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일하는 사람의 생각》에 밑줄을 세 번이나 그은 문장이 있다. “저는 감동받는 건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감동받는 건 창작자가 갖춰야 할 능력입니다. (중략)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감동받을 수 있어야 된다고 믿어요.” 그런데 감동받는 능력은 창작자에게만 필요한 소양이 아니다.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필요한 의지다. 감동이 일어날 때 평범한 일상은 특별해지고, 흐릿한 순간이 선명해지니까. 그래서 사소함에서 빛을 발견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남들보다 넓은 영역을 이해하고 누린다. 인터뷰 내내 밝게 웃던 김청도 그런 사람이었다. 큰 기획사를 나와 소소문구라는 작은 브랜드로 이직을 결정한 것도, 낙서를 창조의 씨앗으로 만든 것도 모두 감동할 줄 아는 능력 덕이었다. 소소문구에서 디자인 빼고 모든 업무를 맡아 한다는 그는 부대끼며 일하는 동료들과 동료들이 만든 제품에 감사하며, 쓰는 사람들이 완성시킨 제품에 또 감동한다. 그에게 본받을 점은 자신의 능력을 홀로 뽐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감동을 전하며 더 많은 사람을 희락의 장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김청은 쓰는 사람들과 즐거운 교집합을 이뤄가고 있다.
소소문구에 오기 전엔 전시 기획사에서 일했다고요.
일반 전시가 아니라 상업 전시를 하는 곳이었어요. 대표 전시로는 <반 고흐 인사이드>, <앨리스 인 투 더 래빗>, <유미의 세포들> 등이 있어요. 전시 한 번 열리면 50만 명이 찾는 규모가 큰 곳이죠. 제가 미술사를 전공해서 예술을 대중적으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반 고흐 인사이드>를 보고 여기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1년 정도 입사 준비를 해서 지원했죠. 모집 공고가 올라와 있지도 않은데 똑똑 두드려서 뭐라도 하겠다고 한 거예요. 마침 그 기획사에서 아트숍 론칭을 준비 중이었고 운영할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제가 맡았어요. 성취감도 높고, 회사에 보탬도 되는 일이었죠. 그렇게 제 커리어를 MD 쪽으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회사는 MD 업무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전시 전체를 아우를 인력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2년 반 만에 회사를 정리하고 나오게 됐죠. 어디서 일을 다시 할까, 찾던 중에 마침 소소문구 인스타그램 계정에 브랜드 MD 모집 공고가 올라왔어요.
소소문구는 어떻게 알았어요?
저희 아트숍에 입점 돼 있던 거래처였어요. 실장님들과도 사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이름을 알고, 업무적으로 만나 미팅하는 관계였죠. 근데 업무적으로 만나도 그런 게 있잖아요. 한 쪽이 쿵, 하면 짝, 해주는 사람이요. 소소문구와 일할 땐 쿵짝이 잘 맞았어요.
실장님들이요?
아, 저희 대표님들은 실장으로 불리길 원하셔요. 대표란 호칭은 쑥스럽대요.
그럼 쿵짝이 잘 맞아 그곳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은 건가요?
사실 제가 맡았던 아트숍에서 소소문구 제품이 되게 안 팔렸어요. 작은 브랜드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트숍에 제품을 큐레이션 할 때 많은 사람이 찾는 디자인이 있고, 많은 사람이 찾진 않지만 그 제품이 있음으로써 공간에 맥락을 만들어주는, 공간에 품격을 올려주는 디자인이 있거든요. 소소문구가 그런 류였어요. 멋진 맥락을 가진 브랜드였죠. 그래서 소소문구의 브랜드 MD로 일을 하면 제가 어떤 효용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금전적인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겠더라고요. 그 근거로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를 만든다’는 프레이즈를 가져가야 한다고 제안했어요. 다행히 실장님들도 오케이 해주셨죠.
당시 자소서 일부를 페이스북 개인 계정에 올려 두신 걸 봤어요. 이전엔 다른 프레이즈를 가졌는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거죠?
이전엔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문구 제품을 만듭니다’ 이거였어요. 그래서 소소한 일상,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문구를 다루는 곳이었죠. 근데 정작 소소문구의 디자인이나 활동은 소소하지 않았어요. 뭔가 진정성이 있고, 오랜 고민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기준이 명확해 보였죠.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SNS에 전부 공개하는 이유도 동일한 맥락 같았고요. 기록과 문구에 전문성을 가진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록’과 ‘문구’라는 키워드에 기반해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라는 프레이즈를 뽑은 거예요. 심플하게.
