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엉뚱함을 가능성으로 이끄는 굵은 심지 l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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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세상은 엉뚱한 사람들이 바꾼다‘. 이 문장을 보고 그렇지,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이라는 기준 아래 공통된 생각을 공유하는 사회에서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괴짜들이었다. 그들의 물음표는 대체로 환영받지 못했지만, 그들은 일을 밀어붙이는 힘도 세서 물음표의 여정에 기꺼이 몸을 던져 세상을 조금씩 바꿔왔다. 권용주 팀장에게서 그러한 기운을 받았다고 하면 믿을까?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꺼낸 그의 이야기엔 묵직한 심지가 느껴졌다. 게임 속 IP를 게임 바깥으로 꺼내 보이는 일을 ‘굳이’ 벌였을 때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지만, 그는 기어이 그 일을 해냈다. 덕분에 앞으로 우리는 ‘인생은 게임’이라는 말을 정말 실감할 수 있을 테다.

에디터 이슬기



안녕하세요, 팀장님!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넥슨에서 *게임 IP와 연관된 여러 다양한 사업 업무를 맡고 있는 권용주입니다.

 

*게임 IP: IP는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을 말하는 것으로 창조적 활동을 통해 창출해낸 무형적 가치를 모두 통칭함. 게임에 등장하는 그래픽 요소, 시나리오 등이 모두 게임 IP에 해당됨.

 

종종 뜬금없는 일을 벌이기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저는 약간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라, 공상도 많이 하고 딴 짓도 많이 해요. 친구들은 제가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하는 게 정말 신기하대요(웃음). 지금도 시간 나면 혼자 사업기획서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데요. 용기가 없어서 아직 사고를 쳐보진 못했네요. 어릴 때부터 규칙적인 삶을 싫어했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뭐 대단하게 눈에 띄는 일들을 한 것도 아니지만, 사회 시스템의 모순에 늘 불만이 있는 학생이었어요.

 

왠지 넥슨에 오기 전에도 스토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 넥슨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넥슨에 정착하기까지 이야기를 하면 얘기가 좀 길어지는데요(웃음). 대학 입시 때 ‘예술학과’라는 이름만 보고 멋있는 것 같아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학했어요. 이때부터 제 인생의 방향이 설정된 것 같아요. 반대를 무릅쓰고 들어간 학과였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굉장히 심오하고 현학적인 학문을 공부하는 곳이더라고요. 게다가 미술에서 느껴지는 고상한 분위기가 저와는 잘 안 맞았어요. 그래서 영화 제작 현장이나 공연장 같이 좀 더 대중과 직접 호흡하는 영역을 기웃거리다가 만화 애니메이션을 알게 되고, 자연스레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입사하게 되었죠.

 

원래 공부하던 미술과 애니메이션이 많이 다른가요?

일반적으로 미술 하면 떠오르는 회화나 조각 등을 파인 아트라고 하는데, 사실 그 당시 파인 아트와 애니메이션은 간극이 컸어요.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파인 아트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 받고 있었거든요. 근데 전 그것들에 끌리더라고요. 캐릭터에 눈을 뜬 건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일하면서였어요. 그때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지원 업무를 담당했는데, 당시 국산 캐릭터의 성공 사례가 하나 둘 나올 때라 캐릭터 시장이 흥미롭게 보이더라고요. 그러다가 넥슨에서 일하던 후배에게서 채용 소식을 듣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죠.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때 넥슨을 처음 알았어요. 카트라이더도 처음 알았고요.

 

처음 들어본 회사인 데다가 관심사와는 멀었던 게임 회사인데, 넥슨으로 이직을 결심한 이유가 뭐였어요?

당시 2000년도 중반엔 게임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해였음에도 많은 사람에겐 미지의 영역이었어요. 그래서 이 분야에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게임이 갖고 있는 문화적 특수성이 달라 보였달까요. 애니메이션과 같은 영상 캐릭터는 작가나 제작사의 관점에서 만든 완성형 캐릭터예요. 그래서 대중은 캐릭터를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게임 캐릭터는 100명의 유저가 있다면, 100명이 모두 다른 경험을 쌓고, 다른 감정을 이입해요. 그래서 하나의 캐릭터도 100가지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죠. 이렇게 게임 캐릭터는 유저의 관여도가 높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정말 그렇네요. 매력적인 캐릭터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캐릭터도 사람과 똑같은 것 같아요.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만의 특징이 없으면 쉽게 질리게 되잖아요. 캐릭터도 다른 캐릭터와 구별되는 개별적인 특징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핑구’와 ‘보노보노’를 좋아하는데요. 디즈니 캐릭터만큼 유명한 캐릭터들은 아니지만, 너무 재밌는 친구들인 것 같아요. 매일 말썽을 피우는 핑구의 주변은 실제 우리의 일상과 너무 닮아 있어요. 그 안에서 영국 특유의 위트로 풀어지는 스토리가 재밌고요. 보노보노는 명대사 “때릴 거야?” 때문에 좋아해요. 너무 귀엽잖아요.

