 년 안에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함께 한마음으로 달렸기에, 더 큰 희열로 남아 있어요. 가장 힘들었을 때에는 2023년 상반기였네요.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는 차라리 매각을 준비하며 목표와 데드라인도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간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요. 2023년 상반기에는 자금도 떨어지고 숫자는 계속해서 안 나오고, 파트너와의 관계도 팀원들에게 보이는 리더십도 어려운 상황이 중첩되었죠. 그럼에도 앞으로 계속 가야는 하는데 기한도 없고 방향도 보이지 않으니,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시기였어요. 어디에서부터 수습을 해야 할지, 이 레이스의 목표는 무엇이고 언제까지 달려야 할지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 채 달리기만 하니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요.
Q05. 그런 순간마다 소리, 소희, 광종의 역할과 의미가 더욱 컸겠네요. 대표와 직원의 관계를 넘어, 진짜 동료 더 나아가 인생에서의 고민도 나누는 관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그런 관계를 직장에서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소리, 소희, 광종, 이 셋이 저에게 줬던 가치가 조금씩 달랐던 것이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저와 퍼블리를 커버해 주는 영역이 중첩되지 않았는데요. 사람에 대한 고민은 항상 소리의 조언이 유효했어요. 돈을 둘러싼 밖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조언은 소희가, 회사의 미션과 비전 그리고 전략적인 차원의 조언은 광종이 담당했어요. 그들과 깊어진 각각의 모멘텀은 있었지만, 공통분모는 어쨌든 눈물 흘리는 구간을 같이 버텨냈다는 것이었어요.
Q06. 그럼 역으로 그분들에게 ‘박소령’이라는 사람이 어땠을까요? 훌륭한 역량을 가진 분들이기에 더 좋은 조건을 제안받으셨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님과 끝까지 함께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저도 궁금했지만 대놓고 물어본 적은 없었는데요. (웃음) 아마 각자 그 이유가 조금씩 달랐을 거예요. 언뜻 들었던 바로 이야기해 보자면, 아마 소희는 저와 성격은 조금 다른데 사고방식이 일치한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포인트도 같고, 화나는 포인트도 같기 때문에 저랑 일하기에 편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그녀의 역할상 철저하게 회사 입장에서 일하는 포지션이었기에, 그녀의 입장에서 대표와 본인이 얼라인 되는 것이 엄청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겠죠. 소리의 경우 퍼블리의 멤버십 사업 자체에 대한 애정이 퍼블리에 남았던 가장 큰 이유였을 거예요. 서비스를 좋아하면 그 서비스를 같이 만드는 동료도 좋아할 수밖에 없고, 고객에 대한 사랑도 클 수밖에 없고요. 처음에는 콘텐츠 매니저로서 역할을 해냈고 막판에 퍼블리 멤버십 사업을 책임진 리더까지 가는 과정을 겪으며, 이 멤버십 사업은 소리에게 한 마디로 자식같은 존재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광종의 경우에는 심플하고 투명한 사람이라 비전과 미션을 세우는 것에 대한 목표가 명확했고, ‘좋은 콘텐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퍼블리의 미션을 한 번 이루어보고 싶었던 욕구가 강했어요. 커리어리 사업 리더를 할 때도 스스로 목표를 부여하고 이를 해내고자 했던 신념이 있는 친구였죠. 물론 다들 다른 속내가 있겠지만요. (웃음)
Q07. 이렇게 좋은 동료들과 동업자는 또 다른 의미잖아요?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면, 다시 공동 창업자 혹은 동업자와 함께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으세요?
10년이 지난 지금 공동 창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장점은 정신적으로 외롭지 않다는 것이에요. 혼자라면 너무 고독하고 외롭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하든 옆에 사람 한 명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의지가 되고요. 동시에 항상 옆에 있는 것이 좋지 않을 수도 있겠죠. (웃음) 사업을 하다 보면 같이 여러 골짜기들을 넘어야 하잖아요.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데, 좋은 날에 함께 하는 것은 쉽지만 나쁜 날을 같이 버티는 것이 어렵죠. 참 아이러니한 건 나쁜 날을 같이 버틸 수 있다면 플러스가 되는 존재가 맞고요, 같이 버티기 어렵다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기도 해요. 사실 관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상황이 나쁠 때 서로 얼마큼 같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치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동업자가 되고 나서 무언가를 해보기보다는, 무언가를 같이 해보고 나서 동업자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맞는 순서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찰리 멍거와 워렌 버핏이 17년 정도를 같이 일해보고 동업자가 된 결정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동시에 이전에 동업자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다른 일과 조직, 파트너와 함께 한 서로의 공백이 생겼다면 그 시기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말하고 나니 정말 연애나 결혼의 과정과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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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상황이 나쁠 때 서로 얼마큼 같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치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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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08.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계속해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서 멀어질 수 없는데요. 조직을 운영하시면서 확장과 레이오프를 거듭하시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레이오프는 양쪽의 입장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 파트를 쓸 때에 가장 유의한 점은 감정적인 부분은 들어내고 레이오프를 경험해 본 사람이 읽어도 최소한의 납득이 갈 수 있도록 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레이오프를 경험해 본, 동시에 제가 아는 분 중 MBTI의 F 수치가 가장 높은 한 리더님에게 원고 검토를 부탁드렸어요.