소소문구의 가치와 갖고 계신 능력이 딱 맞았네요.
인연이 잘 닿았어요. 마침 제가 백수일 때 소소문구에서 처음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직군을 채용했고요. 이직을 준비하면서 돈만 좇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돈을 많이 벌게 되더라도 자신들의 가치를 성장시킬 의지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죠. 그래서 소소문구의 크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회사 규모는 제가 키우면 되니까요(웃음).
초반에 스스로를 돌멩이에서도 예쁜 구석을 찾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다른 방식으로 보는 걸 좋아해요. 발에 치이는 돌멩이에서 예쁜 구석을 찾는 건 다른 관점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죠. 참, 좋아하는 브랜드 제품을 가져와 달라는 요청에 몇 가지를 준비해봤는데요. 사실 제가 소비를 안 좋아해서 커머셜 제품들은 아니에요.
이 그림은 사무실 책상에 항상 놓여 있는 거예요. 이규태 작가님의 그림이죠. 먼 곳을 응시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존 버거’라는 미술 평론가의 책인데, 역시 다른 방식으로 보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관점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네요.
저는 무언가의 매력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서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고 가는 곳에서 발견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포인트를 짚어주면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이 생기는데, 그게 마케팅의 태도 같아요. 어떤 제품을 포장하는 개념이라기보단 다른 지점을 짚어주는 거요.
소소문구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하게 짚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집중하는 건 쓰는 사람이에요. 제품의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이걸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전달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샘플 노트를 채워 사용법을 알려주는 걸 용례라고 하는데, 저희는 용례 작업을 여느 브랜드처럼 직접 하기도 하지만, 사용자에게 제안하기도 해요. 소소문구의 제품을 완성시키는 대상은 쓰는 사람, 즉 사용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상품들은 실제 사용자들의 방식으로 채워 전시나 이벤트를 통해 보여줘요.
소소문구 제품을 완성시키는 사람은 쓰는 사람이다?
네 맞아요. 어떻게 보면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를 만든다는 말은 쉬워요. 그래서 처음엔 걱정도 많았어요. 뭔가 수식어를 더 붙여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근데 수식어보다 이 문장에 우리의 행동이 붙었을 때 문장에 힘이 더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시를 기획하게 된 거군요.
<나, 해보려고> 전을 열게 된 시기는 ‘데일리 로그 노트’ 출시를 앞둔 때였어요. 31일 동안 매일을 간단하게 기록할 수 있는 노트예요. 마침 제가 합류한 시기였어서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를 마케팅에 바로 적용해보기로 했죠. 이 노트가 쓰는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2가지 색깔의 노트를 12명에게 하나씩 나눠 주고, 그들의 31일이 담긴 노트를 전시했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죠. 이후 디깅 노트를 만들면서 또 다시 쓰는 사람들과 함께 할 거리를 궁리했는데, 그게 <아임 디깅> 전이에요.
<아임 디깅> 전은 다양한 유형의 디깅을 보여줬어요.
<나, 해보려고> 전을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에게 관심사 설문조사를 했는데, 공통 관심사가 7개로 추려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7가지를 디깅하는 사람들을 찾기로 했어요. 저희가 쓰는 사람의 부류를 창작하며 쓰는 사람, 물성 있는 걸 수집하는 사람, 온라인에서 디깅을 하는 사람 이렇게 나눴는데요. 7개 카테고리마다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모두 포함되도록 했어요. 예를 들어 음악 카테고리에 창작하는 사람으로 음악가 이자람 님, LP를 수집하는 유형근 님,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디깅 하는 마케터 님으로 구성했어요. 전시를 보는 분들이 디깅 하는 분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했어요. 검색도 일종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단순한 느낌을 주고 싶었죠.
평소 기록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전시를 통해 기록을 하게 된 분들도 있다고요.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오뚜기’에서 일하시는 강호준 님 디깅 노트예요. 호준 님의 일이 제 커리어와 연관돼 있다 보니, 선배의 노트를 보는 입장으로 봤던 거 같아요. 저의 롤 모델 노트를 보는 느낌으로요. 아무튼, 그분의 디깅 노트도 아름답지 않아요(웃음). 당시 호준 님은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노트는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아,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오뚜기의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 프로젝트’가 디깅 노트에서 출발했다는 글이요.