 

개별적인 특징이라고 해서 아주 독특한 건 아닌 듯해요. 결국 특수성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스토리에서 만들어지나 봐요. 게임 캐릭터 중에서는 어떤 IP를 좋아하세요?

저는 게임에서 그다지 존재감이 강하지 않은 NPC들에게 관심이 가요. 보통 NPC는 RPG 게임에 등장하는데요. 그것들은 게임 유저들에게 퀘스트를 주는 등의 역할을 해요. 그 NPC들은 저마다 다양한 직업군을 갖고 있어요. 왠지 사연이 있을 법한 캐릭터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NPC가 주는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그 캐릭터의 욕구나 욕망 같은 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게임 속에서 파편화 되어 있는 스토리가 NPC의 안내에 따라 길이 잡히는 느낌도 들고요. 여행지를 안내하는 가이드 같아요.

 

팀장님 얘길 들으니 저도 NPC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그래서 저는 아주 스쳐가는 NPC에게서도 스토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메이플스토리’에는 공익요원, 대장장이, 요리사 같은 NPC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들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저 요리사는 어떤 요리를 하면서 삶을 보낼까’, ‘저 공익요원은 퇴근하면 뭘 할까’. 사실 뭐, 혼자 소설 쓰는 거죠(웃음).

 

너무 재밌는 생각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NPC 덕분에 게임 속 세상에 사회가 형성되는 거잖아요. 그냥 내 캐릭터만 있다면 사회로 볼 순 없지만요.

이건 저만의 생각인데, NPC들을 인터뷰하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어요. 우체부 NPC를 불러서 요즘 어떻게 살고 있냐, 물으면서 가상의 대화를 나누는 거죠.

 

와, 게임 유저들 반응 폭발적일 것 같은데요.

현실적으로 당장 기획하긴 어려울 듯한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걸 웹툰이나 소설 등으로 작업 해보실 분이 네코제에 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웃음).


네코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네코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2014년 즈음이었나, 서울코믹월드에 처음 가본 적이 있어요. 거기서 애니메이션 캐릭터 코스프레라는 새로운 문화를 맛보게 됐는데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많은 10대가 자발적으로 굿즈를 만들어 팔고 캐릭터 분장을 하고 노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그런 문화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들의 열정과 취향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어른들이 만든 정답과 다르게 노는 아이들이잖아요. 저는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해요.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가 회사에 제안했는데, 다행히 당시 본부장님(현재 대표님)도 좋게 봐주셔서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어요.


서울코믹월드에서 영감을 얻어 네코제를 기획하게 됐군요.

맞아요. 저는 유저들이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기획자나 개발자가 만든 로직을 벗어나서요. 지금까지 네코제 참여자들은 게임 IP를 2차 창작물로 만들어 게임을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소비하고 있어요.


네코제를 진행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나요?

사실 네코제는 굉장히 섬세한 프로젝트예요. 행사 관계자가 일부 참가자들을 대면하는 일반 오프라인 행사와 달리, 네코제는 수백 명의 유저 창작자들을 직접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죠. 유저들의 감성을 파악하고, 그들이 정성 들여 만든 수백 가지의 창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려면 굉장히 디테일한 운영안이 마련되어야 해요. 그래서 많은 업무 리소스에 부담이 될 때도 있긴 해요. 하지만 네코제를 진행할 때마다 이 일을 단순히 업무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마케팅 효과도 무시 못하지만, 제 개인적으론 문화적 의미가 더 큰 것 같거든요.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1인 창작자를 발굴한다는 취지에서요. 네코제에서 유저 창작자나 방문자 분들의 표정을 보면, 너무 진지하고 행복해 보여요. 그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MZ세대에게 이런 공식적인 자리가 너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럴 땐 사명감이 생기기도 해요.