Q09.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이에 따라 판단이 충돌할 때에는 어디에 의사 결정의 기준을 두시나요?
콘텐츠의 경우에는 무조건적으로 고객의 말에 따랐어요. 더구나 저희는 무료 콘텐츠가 아니라 유료 멤버십 서비스를 운영했잖아요? 고객의 말은 다 옳다는 생각이고, 설령 제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콘텐츠일지라도 저의 취향은 과감하게 내려놓았었죠. 구독하시는 분들이 궁금하고 필요하고 재밌어할 만한 콘텐츠가 절대적인 기준이었어요. 오히려 이 결정은 쉬운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주주와의 관계는 저에게는 좀 어려웠었어요. 참 어려운 지점은 이분들이 직접적인 고객은 아닌데, 회사가 운영될 수 있는 현실적인 자금을 투자하시잖아요. 첫 번째 챕터 도입부에 ‘우리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고객과 우리 회사가 만드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고객이 일치할 때만 비로소 고객에게 집중해서 이 시장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고 판단했음. 반대로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리소스가 분산되거나, 현실적으로 돈을 주는 고객 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음.’라는 문장을 썼는데요. 주주와의 관계가 왜 어려웠는지 얘기하다 보니 이 문장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여기도 봐야 하고, 저기도 봐야 하는 상황이 저에게는 사지가 다른 방향으로 찢겨 나가는 고통이었어요. 더 담대한 대표님들은 주주의 목소리에 관계없이, 고객이나 본인이 원하는 방향에 더 집중했을 거예요. 실제로 저는 이에 휩쓸려 다녔었어요. 책에 등장하는(당시 캡스톤파트너스의) 오종욱 팀장님도 저에게 ‘주주 신경을 너무 많이 쓴다’라는 말을 종종 하실 정도로요. 지난 10년 동안 주주와의 관계에서 답을 결국 찾지 못했었습니다.
Q10. 그렇다면 다른 말로는 대표님은 타협을 못하시는 대표님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지난 10년 동안 여러 종류의 타협을 해보며, 특히 그중에서 저 자신과의 타협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모든 창업가들은 고유의 이유와 목적이 있으신데요. 어떤 대표님들은 옷을 팔아도, 차를 팔아도, SaaS 세일즈 사업을 하셔도 잘 하실 분들이 있어요. 큰돈이 흐르고, 기회가 보이고, 나에게 리소스가 주어지면 확 밀어붙여서 사업을 키울 수 있는 제네럴리스트 같은 분들이요. 그런데 저는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주 싫어하는, 동시에 잘하는 건 잘하는데 못하는 건 또 아주 못하는 양극단에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다만 제가 하기 싫고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목적이 분명하고 해야 한다면 에너지를 열심히 씁니다. 그 목적이 제 스스로 숙고 끝에 세운 것인지, 혹은 어딘가에 휩쓸려 내린 판단인지 한 번 더 구분해 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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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과의 타협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목적을 스스로 숙고 끝에 세운 것인지, 혹은 어딘가에 휩쓸려 내린 판단인지 한 번 더 구분해 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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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1. 그런 대표님께서 (창업이라고 할 정도의 규모이든 아니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신다면 어떤 산업에서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직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근 애니메이션에도 많은 관심이 생겼어요. 이 콘텐츠라는 시장에 있고, 애니메이션을 선택한다면 일본으로 옮기는 모습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콘텐츠 시장과 섹터 안에 있다면 저의 역할이 어떻게 될지, 어떤 콘텐츠를 선택할지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콘텐츠’라는 것이 게임부터 신문까지 워낙 넓은 시작이잖아요? 지금은 그에 대해서 열어 놓고 생각 중입니다.
Q12. 대표님은 어떤 리더이신가요? 앞으로 되고 싶은 리더의 상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리더인가>에 ‘리더라면 일 앞에서 좀 더 난폭해져야 한다’라는 소제목이 있는데요. 딱 전시 CEO를 표현하는 모습이라 가장 와닿았어요. 왜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모습을 좇았을까라는 후회가 들더라고요. 웃긴 말이지만 처음부터 트럼프처럼 밀어붙였다면 어떨까, 다음에는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Q13. 항상 달리시는 대표님을 보며 일과 대표님이 일체화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차라리 일과 일치되는 것이 더 쉬운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회사와 내가 일치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그게 더 무겁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은 안 하면 그만이지만 회사라는 법인은 이해관계자도 많고 법적으로도 복잡한, 죽이기 정말 어려운 존재이잖아요.
Q14. 대표님은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시기도, 그 안에서 인사이트도 많이 뽑아내시기도 하는데요. 대표님만의 콘텐츠 소비의 기준이 있으세요?