맞아요. 그분도 하는 일이 너무 많으니까, 프로젝트 별로 내가 왜 이 프로젝트를 했는지부터 어떻게 했는지 등 머릿속에만 있던 내용을 그냥 풀어낸 것 같았어요. 기록 방식이 저와 비슷해서 위안이 됐던 기억이 나요. 호준 님은 처음에 저희가 노트를 드릴 때만 해도 ‘못할 것 같다’고 했던 분이에요. 작년 7월에 노트를 드렸고, 11월에 전시를 론칭했는데, 9월이 되도록 한 장도 못 썼다고요. 괜찮으니까 한 장만이라도 써 달라고 했는데, 막상 기록을 시작하니 너무 좋다는 거예요. 결국 노트 끝까지 다 채우셨어요.
기획자로서 뿌듯하시겠어요. 개인적으로 디깅 하는 게 있나요?
<아임 디깅> 전이 제 디깅의 결과예요(웃음). 전시에 섭외한 분들이 제가 디깅해 온 분들이거든요. 각 카테고리마다 리스트를 추리기 힘들었어요. 섭외하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았거든요.
주로 어떤 사람을 디깅 해요?
어떤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라든지, 한결같은 결의 결과물을 내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요. 그런 사람들을 많이 기억해 뒀다가 함께 일을 하는 상상을 하죠.
주체적인 쓰기를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대학생 때 학교 문구점에서 이 옥스퍼드 노트를 산 이후부터요. 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노트만 써요. 집에도 엄청 많아요. 그냥 그날 그날 필요한 업무 내용들을 막 적는 편이에요.
이렇게 큰 노트를 써요?
제 글씨가 좀 크거든요. 저는 밥을 먹을 때 남기더라도 넉넉한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조그만 수첩에 쓰면 쓰고 싶은 말이 더 많아질 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요(웃음). 그리고 이게 이렇게 크고 120장이나 되는데, 4천 원밖에 안 해요! 저도 예쁘고 작은 노트 써보려고 했는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더라고요.
쓰는 사람이 되려면 도구를 잘 활용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조금 있었는데,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저는 이 낙서 같은 기록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제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혼재되어 있어서 생각을 가둬 두면 일 진행이 불가능해요. 이렇게 막 쏟아내야 하죠. 전 낙서가 생각의 씨앗이라고 생각해요. 열을 맞춰 정갈하게 쓰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소문구가 추구하는 쓰기의 방향은 통화하면서 그리는 의미 없는 동그라미 같은 거예요.
자주는 아니지만, SNS 기록도 종종 하시던데요. 글이 사건과 감상을 소재로 한 문학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SNS는 주로 언제 하시나요?
되게 좋게 봐주셨네요(웃음). 한때는 SNS 기록을 되게 활발히 했어요. 20대엔 싸이월드에 열심이었죠. 근데 사회생활 시작하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까 잘 못하게 되더라고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욕망도 없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사건과 감상을 소재로 한다는 표현이 맞는데, 귀찮아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SNS에 써요.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말이요. 가장 최근엔 저희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그 사건에 대한 감상을 썼어요.
보통 SNS엔 공개 허용 범위가 넓은 내용을 쓰곤 하는데, 중요한 내용을 SNS에 기록한다는 게 의아해요.
물성이 있는 일기장에 쓸 수도 있지만, 노트의 색이 바래는 등 영구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나중에 다시 들춰 보기도 힘들고요. 오히려 더 잘 보관하고 싶어서 SNS에 남기는 거예요. SNS에 한 번 올리면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도 편해요.
그럼 일기장은 따로 안 쓰나요?
제 일기는 SNS에 있는 게 다예요. 왜냐하면···, 너무 변명하는 것 같은데(웃음). 잘 쓰고 싶은 강박이 있다 보니까 문장을 자주 고쳐야 하는데, 전 노트에 지우개 자국 남기는 게 싫거든요. 그래서 막 말하듯 휘갈기는 건 종이에 가능한데, 각 잡고 쓰는 게 어려워요. 온라인 글쓰기를 선호하는 이유도 문장을 고친 흔적이 남지 않아서예요. 문단 갈아 끼우기도 편하고요.