말씀하셨듯이 네코제는 MZ세대 참여율이 높은데요. 게임 IP를 기반으로 하는 네코제가 MZ세대를 사로잡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MZ세대에게 게임을 통한 놀이 문화는 보편적인 것 같아요. MZ세대는 친구들과 만나면 게임 이야기부터 하고, 오프라인으로 만나지 않더라도 함께 게임을 하면 친구가 되더라고요. 어느 세대에서나 즐거움을 찾는 행위들이 모여서 문화가 되는 것 같아요. 네코제는 게임이라는 소재를 통해 새로운 놀이 문화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네코제를 보면서 게임이 삶에 긴장도를 풀고 창의성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고 느꼈어요. 팀장님이 생각할 땐 게임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게임, 만화 등 특정 장르 자체에 주목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이런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심리나 생활 패턴에 더 관심이 많죠. 그래서 사람들이 게임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를 관찰해요. 게임을 소비하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게임이 삶의 관계적인 면에 들어오면 상호 간에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세대 간이든, 친구 간이든, 게임으로 소통한다는 말은 이제 너무 보편적이죠. 특히 10대 남자 아이들의 경우엔 게임이 아니면 대화가 안될 정도예요. 게임이 일상 깊이 침투했기 때문에 이걸 받아들이지 않거나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게임은 일상을 즐겁게 해주고요.


그런데 게임 캐릭터를 상용화할 땐 캐릭터에 게임의 색채가 짙으면 좋지 않다고요.

게임 캐릭터가 게임을 벗어나려면 대중에게도 어필해야 하는데, 게임의 색채가 강하면 게임 유저들만의 전유물로 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게임 캐릭터가 게임 밖에서 보였을 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캐릭터 설정이나 그래픽들을 재정의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어요. ‘다오’와 ‘배찌’도 지금 한창 ‘라인프렌즈’와 협업으로 성형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들으면 들을수록 캐릭터는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하네요. 특히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데도 유용한 거 같아요.

이제 우리의 모든 생활이 디지털화 되고 있잖아요. 디지털 기능 속에 유희적이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더해지면 새로운 가치가 발견돼요. 그 요소가 음악일 수도 있고, 사람의 목소리일 수도 있는데, 캐릭터는 시각적으로 보여주니까 굉장히 구체적이죠. 그리고 어떻게 보면 같은 사람의 얼굴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매력도가 떨어질 수 있는데요. 캐릭터는 자주 노출될수록 친숙하게 다가오는 듯해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어떤 게 있을까요?

포켓몬스터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이 증강현실 게임으로까지 이어졌잖아요. 포켓몬이 아니었다면 AR 게임이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을까 싶어요.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수많은 몬스터의 특징들이 게임으로 이어지니까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게임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아이들 같은 경우엔 ‘포켓몬 고’를 하면서 평소엔 무심하게 지나쳤던 주변 지형들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이 점이 매우 신선했어요. 요즘 워낙 매체가 다양해졌으니, 테크 기반의 기능뿐만 아니라 캐릭터가 주는 감성을 접목시켜 기술과 문화의 융합을 이루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브랜드적인 관점에서 캐릭터가 가진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미키마우스나 키티는 역사가 깊은 캐릭터들이죠. 이것들은 매력적인 외형으로 지금도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경제적 효과를 만들고 있어요. 그런데 이들이 꾸준히 사랑받는 건 탄탄한 브랜드 스토리 덕분이에요. 요즘 대중은 캐릭터의 외형보다 스토리 기반의 캐릭터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브랜드에서도 스토리텔링이 중요하잖아요.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화자를 캐릭터로 잡으면 소비자에게 더 개성적이고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봐요.


이제 앞으로 게임 캐릭터가 게임의 일부 요소가 아닌, 캐릭터 자체 생산력을 가지길 바란다고요.

게임 캐릭터는 게임의 세계관에 속해 있다 보니까, 캐릭터 자체의 스토리와 세계관이 탄탄하지 못한 면이 있어요. 유저와 함께 만들어가는 오픈형 콘텐츠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게임 캐릭터는 유저들에게만 인기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캐릭터를 **스핀오프 해서 새롭게 캐릭터라이징 해야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고 봐요.


**스핀오프: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나 설정에 기초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원작의 세계관을 일정 공유하지만 주인공이나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앞서 사람들의 소비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어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지금 저의 커리어는 캐릭터로 시작해 캐릭터로 끝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저는 동시대 사람들의 소비 문화와 그 문화를 좀 더 풍성하게 발전시키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그래왔듯이요. 캐릭터나 게임 IP는 그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죠. 아무튼 사회적인 통념으로 내려오던 공식을 문화적인 기획으로 깨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네코제도 그 일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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