기본적으로 추리물이나 스릴러물은 그냥 좋아하고 소비해요. 사실 영상이든 만화든 포맷은 가리지 않고 다 보는데, 한 줄이라도 좋은 게 있으면 그냥 캡쳐하거나 사진 찍어서 보관해 두어요. 소희가 ‘넌 깨달음 중독자야’라고 하긴 하는데요. (웃음) 제 생각의 기저에는, 좋은 콘텐츠는 좋은 글에서 나온다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제가 좋은 콘텐츠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좋은 대사의 유무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른 분야의 상보다 각본/각색상을 타는 영화가 작품상도 수상하는 확률이 높더라고요. 그만큼 좋은 스크립트가 있을 때에 좋은 영상이 나온다는, 글의 힘이 엄청나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Q15. 그렇다면 그런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요?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는 글쓰기를 마음속 깊이 좋아해서 하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글 쓰는 걸 좋아했으면 이미 몇 권의 책을 냈었을걸요? SNS에도 사생활 이야기 포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썼을 거고요. 저를 돌아보면 스스로를 위한 글을 쓴 적은 거의 없고, 퍼블리 시절에는 철저하게 세일즈 때문에 썼어요. 퍼블리라는 회사, 그 회사에서 만든 여러 서비스, 그리고 콘텐츠를 팔고 알리기 위해 스토리텔링이 필요했고, 글쓰기 훈련을 빡세게 했던 거죠. 제가 썼던 메일들도 철저히 세일즈를 위함이었고요.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인스타그램에 콘텐츠 리뷰를 쓰기 시작한 건 ‘글’ 자체보다는, 생각을 박제해두기 위한 도구였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이 휘발되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나중에 생각을 떠올렸을 때 ‘아.. 그때 그거 뭐였지’라는 느낌이 싫더라고요. 그래서 집에는 제가 봤던 것들의 목록이 있는데, 그중 지극히 일부만 리뷰를 올린 거예요. (웃음) 그렇다 보니 내가 보고 좋았던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리뷰를 안 쓰면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책의 경우에는 밑줄을 쳐놓고, 영상은 좋았던 장면의 타임 라인만 적어놔요. 다 본 다음에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보고, 기록해 두고, 올리는 것이죠.
Q16. 앞으로 남은 올해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원래는 작년 9월 1일부터 올해 8월 31일까지 안식년으로 정했었는데요. 책을 쓰다 보니 안식년을 올해 말까지로 연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원래는 이 책이 올해 11월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북스톤 김은경 대표님이 계속 마감을 당기는 바람에 벌써 책이 나오게 되었고요. 그래서 안식년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또 안식년을 내년까지로 자동 연장하기로 했어요. (웃음) 저자로서 알릴 수 있는 활동까지는 열심히 하고 진정한 안식을 취해보려고 합니다.
Q17. 서문에 ‘지금 이 순간, 경기장 안에서 뛰고 있는 모든 분과 함께 읽고 싶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분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네실 한 마디는 무엇일까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안의 소리를 잘 들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안 들리더라고요. 거창한 말이라기보다는 저 스스로에게도 하는 다짐인데요. 안식년을 시작하고 소희와 둘이 안식이란 뭘까라는 고민과 함께 석촌호수를 바라보며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는데, 제 한 몸의 시간조차도 어떻게 원하는 것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피아노, 발레, 일본어, 배드민턴 등 학원을 엄청 다녔어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원하는지를 잘 모르니까 학원으로 도망친 거죠. 그래서 경기장 안에 지금 뛰고 계시거나 올라올 준비를 하시는 분들에게도, 자신의 마음속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Q18. 주신 말씀에서 한 번 더 들어가서, 여전히 제 마음의 소리가 뭔지 모르겠어요라는 분들을 위한 팁을 하나만 더 말씀해 주신다면요?
저의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 같은 몇 번의 결정을 해왔었어요. 창업도 그중 하나이고, 소위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트랙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결정을 했었는데요. 직관을 통해서 결정을 내리고, 그 뒤에 논리적인 이유를 붙이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 직관적인 결정은 혼자 있었던 시간을 통해 힌트를 얻었던 것이고요. 퍼블리 창업 전 1년 정도 백수의 시기가 있었는데 그 고독한 시간이 쌓이고 쌓여 창업으로 뛰어 들었어요. 물이 99도에서 1도만 더 넘으면 확 끓듯이, 어느 순간 뭔가 확 넘어가는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몇 차례 휴학을 했었고, 대학원이라는 고독한 시기도 있었고요. 혼자 지내면서 이런저런 것도 읽고 생각하고 하다 보면서 저도 모르게 제 안에 쌓이는 무언가가 있었나 봐요.
반대로 남의 말에 휩쓸려가는 결정은 대부분 후회했어요. 이걸 뒤늦게 알았지만, 이렇듯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알아가다 보면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19. 마지막으로 박소령이라는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시간이 지나며 저에 대한 스스로의 바람은 계속해서 바뀌는 것 같아요. 다만 그만큼 자유롭고, 동시에 박소령만이 가질 수 있는 유니크함이 있는 브랜드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상단 이미지 ©폴인, 송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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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령 퍼블리 창업자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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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의 댓글로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 나가고, 나의 손을 떠나 보내는 과정에서의 박소령 대표님에게 궁금한 점'을 남겨 주세요.