말하기와 달리 쓰기엔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하기는 바로 나오지만, 쓰기는 체에 한 번 거르는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의 노트 기록은 말하기와 비슷한 개념인데, 그래도 이걸 통해 정리가 되니까 이메일을 쓸 수 있고, SNS에 글을 쓸 수 있는 거예요. 물에 가라앉지 않는 기름처럼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걸 다듬어 모양을 만들어주는 게 쓰기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김청과 제가 쓴 문장 속에서의 김청은 다른 사람처럼 보여요.
실은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어요(웃음). SNS를 통해 봤을 땐 차분한 성격일 줄 알았는데, 엄청 쾌활하신 것 같아요.
맞아요. 근데 그것도 저이고, 여기 있는 것도 저예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 글쓰기를 한다고 하면, 되게 응원해요. 쓰기를 할 때 또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어요.
사진 제공 l 김청
그런데 꾸준히 쓰기란 쉽지 않아요. 소소문구에선 쓰기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도구도 만들 계획이 있나요?
이미 만들었어요. 바로 이 노트예요. 원래 저희 다이어리 제품 중 하나에 부록처럼 들어 있던 걸 따로 하나의 제품으로 만든 건데요. 제가 표로 도식화해서 일정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디자이너가 제 표에서 착안해 만든 거예요. 스프레드 시트처럼 생겼죠? 일반적인 다이어리는 매달이 다른 장으로 나뉘어 있잖아요. 근데 달의 마지막 날 일정이 다음 달까지 연결되기도 하거든요. 같은 일정을 다음 장으로 넘겨쓰면 불편하잖아요. 그런 불편함을 해결하려고 한눈에 3개월 일정이 다 보이도록 만들었어요. 자세한 기록이 어려운 분들은 이 시트에 할 일 키워드라도 작게 써봤으면 해요. 작은 키워드가 누적되면 삶의 방향을 조망할 수 있게 되거든요.
덕분에 쓰기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네요. 소소문구의 쓰는 사람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요?
소소문구의 쓰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에요. 저희도 페르소나를 설정해 보려 했는데, 그걸 하나의 캐릭터로 말할 수 없겠더라고요. 쓰는 사람이 꼭 젊고 트렌디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또 전시 얘기를 하게 되는데, 기억에 남은 손님이 있어요. 딸과 어머님이었는데, 따님이 40대였고, 어머님은 여든 정도 된 것 같았어요. 따님이 저희를 좋아하셨나 봐요. 저희 브랜드를 좋아하는 분들 중에 연령대 있는 분들이 좀 있거든요. 어머님이 전시를 다 보고 전시 방명록에 후기를 남겨주셨어요.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대략 이래요. ‘딸내미가 좋은 데 가자고 해서 버스 타고 차 타고 하면서 굉장히 고생스럽게 왔는데, 여기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내가 굉장히 젊어진 것 같다. 각자의 관점으로 남겨진 기록을 보니까 아주 홀가분한 기분이다’. 그때 한 번 더 깨달았어요. 누구나 생각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요.
소소문구는 누군가의 모든 흔적을 괜찮다고 응원해 주네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체를 긍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요. 소소문구의 노트들은 되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찾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자 해요. 그런 맥락에서 참새 캐릭터 상품도 만들었고요. 이름은 문덕이에요. 문구 덕후(웃음). 이 참새로 문구 덕후 자아가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하필 참새인 이유가 있어요?
브랜드 방향성이 세련됨보다 친근함이니까 참새가 떠오르더라고요.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혼자 있기보다는 무리를 짓고요. 소소문구도 누구 하나 잘나서 굴러 가는 게 아니에요. 구성원 4명이 함께할 때, 그리고 미래에 합류할 분들이 함께할 때 힘이 있는 브랜드예요.
소소문구에서 일하며 무엇이 가장 만족스럽나요?
사람인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목표를 설정해 이뤄 나가는 과정이 너무 좋아요. 저희는 누군가 모자람이 있다고 해서 서로 질책하지 않고 함께 대안을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은 디자인과 사진으로 나오는 게 아주 행복해요(웃음).
글 사진 l 에디터 이슬기(더.워터멜론 비마이비)
장소 제공 l 커피사(@coffeesa_euljiro)
안녕하세요 비마이비입니다 :)
드디어 내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6-7월 브랜드 세션의 첫번째 세션이 시작됩니다 ❤️
지난 주 진행한 이벤트의 성원에 힘입어 이번주도 구독자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 당첨인원: 선착순 5명
✅ 당첨혜택: '김병규 교수 -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온라인 라이브 세션
✅ 참여방법: 아래 댓글에 '신청합니다!'를 적어주세요!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당첨자분께는 참가 url을 개별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비마이비 6-7월 세션 한번에 보기]
이제 캘린더를 통해 비마이비의 북토크와 브랜드 세션의 일정을 한눈에 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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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하는 사람의 생각》에 밑줄을 세 번이나 그은 문장이 있다. “저는 감동받는 건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감동받는 건 창작자가 갖춰야 할 능력입니다. (중략)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감동받을 수 있어야 된다고 믿어요.” 그런데 감동받는 능력은 창작자에게만 필요한 소양이 아니다.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필요한 의지다. 감동이 일어날 때 평범한 일상은 특별해지고, 흐릿한 순간이 선명해지니까. 그래서 사소함에서 빛을 발견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남들보다 넓은 영역을 이해하고 누린다. 인터뷰 내내 밝게 웃던 김청도 그런 사람이었다. 큰 기획사를 나와 소소문구라는 작은 브랜드로 이직을 결정한 것도, 낙서를 창조의 씨앗으로 만든 것도 모두 감동할 줄 아는 능력 덕이었다. 소소문구에서 디자인 빼고 모든 업무를 맡아 한다는 그는 부대끼며 일하는 동료들과 동료들이 만든 제품에 감사하며, 쓰는 사람들이 완성시킨 제품에 또 감동한다. 그에게 본받을 점은 자신의 능력을 홀로 뽐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감동을 전하며 더 많은 사람을 희락의 장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김청은 쓰는 사람들과 즐거운 교집합을 이뤄가고 있다.
소소문구에 오기 전엔 전시 기획사에서 일했다고요.
일반 전시가 아니라 상업 전시를 하는 곳이었어요. 대표 전시로는 <반 고흐 인사이드>, <앨리스 인 투 더 래빗>, <유미의 세포들> 등이 있어요. 전시 한 번 열리면 50만 명이 찾는 규모가 큰 곳이죠. 제가 미술사를 전공해서 예술을 대중적으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반 고흐 인사이드>를 보고 여기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1년 정도 입사 준비를 해서 지원했죠. 모집 공고가 올라와 있지도 않은데 똑똑 두드려서 뭐라도 하겠다고 한 거예요. 마침 그 기획사에서 아트숍 론칭을 준비 중이었고 운영할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제가 맡았어요. 성취감도 높고, 회사에 보탬도 되는 일이었죠. 그렇게 제 커리어를 MD 쪽으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회사는 MD 업무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전시 전체를 아우를 인력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2년 반 만에 회사를 정리하고 나오게 됐죠. 어디서 일을 다시 할까, 찾던 중에 마침 소소문구 인스타그램 계정에 브랜드 MD 모집 공고가 올라왔어요.
소소문구는 어떻게 알았어요?
저희 아트숍에 입점 돼 있던 거래처였어요. 실장님들과도 사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이름을 알고, 업무적으로 만나 미팅하는 관계였죠. 근데 업무적으로 만나도 그런 게 있잖아요. 한 쪽이 쿵, 하면 짝, 해주는 사람이요. 소소문구와 일할 땐 쿵짝이 잘 맞았어요.
실장님들이요?
아, 저희 대표님들은 실장으로 불리길 원하셔요. 대표란 호칭은 쑥스럽대요.
그럼 쿵짝이 잘 맞아 그곳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은 건가요?
사실 제가 맡았던 아트숍에서 소소문구 제품이 되게 안 팔렸어요. 작은 브랜드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트숍에 제품을 큐레이션 할 때 많은 사람이 찾는 디자인이 있고, 많은 사람이 찾진 않지만 그 제품이 있음으로써 공간에 맥락을 만들어주는, 공간에 품격을 올려주는 디자인이 있거든요. 소소문구가 그런 류였어요. 멋진 맥락을 가진 브랜드였죠. 그래서 소소문구의 브랜드 MD로 일을 하면 제가 어떤 효용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금전적인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겠더라고요. 그 근거로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를 만든다’는 프레이즈를 가져가야 한다고 제안했어요. 다행히 실장님들도 오케이 해주셨죠.
당시 자소서 일부를 페이스북 개인 계정에 올려 두신 걸 봤어요. 이전엔 다른 프레이즈를 가졌는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거죠?