마이비레터에서 두 분을 선정하여, 북토크에 초대해 드립니다!
<이벤트 개요>
⭐참가 방법 : 이 게시물 댓글에 '브랜드의 전과정에 대해 궁금한 점' 남기기
⭐선정 인원 : 2명
⭐혜택 : 북토크 <창업가의 브랜딩, '실패'에 대한 10년의 기록> 무료 초대
⭐주의 사항 : 당첨자 연락을 위해, 로그인 후 참여해 주세요. (로그인을 하지 않으시면, 연락 드릴 방법이 없어 무효 처리 됩니다 😂)
<북토크 개요>
📍주제 : 창업가의 브랜딩, ’실패‘에 대한 10년의 기록
📍 일시 : 9월 23일, 화요일 | 오후 7:30 - 9:30
📍 연사 : 박소령(<실패를 통과하는 일> 저자, 퍼블리 창업자)
📍 모더레이터 : 우승우(더워터멜론 공동대표)
📍 장소 : 비마이비 도산스페이스(강남구 언주로 727 트리스 빌딩 2층)
👉 북토크 세부 내용 확인하기
무수한 실패의 장면들에서, 나만의 길을 찾고 브랜드를 세우며 버텨냈던 고군분투의 기록들이 궁금하시다면 꼭! 함께해주세요.
🎁 당일 세션에 참가해 주신 분들께 신간 <실패를 통과하는 일> 1권을 증정합니다.
my B letter의 본문과 큐레이션을 포함, 비마이비의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비마이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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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의 창업자 박소령 (전) 대표의 도서 <실패를 통과하는 일>은 사직서에 개인인감을 찍고 개인인감증명서를 제출하는 1인칭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그녀의 기억을 따라 지난 10년 동안 퍼블리가 시작되어 매각이 되는 과정의 재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펀드레이징/공동창업/전시 CEO/레이오프/주주 관계 등 스타트업의 일대기에 필요한 내용도 있어, 각 시기마다 고민이 있는 분들에게 조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과거에 일어난 ‘나의 기억’과 현재에 하는 ‘지금의 생각’이 휘몰아치다가 땅에 착륙하며 마무리를 짓죠.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실패의 모든 순간을 차갑게 기록한 ‘이 이야기의 결론이 과연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데요. 커버에 그려진 한밤중의 차가운 호수 위 물결처럼, 잔잔하게 여러 생각이 밀려오며 결말 이후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실패란 무엇일까요? failure의 어원인 faller는 라틴어로 ‘속이다’라는 뜻이 있다고 하네요. 이 책의 제목처럼 실패는 결론이 아닌, 통과하는 행위 그 자체 혹은 통과해야 하는 일에 그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패와 성공’의 차이를 ‘미련과 아쉬움’의 차이로 재정의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얼마나 용기를 내어 시작했고 후회 없이 어디까지 가봤고, 그래서 그게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해보지 않아 영원히 묻어 있는 후회가 아닌, 설령 계획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아쉬움이겠죠. 그래서 ‘그다음엔 생각했던 결과물에 보다 더 가깝게 해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성공을 향하는 중이면서도 실패를 통과하고 있다고 느낄지도 몰라요.
비마이비가 박소령 대표를 만나 실패를 통과해본 ‘박소령’이라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 오늘 인터뷰의 일정 부분은 박소령 대표의 신간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 대한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박소령 대표에게 큰 힘이 되어준 퍼블리의 전 동료(소리(전 멤버십 사업 리더), 소희(전 운영 조직 총괄), 광종(전 커리어리 사업 리더))가 등장합니다!
00. 안녕하세요, 마이비레터 구독자 여러분에게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안녕하세요, 박소령입니다. 저는 2015년 퍼블리를 창업해, 2024년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현재 안식년을 보내며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동안의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Q01. 그동안 개인적으로 해오신 기록도, 출간 제안도 많이 받아 출간의 기회가 그동안 많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개되지 못할 뻔했던 이야기를 이 시점에 공개하셨던 계기가 있으셨나요? 원고를 준비하셨던 과정도 궁금합니다.
우선 이 책의 원고는 스스로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책에도 등장하는 소리(전 멤버십 사업 리더), 소희(전 운영 조직 총괄), 광종(전 커리어리 사업 리더)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초고는 올해 1월 중순부터 썼고, 이 과정에서 소리의 도움이 컸죠. 소리에게 두 가지 부탁을 제가 했어요. 나를 쪼으며 데드라인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을 해줄 것, 그리고 첫 번째 독자로서 솔직한 피드백을 줄 것. 처음에는 두 달 내에 10개의 챕터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일주일에 2개의 챕터를 써야 했네요), 한 챕터씩 작성해서 보냈어요. 첫 번째 챕터를 읽고 바로 소리의 반응은 "이건 밖으로 안 내기엔 아깝다, 그리고 내가 아는 너라면 밖으로 낼 것 같다”였습니다. 그 이후로 챕터가 전개되는 동안 소리는 저에게 계속해서 확신을 주었습니다. 처음에 소리는 ‘이 글을 누구에게까지 공유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 역시 글을 쓰며 천천히 고민했어요. 우선 저는 지난 10년 동안 덕분에 잘 살았다는 의미를 담아, 진심으로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동시에 저에게 미래를 위한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었죠. 이 조건들에 맞는 분들을 떠올리다 보니, 초고를 마무리할 때쯤 20명을 추릴 수 있었어요.
3월 20일 정도에 완성된 초고를 이분들에게 쭉 메일을 드리고, 4월 12일 토요일 오후(회사를 처음 세운 날짜는 4월 15일), 마지막까지 있었던 성수동 카우앤독에 모여서 일종의 프라이빗 북토크를 열었습니다. 그렇게 여섯 분이 일정이 가능하다고 답변을 주셨고, 함께 모여 글을 읽고 난 뒤 저에게 주실 수 있는 조언을 나누었어요. 또한 이 초고의 향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요. 정해두고 시작한 것은 없었기에 역시 의견이 상당히 갈렸어요. 과연 이 초고를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을지, 낸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낸다면 그 형태가 꼭 책이어야 할지, 어떤 포맷의 콘텐츠여야 할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죠. 어떤 분은 기억을 헤집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았겠냐는 염려도 해주셨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책으로 나왔고, 어쩌면 사실 저는 직관적으로는 밖으로 내보이고 싶었나 봐요. 다만 그에 대한 이유는 직관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유를 한 달 정도 여러 가지로 막 고민했어요. 결국 시작은 나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였지만,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라면 나에게도 세상에도 의미 있는 안식년이 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었죠.
Q02.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서는 실패를 날 것의 기록으로 다루었어요. NEXT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요. 실패 이후의 성공 혹은 미화가 아니라 더욱 진실한 기록이라고 느껴지는데요. 그렇기에 오히려 처음부터 ‘실패에 대한 이야기’로 방향을 잡으셨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키워드가 나왔을까요?
사실 편집자님은 저에게 제목에 들어갔으면 하는 키워드가 있는지 물었는데, 저는 없다고 답했었어요. 이 책이 나오기까지 원고를 7번 정도를 뒤엎었다고 할 정도로 톤앤매너나 문체, 내용 등을 많이 바꿨는데, 그 이유는 차갑고 호수 같은 느낌의 드라이한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출판사에서 제시한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좋았어요. 실패라는 키워드가 전면에 나와 있는 것이 멋부리지 않고 담백하며 드라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7월 즈음에 6월 무렵 쓴 원고를 다시 보니, 몇 번의 퇴고를 거쳤음에도 여전히 저의 감정이 너무 많이 묻어 있어 유치하고 깊이가 얕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제목 역시 주변의 의견을 좀 들어 봤는데, 실패라는 키워드가 좀 밋밋하다, 혹은 전면에 내세워서 잘 된 사례가 많지 않아 리스키 하다 등의 솔직하고 감사한 의견도 있었죠.
다만 저의 약점을 선제적으로 밝히고 진솔한 기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최근에 ‘아르슬란 전기’를 읽었는데, 주 내용은 아르슬란은 왕의 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왕위에 오른다는 것이에요. 이때 조언자가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감추지 말고 처음부터 당당하게 밝히자, 그래야만 이 약점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하지 않고 되려 그것이 강점이자 보호막이 된다’라는 조언을 해요. 아르슬란은 이 조언을 따르죠. 이 이야기가 너무 인상 깊었던 무렵에 ‘실패를 통과하는 일’이라는 제목을 받아, 그 의미가 더 와닿았죠. 그리고 저는 ‘책’은 팔아야 하는 상품이고 저의 역할과 의무는 충실하게 그 책의 내용을 쓰는 것,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잘 만들고 잘 파는 방법을 아는 전문가인 출판사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책을 읽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실패를 통과하는 일’ / 자료 출처 북스톤
Q03. 대표님과 퍼블리의 10년의 기록과 10개의 씬이 담긴 이 책, 이 중에서 가장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파트는 어디일까요?
저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어느 분이 읽어도 이 책의 내용과 배경을 이해하시기에 가장 적절한 파트가 아닐까 해요. 프롤로그를 가장 마지막에, 에필로그는 그 직전에 쓴 글이다보니 저의 생각이 가장 잘 정리된 부분이기도 하고요. 제가 100일 동안 곰처럼 마늘과 쑥만 먹으며 동굴에서 글만 썼었기 때문에, 가장 압축적으로 정리된 부분이 이 두 부분이었어요.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가장 보편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10개의 파트는 당연히 현재의 상황과 직업, 역할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Q04. 그렇다면 퍼블리와 함께 한 10년 중 가장 기뻤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을 꼽아주신다면요?
가장 신났을 때에는 전시 CEO로 살았던 12월 31일이었어요. 실제로 성과가 나오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후회했던 적도 없었고요. 더구나 그 과정과 성과를 저 혼자 해낸 것도 아니고, 모든 팀원들이 모든 것을 걸어 이루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깊었어요. 회사가 반 년 안에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함께 한마음으로 달렸기에, 더 큰 희열로 남아 있어요. 가장 힘들었을 때에는 2023년 상반기였네요.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는 차라리 매각을 준비하며 목표와 데드라인도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간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요. 2023년 상반기에는 자금도 떨어지고 숫자는 계속해서 안 나오고, 파트너와의 관계도 팀원들에게 보이는 리더십도 어려운 상황이 중첩되었죠. 그럼에도 앞으로 계속 가야는 하는데 기한도 없고 방향도 보이지 않으니,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시기였어요. 어디에서부터 수습을 해야 할지, 이 레이스의 목표는 무엇이고 언제까지 달려야 할지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 채 달리기만 하니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요.