이전엔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문구 제품을 만듭니다’ 이거였어요. 그래서 소소한 일상,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문구를 다루는 곳이었죠. 근데 정작 소소문구의 디자인이나 활동은 소소하지 않았어요. 뭔가 진정성이 있고, 오랜 고민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기준이 명확해 보였죠.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SNS에 전부 공개하는 이유도 동일한 맥락 같았고요. 기록과 문구에 전문성을 가진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록’과 ‘문구’라는 키워드에 기반해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라는 프레이즈를 뽑은 거예요. 심플하게.
소소문구의 가치와 갖고 계신 능력이 딱 맞았네요.
인연이 잘 닿았어요. 마침 제가 백수일 때 소소문구에서 처음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직군을 채용했고요. 이직을 준비하면서 돈만 좇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돈을 많이 벌게 되더라도 자신들의 가치를 성장시킬 의지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죠. 그래서 소소문구의 크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회사 규모는 제가 키우면 되니까요(웃음).
초반에 스스로를 돌멩이에서도 예쁜 구석을 찾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다른 방식으로 보는 걸 좋아해요. 발에 치이는 돌멩이에서 예쁜 구석을 찾는 건 다른 관점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죠. 참, 좋아하는 브랜드 제품을 가져와 달라는 요청에 몇 가지를 준비해봤는데요. 사실 제가 소비를 안 좋아해서 커머셜 제품들은 아니에요.
이 그림은 사무실 책상에 항상 놓여 있는 거예요. 이규태 작가님의 그림이죠. 먼 곳을 응시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존 버거’라는 미술 평론가의 책인데, 역시 다른 방식으로 보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관점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네요.
저는 무언가의 매력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서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고 가는 곳에서 발견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포인트를 짚어주면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이 생기는데, 그게 마케팅의 태도 같아요. 어떤 제품을 포장하는 개념이라기보단 다른 지점을 짚어주는 거요.
소소문구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하게 짚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집중하는 건 쓰는 사람이에요. 제품의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이걸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전달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샘플 노트를 채워 사용법을 알려주는 걸 용례라고 하는데, 저희는 용례 작업을 여느 브랜드처럼 직접 하기도 하지만, 사용자에게 제안하기도 해요. 소소문구의 제품을 완성시키는 대상은 쓰는 사람, 즉 사용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상품들은 실제 사용자들의 방식으로 채워 전시나 이벤트를 통해 보여줘요.
소소문구 제품을 완성시키는 사람은 쓰는 사람이다?
네 맞아요. 어떻게 보면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를 만든다는 말은 쉬워요. 그래서 처음엔 걱정도 많았어요. 뭔가 수식어를 더 붙여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근데 수식어보다 이 문장에 우리의 행동이 붙었을 때 문장에 힘이 더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시를 기획하게 된 거군요.
<나, 해보려고> 전을 열게 된 시기는 ‘데일리 로그 노트’ 출시를 앞둔 때였어요. 31일 동안 매일을 간단하게 기록할 수 있는 노트예요. 마침 제가 합류한 시기였어서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를 마케팅에 바로 적용해보기로 했죠. 이 노트가 쓰는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2가지 색깔의 노트를 12명에게 하나씩 나눠 주고, 그들의 31일이 담긴 노트를 전시했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죠. 이후 디깅 노트를 만들면서 또 다시 쓰는 사람들과 함께 할 거리를 궁리했는데, 그게 <아임 디깅> 전이에요.
<아임 디깅> 전은 다양한 유형의 디깅을 보여줬어요.
<나, 해보려고> 전을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에게 관심사 설문조사를 했는데, 공통 관심사가 7개로 추려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7가지를 디깅하는 사람들을 찾기로 했어요. 저희가 쓰는 사람의 부류를 창작하며 쓰는 사람, 물성 있는 걸 수집하는 사람, 온라인에서 디깅을 하는 사람 이렇게 나눴는데요. 7개 카테고리마다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모두 포함되도록 했어요. 예를 들어 음악 카테고리에 창작하는 사람으로 음악가 이자람 님, LP를 수집하는 유형근 님,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디깅 하는 마케터 님으로 구성했어요. 전시를 보는 분들이 디깅 하는 분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했어요. 검색도 일종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단순한 느낌을 주고 싶었죠.