Q05. 그런 순간마다 소리, 소희, 광종의 역할과 의미가 더욱 컸겠네요. 대표와 직원의 관계를 넘어, 진짜 동료 더 나아가 인생에서의 고민도 나누는 관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그런 관계를 직장에서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소리, 소희, 광종, 이 셋이 저에게 줬던 가치가 조금씩 달랐던 것이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저와 퍼블리를 커버해 주는 영역이 중첩되지 않았는데요. 사람에 대한 고민은 항상 소리의 조언이 유효했어요. 돈을 둘러싼 밖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조언은 소희가, 회사의 미션과 비전 그리고 전략적인 차원의 조언은 광종이 담당했어요. 그들과 깊어진 각각의 모멘텀은 있었지만, 공통분모는 어쨌든 눈물 흘리는 구간을 같이 버텨냈다는 것이었어요.
Q06. 그럼 역으로 그분들에게 ‘박소령’이라는 사람이 어땠을까요? 훌륭한 역량을 가진 분들이기에 더 좋은 조건을 제안받으셨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님과 끝까지 함께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저도 궁금했지만 대놓고 물어본 적은 없었는데요. (웃음) 아마 각자 그 이유가 조금씩 달랐을 거예요. 언뜻 들었던 바로 이야기해 보자면, 아마 소희는 저와 성격은 조금 다른데 사고방식이 일치한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포인트도 같고, 화나는 포인트도 같기 때문에 저랑 일하기에 편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그녀의 역할상 철저하게 회사 입장에서 일하는 포지션이었기에, 그녀의 입장에서 대표와 본인이 얼라인 되는 것이 엄청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겠죠. 소리의 경우 퍼블리의 멤버십 사업 자체에 대한 애정이 퍼블리에 남았던 가장 큰 이유였을 거예요. 서비스를 좋아하면 그 서비스를 같이 만드는 동료도 좋아할 수밖에 없고, 고객에 대한 사랑도 클 수밖에 없고요. 처음에는 콘텐츠 매니저로서 역할을 해냈고 막판에 퍼블리 멤버십 사업을 책임진 리더까지 가는 과정을 겪으며, 이 멤버십 사업은 소리에게 한 마디로 자식같은 존재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광종의 경우에는 심플하고 투명한 사람이라 비전과 미션을 세우는 것에 대한 목표가 명확했고, ‘좋은 콘텐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퍼블리의 미션을 한 번 이루어보고 싶었던 욕구가 강했어요. 커리어리 사업 리더를 할 때도 스스로 목표를 부여하고 이를 해내고자 했던 신념이 있는 친구였죠. 물론 다들 다른 속내가 있겠지만요. (웃음)
Q07. 이렇게 좋은 동료들과 동업자는 또 다른 의미잖아요?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면, 다시 공동 창업자 혹은 동업자와 함께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으세요?
10년이 지난 지금 공동 창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장점은 정신적으로 외롭지 않다는 것이에요. 혼자라면 너무 고독하고 외롭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하든 옆에 사람 한 명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의지가 되고요. 동시에 항상 옆에 있는 것이 좋지 않을 수도 있겠죠. (웃음) 사업을 하다 보면 같이 여러 골짜기들을 넘어야 하잖아요.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데, 좋은 날에 함께 하는 것은 쉽지만 나쁜 날을 같이 버티는 것이 어렵죠. 참 아이러니한 건 나쁜 날을 같이 버틸 수 있다면 플러스가 되는 존재가 맞고요, 같이 버티기 어렵다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기도 해요. 사실 관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상황이 나쁠 때 서로 얼마큼 같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치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동업자가 되고 나서 무언가를 해보기보다는, 무언가를 같이 해보고 나서 동업자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맞는 순서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찰리 멍거와 워렌 버핏이 17년 정도를 같이 일해보고 동업자가 된 결정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동시에 이전에 동업자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다른 일과 조직, 파트너와 함께 한 서로의 공백이 생겼다면 그 시기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말하고 나니 정말 연애나 결혼의 과정과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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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상황이 나쁠 때 서로 얼마큼 같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치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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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08.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계속해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서 멀어질 수 없는데요. 조직을 운영하시면서 확장과 레이오프를 거듭하시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레이오프는 양쪽의 입장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 파트를 쓸 때에 가장 유의한 점은 감정적인 부분은 들어내고 레이오프를 경험해 본 사람이 읽어도 최소한의 납득이 갈 수 있도록 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레이오프를 경험해 본, 동시에 제가 아는 분 중 MBTI의 F 수치가 가장 높은 한 리더님에게 원고 검토를 부탁드렸어요.
Q09.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이에 따라 판단이 충돌할 때에는 어디에 의사 결정의 기준을 두시나요?
콘텐츠의 경우에는 무조건적으로 고객의 말에 따랐어요. 더구나 저희는 무료 콘텐츠가 아니라 유료 멤버십 서비스를 운영했잖아요? 고객의 말은 다 옳다는 생각이고, 설령 제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콘텐츠일지라도 저의 취향은 과감하게 내려놓았었죠. 구독하시는 분들이 궁금하고 필요하고 재밌어할 만한 콘텐츠가 절대적인 기준이었어요. 오히려 이 결정은 쉬운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주주와의 관계는 저에게는 좀 어려웠었어요. 참 어려운 지점은 이분들이 직접적인 고객은 아닌데, 회사가 운영될 수 있는 현실적인 자금을 투자하시잖아요. 첫 번째 챕터 도입부에 ‘우리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고객과 우리 회사가 만드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고객이 일치할 때만 비로소 고객에게 집중해서 이 시장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고 판단했음. 반대로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리소스가 분산되거나, 현실적으로 돈을 주는 고객 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음.’라는 문장을 썼는데요. 주주와의 관계가 왜 어려웠는지 얘기하다 보니 이 문장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여기도 봐야 하고, 저기도 봐야 하는 상황이 저에게는 사지가 다른 방향으로 찢겨 나가는 고통이었어요. 더 담대한 대표님들은 주주의 목소리에 관계없이, 고객이나 본인이 원하는 방향에 더 집중했을 거예요. 실제로 저는 이에 휩쓸려 다녔었어요. 책에 등장하는(당시 캡스톤파트너스의) 오종욱 팀장님도 저에게 ‘주주 신경을 너무 많이 쓴다’라는 말을 종종 하실 정도로요. 지난 10년 동안 주주와의 관계에서 답을 결국 찾지 못했었습니다.
Q10. 그렇다면 다른 말로는 대표님은 타협을 못하시는 대표님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지난 10년 동안 여러 종류의 타협을 해보며, 특히 그중에서 저 자신과의 타협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모든 창업가들은 고유의 이유와 목적이 있으신데요. 어떤 대표님들은 옷을 팔아도, 차를 팔아도, SaaS 세일즈 사업을 하셔도 잘 하실 분들이 있어요. 큰돈이 흐르고, 기회가 보이고, 나에게 리소스가 주어지면 확 밀어붙여서 사업을 키울 수 있는 제네럴리스트 같은 분들이요. 그런데 저는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주 싫어하는, 동시에 잘하는 건 잘하는데 못하는 건 또 아주 못하는 양극단에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다만 제가 하기 싫고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목적이 분명하고 해야 한다면 에너지를 열심히 씁니다. 그 목적이 제 스스로 숙고 끝에 세운 것인지, 혹은 어딘가에 휩쓸려 내린 판단인지 한 번 더 구분해 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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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과의 타협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목적을 스스로 숙고 끝에 세운 것인지, 혹은 어딘가에 휩쓸려 내린 판단인지 한 번 더 구분해 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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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1. 그런 대표님께서 (창업이라고 할 정도의 규모이든 아니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신다면 어떤 산업에서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직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근 애니메이션에도 많은 관심이 생겼어요. 이 콘텐츠라는 시장에 있고, 애니메이션을 선택한다면 일본으로 옮기는 모습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콘텐츠 시장과 섹터 안에 있다면 저의 역할이 어떻게 될지, 어떤 콘텐츠를 선택할지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콘텐츠’라는 것이 게임부터 신문까지 워낙 넓은 시작이잖아요? 지금은 그에 대해서 열어 놓고 생각 중입니다.
Q12. 대표님은 어떤 리더이신가요? 앞으로 되고 싶은 리더의 상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리더인가>에 ‘리더라면 일 앞에서 좀 더 난폭해져야 한다’라는 소제목이 있는데요. 딱 전시 CEO를 표현하는 모습이라 가장 와닿았어요. 왜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모습을 좇았을까라는 후회가 들더라고요. 웃긴 말이지만 처음부터 트럼프처럼 밀어붙였다면 어떨까, 다음에는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Q13. 항상 달리시는 대표님을 보며 일과 대표님이 일체화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차라리 일과 일치되는 것이 더 쉬운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회사와 내가 일치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그게 더 무겁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은 안 하면 그만이지만 회사라는 법인은 이해관계자도 많고 법적으로도 복잡한, 죽이기 정말 어려운 존재이잖아요.
Q14. 대표님은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시기도, 그 안에서 인사이트도 많이 뽑아내시기도 하는데요. 대표님만의 콘텐츠 소비의 기준이 있으세요?