평소 기록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전시를 통해 기록을 하게 된 분들도 있다고요.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오뚜기’에서 일하시는 강호준 님 디깅 노트예요. 호준 님의 일이 제 커리어와 연관돼 있다 보니, 선배의 노트를 보는 입장으로 봤던 거 같아요. 저의 롤 모델 노트를 보는 느낌으로요. 아무튼, 그분의 디깅 노트도 아름답지 않아요(웃음). 당시 호준 님은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노트는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아,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오뚜기의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 프로젝트’가 디깅 노트에서 출발했다는 글이요.
맞아요. 그분도 하는 일이 너무 많으니까, 프로젝트 별로 내가 왜 이 프로젝트를 했는지부터 어떻게 했는지 등 머릿속에만 있던 내용을 그냥 풀어낸 것 같았어요. 기록 방식이 저와 비슷해서 위안이 됐던 기억이 나요. 호준 님은 처음에 저희가 노트를 드릴 때만 해도 ‘못할 것 같다’고 했던 분이에요. 작년 7월에 노트를 드렸고, 11월에 전시를 론칭했는데, 9월이 되도록 한 장도 못 썼다고요. 괜찮으니까 한 장만이라도 써 달라고 했는데, 막상 기록을 시작하니 너무 좋다는 거예요. 결국 노트 끝까지 다 채우셨어요.
기획자로서 뿌듯하시겠어요. 개인적으로 디깅 하는 게 있나요?
<아임 디깅> 전이 제 디깅의 결과예요(웃음). 전시에 섭외한 분들이 제가 디깅해 온 분들이거든요. 각 카테고리마다 리스트를 추리기 힘들었어요. 섭외하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았거든요.
주로 어떤 사람을 디깅 해요?
어떤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라든지, 한결같은 결의 결과물을 내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요. 그런 사람들을 많이 기억해 뒀다가 함께 일을 하는 상상을 하죠.
주체적인 쓰기를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대학생 때 학교 문구점에서 이 옥스퍼드 노트를 산 이후부터요. 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노트만 써요. 집에도 엄청 많아요. 그냥 그날 그날 필요한 업무 내용들을 막 적는 편이에요.
이렇게 큰 노트를 써요?
제 글씨가 좀 크거든요. 저는 밥을 먹을 때 남기더라도 넉넉한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조그만 수첩에 쓰면 쓰고 싶은 말이 더 많아질 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요(웃음). 그리고 이게 이렇게 크고 120장이나 되는데, 4천 원밖에 안 해요! 저도 예쁘고 작은 노트 써보려고 했는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더라고요.
쓰는 사람이 되려면 도구를 잘 활용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조금 있었는데,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저는 이 낙서 같은 기록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제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혼재되어 있어서 생각을 가둬 두면 일 진행이 불가능해요. 이렇게 막 쏟아내야 하죠. 전 낙서가 생각의 씨앗이라고 생각해요. 열을 맞춰 정갈하게 쓰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소문구가 추구하는 쓰기의 방향은 통화하면서 그리는 의미 없는 동그라미 같은 거예요.
자주는 아니지만, SNS 기록도 종종 하시던데요. 글이 사건과 감상을 소재로 한 문학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SNS는 주로 언제 하시나요?
되게 좋게 봐주셨네요(웃음). 한때는 SNS 기록을 되게 활발히 했어요. 20대엔 싸이월드에 열심이었죠. 근데 사회생활 시작하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까 잘 못하게 되더라고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욕망도 없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사건과 감상을 소재로 한다는 표현이 맞는데, 귀찮아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SNS에 써요.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말이요. 가장 최근엔 저희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그 사건에 대한 감상을 썼어요.
보통 SNS엔 공개 허용 범위가 넓은 내용을 쓰곤 하는데, 중요한 내용을 SNS에 기록한다는 게 의아해요.
물성이 있는 일기장에 쓸 수도 있지만, 노트의 색이 바래는 등 영구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나중에 다시 들춰 보기도 힘들고요. 오히려 더 잘 보관하고 싶어서 SNS에 남기는 거예요. SNS에 한 번 올리면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도 편해요.
그럼 일기장은 따로 안 쓰나요?
제 일기는 SNS에 있는 게 다예요. 왜냐하면···, 너무 변명하는 것 같은데(웃음). 잘 쓰고 싶은 강박이 있다 보니까 문장을 자주 고쳐야 하는데, 전 노트에 지우개 자국 남기는 게 싫거든요. 그래서 막 말하듯 휘갈기는 건 종이에 가능한데, 각 잡고 쓰는 게 어려워요. 온라인 글쓰기를 선호하는 이유도 문장을 고친 흔적이 남지 않아서예요. 문단 갈아 끼우기도 편하고요.