기본적으로 추리물이나 스릴러물은 그냥 좋아하고 소비해요. 사실 영상이든 만화든 포맷은 가리지 않고 다 보는데, 한 줄이라도 좋은 게 있으면 그냥 캡쳐하거나 사진 찍어서 보관해 두어요. 소희가 ‘넌 깨달음 중독자야’라고 하긴 하는데요. (웃음) 제 생각의 기저에는, 좋은 콘텐츠는 좋은 글에서 나온다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제가 좋은 콘텐츠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좋은 대사의 유무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른 분야의 상보다 각본/각색상을 타는 영화가 작품상도 수상하는 확률이 높더라고요. 그만큼 좋은 스크립트가 있을 때에 좋은 영상이 나온다는, 글의 힘이 엄청나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Q15. 그렇다면 그런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요?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는 글쓰기를 마음속 깊이 좋아해서 하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글 쓰는 걸 좋아했으면 이미 몇 권의 책을 냈었을걸요? SNS에도 사생활 이야기 포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썼을 거고요. 저를 돌아보면 스스로를 위한 글을 쓴 적은 거의 없고, 퍼블리 시절에는 철저하게 세일즈 때문에 썼어요. 퍼블리라는 회사, 그 회사에서 만든 여러 서비스, 그리고 콘텐츠를 팔고 알리기 위해 스토리텔링이 필요했고, 글쓰기 훈련을 빡세게 했던 거죠. 제가 썼던 메일들도 철저히 세일즈를 위함이었고요.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인스타그램에 콘텐츠 리뷰를 쓰기 시작한 건 ‘글’ 자체보다는, 생각을 박제해두기 위한 도구였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이 휘발되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나중에 생각을 떠올렸을 때 ‘아.. 그때 그거 뭐였지’라는 느낌이 싫더라고요. 그래서 집에는 제가 봤던 것들의 목록이 있는데, 그중 지극히 일부만 리뷰를 올린 거예요. (웃음) 그렇다 보니 내가 보고 좋았던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리뷰를 안 쓰면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책의 경우에는 밑줄을 쳐놓고, 영상은 좋았던 장면의 타임 라인만 적어놔요. 다 본 다음에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보고, 기록해 두고, 올리는 것이죠.
Q16. 앞으로 남은 올해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원래는 작년 9월 1일부터 올해 8월 31일까지 안식년으로 정했었는데요. 책을 쓰다 보니 안식년을 올해 말까지로 연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원래는 이 책이 올해 11월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북스톤 김은경 대표님이 계속 마감을 당기는 바람에 벌써 책이 나오게 되었고요. 그래서 안식년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또 안식년을 내년까지로 자동 연장하기로 했어요. (웃음) 저자로서 알릴 수 있는 활동까지는 열심히 하고 진정한 안식을 취해보려고 합니다.
Q17. 서문에 ‘지금 이 순간, 경기장 안에서 뛰고 있는 모든 분과 함께 읽고 싶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분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네실 한 마디는 무엇일까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안의 소리를 잘 들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안 들리더라고요. 거창한 말이라기보다는 저 스스로에게도 하는 다짐인데요. 안식년을 시작하고 소희와 둘이 안식이란 뭘까라는 고민과 함께 석촌호수를 바라보며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는데, 제 한 몸의 시간조차도 어떻게 원하는 것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피아노, 발레, 일본어, 배드민턴 등 학원을 엄청 다녔어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원하는지를 잘 모르니까 학원으로 도망친 거죠. 그래서 경기장 안에 지금 뛰고 계시거나 올라올 준비를 하시는 분들에게도, 자신의 마음속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Q18. 주신 말씀에서 한 번 더 들어가서, 여전히 제 마음의 소리가 뭔지 모르겠어요라는 분들을 위한 팁을 하나만 더 말씀해 주신다면요?
저의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 같은 몇 번의 결정을 해왔었어요. 창업도 그중 하나이고, 소위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트랙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결정을 했었는데요. 직관을 통해서 결정을 내리고, 그 뒤에 논리적인 이유를 붙이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 직관적인 결정은 혼자 있었던 시간을 통해 힌트를 얻었던 것이고요. 퍼블리 창업 전 1년 정도 백수의 시기가 있었는데 그 고독한 시간이 쌓이고 쌓여 창업으로 뛰어 들었어요. 물이 99도에서 1도만 더 넘으면 확 끓듯이, 어느 순간 뭔가 확 넘어가는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몇 차례 휴학을 했었고, 대학원이라는 고독한 시기도 있었고요. 혼자 지내면서 이런저런 것도 읽고 생각하고 하다 보면서 저도 모르게 제 안에 쌓이는 무언가가 있었나 봐요.
반대로 남의 말에 휩쓸려가는 결정은 대부분 후회했어요. 이걸 뒤늦게 알았지만, 이렇듯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알아가다 보면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19. 마지막으로 박소령이라는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시간이 지나며 저에 대한 스스로의 바람은 계속해서 바뀌는 것 같아요. 다만 그만큼 자유롭고, 동시에 박소령만이 가질 수 있는 유니크함이 있는 브랜드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상단 이미지 ©폴인, 송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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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창업가의 브랜딩, ’실패‘에 대한 10년의 기록
📍 일시 : 9월 23일, 화요일 | 오후 7:30 - 9:30
📍 연사 : 박소령(<실패를 통과하는 일> 저자, 퍼블리 창업자)
📍 모더레이터 : 우승우(더워터멜론 공동대표)
📍 장소 : 비마이비 도산스페이스(강남구 언주로 727 트리스 빌딩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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