말하기와 달리 쓰기엔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하기는 바로 나오지만, 쓰기는 체에 한 번 거르는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의 노트 기록은 말하기와 비슷한 개념인데, 그래도 이걸 통해 정리가 되니까 이메일을 쓸 수 있고, SNS에 글을 쓸 수 있는 거예요. 물에 가라앉지 않는 기름처럼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걸 다듬어 모양을 만들어주는 게 쓰기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김청과 제가 쓴 문장 속에서의 김청은 다른 사람처럼 보여요.
실은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어요(웃음). SNS를 통해 봤을 땐 차분한 성격일 줄 알았는데, 엄청 쾌활하신 것 같아요.
맞아요. 근데 그것도 저이고, 여기 있는 것도 저예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 글쓰기를 한다고 하면, 되게 응원해요. 쓰기를 할 때 또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어요.
사진 제공 l 김청
그런데 꾸준히 쓰기란 쉽지 않아요. 소소문구에선 쓰기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도구도 만들 계획이 있나요?
이미 만들었어요. 바로 이 노트예요. 원래 저희 다이어리 제품 중 하나에 부록처럼 들어 있던 걸 따로 하나의 제품으로 만든 건데요. 제가 표로 도식화해서 일정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디자이너가 제 표에서 착안해 만든 거예요. 스프레드 시트처럼 생겼죠? 일반적인 다이어리는 매달이 다른 장으로 나뉘어 있잖아요. 근데 달의 마지막 날 일정이 다음 달까지 연결되기도 하거든요. 같은 일정을 다음 장으로 넘겨쓰면 불편하잖아요. 그런 불편함을 해결하려고 한눈에 3개월 일정이 다 보이도록 만들었어요. 자세한 기록이 어려운 분들은 이 시트에 할 일 키워드라도 작게 써봤으면 해요. 작은 키워드가 누적되면 삶의 방향을 조망할 수 있게 되거든요.
덕분에 쓰기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네요. 소소문구의 쓰는 사람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요?
소소문구의 쓰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에요. 저희도 페르소나를 설정해 보려 했는데, 그걸 하나의 캐릭터로 말할 수 없겠더라고요. 쓰는 사람이 꼭 젊고 트렌디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또 전시 얘기를 하게 되는데, 기억에 남은 손님이 있어요. 딸과 어머님이었는데, 따님이 40대였고, 어머님은 여든 정도 된 것 같았어요. 따님이 저희를 좋아하셨나 봐요. 저희 브랜드를 좋아하는 분들 중에 연령대 있는 분들이 좀 있거든요. 어머님이 전시를 다 보고 전시 방명록에 후기를 남겨주셨어요.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대략 이래요. ‘딸내미가 좋은 데 가자고 해서 버스 타고 차 타고 하면서 굉장히 고생스럽게 왔는데, 여기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내가 굉장히 젊어진 것 같다. 각자의 관점으로 남겨진 기록을 보니까 아주 홀가분한 기분이다’. 그때 한 번 더 깨달았어요. 누구나 생각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요.
소소문구는 누군가의 모든 흔적을 괜찮다고 응원해 주네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체를 긍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요. 소소문구의 노트들은 되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찾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자 해요. 그런 맥락에서 참새 캐릭터 상품도 만들었고요. 이름은 문덕이에요. 문구 덕후(웃음). 이 참새로 문구 덕후 자아가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하필 참새인 이유가 있어요?
브랜드 방향성이 세련됨보다 친근함이니까 참새가 떠오르더라고요.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혼자 있기보다는 무리를 짓고요. 소소문구도 누구 하나 잘나서 굴러 가는 게 아니에요. 구성원 4명이 함께할 때, 그리고 미래에 합류할 분들이 함께할 때 힘이 있는 브랜드예요.
소소문구에서 일하며 무엇이 가장 만족스럽나요?
사람인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목표를 설정해 이뤄 나가는 과정이 너무 좋아요. 저희는 누군가 모자람이 있다고 해서 서로 질책하지 않고 함께 대안을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은 디자인과 사진으로 나오는 게 아주 행복해요(웃음).
글 사진 l 에디터 이슬기(더.워터멜론 비마이비)
장소 제공 l 커피사(@coffeesa_eulj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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