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렌트> 브랜드 세션에서 발견한, 사람과 브랜드를 담는 공간에 대한 4개의 인사이트
2022년은 ‘팝업의 시대’입니다. 성수동, 서울숲을 시작으로 더현대서울, 코엑스까지. 하루에도 몇 개씩 새로운 팝업 스토어(이하 팝업) 소식이 들려옵니다. 갈수록 빠르게 변하는 고객 취향과 유행에 대응하고,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죠. 하지만 팝업 스토어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만 좋은, 의미 있는 경험을 찾기 어려운 팝업들도 생겨나죠.
프로젝트 렌트를 이끄는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의 강의는 팝업이 범람하는 지금,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프로젝트 렌트는 팝업 스토어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2018년 6.5평 매장으로 시작해 가나초콜릿,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멜릭서 등 다채로운 브랜드들의 팝업을 성공시켰습니다. 이젠 사람들이 성수동과 서울숲에서 반짝이는 R 로고를 찾아다닐 정도로 성장했죠. 매일유업 ‘어메이징 오트’ 팝업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참석한 최 대표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자신감 있고, 단호했습니다.
[사진 최진수]
“하나의 공간,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이야기.” 최 대표가 강의를 시작하면서 강조한 메시지입니다. 결국 핵심은 물건을 사줄 고객이 아닌,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이라는 것을 짚은 최 대표의 강의는 팝업 스토어의 의미가 흐려지는 지금, 본질의 중요함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프로젝트 렌트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을 짧게라도 소개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시작이었습니다. 요즘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보여주는 것이 너무 어렵죠. 서울 좋은 곳에 매장을 내려면 권리금만 1억, 보증금 9천, 인테리어 좀 신경쓰면 한 5천. 사람을 뽑아서 운영하려면 최소 두 명. 1년이면 3~4억이 그냥 날아가요. 10평 기준으로 말이죠. 그런 부담은 줄이면서 사람들이 모르는,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모두에게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저희도 설득하기 힘들었고, 건물주 분들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하셨죠. 건물의 계약 사이의 비는 기간 2~3달을 이용하려 했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입주한 건물주에게 ‘오프라인 상권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했어요. 상권은 골목 하나 차이로 완전히 달라지고, 그만큼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일 예상 매출, 고객 유동성, 영업시간 같은 데이터를 뽑아드리겠다고 한 거죠. 정보요.
저희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이런 상황에서 단 사흘만에 만든 ‘22 days’라는 카페였습니다. 영업일 기준 딱 22일만 운영하는 카페를 만든 거죠. 딱히 공사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가구들만 좀 갖다두고, 바닥은 공사 예정인 콘크리트 그대로 두고, 오키로북스의 책을 전시했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와 주신 거에요. 실제 결제는 5천 건, 실제 방문자 수 최소 1만 명 이상, 와서 둘러보거나 책만 구매한 분들까지 합하면 1만 8천명 이상이더라고요. ‘정말 22일 후에 문 닫는거냐’, ‘이렇게 좋은데 왜 벌써 문을 닫냐’ 같은 피드백도 많이 받았습니다. 더 재밌었던 건, 저희가 카페 운영을 마친 후 대규모 인테리어 공사를 한 다른 공간과 매출이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우리는 항상 하드웨어에 가장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산이 100억이 있다고 가정하면 일단 인테리어 전문가나 건축가부터 만나겠죠. 그렇게 하다 보면 공간을 채울 소프트웨어는 신경을 못 쓰게 됩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전세계의 하드웨어를 둘러볼 수 있죠. 이젠 공간을 채우는 소프트웨어가 사람들이 그 공간을 와야 할 이유가 되고, 핵심이 된 겁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만으로 얼마나 사람들을 모으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프로젝트 렌트는 그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카페는 잘 됐지만, 프로젝트 렌트의 일을 설득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예시를 만들려 했고, 그 첫 번째 결과물이 평양 슈퍼마케트였죠. 지금 보면 참 별 거 없어요. 굿즈라고 해야 과자 5종, 프로파간다 포스터 10종. 새터민께서 만들어주신 과자 정도가 전부였죠.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핑크핑크한 감성을 살렸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게 즐겨 주시더라고요. 조용한 서울숲 골목에 웬 또라이가 하나 나타난 거죠.
[자료 출처 Design Jungle]
'너 그러다 큰일난다', ‘양복 입은 사람이 돌아다니면 무조건 잡혀간다’ 같은 농담도 들었습니다. 마침 그 때 북미정상회담이 잡혔거든요. 그런데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더 반응이 좋았습니다. 나중엔 아트샵 형태로 확장도 하고, ABC, BBC 등에서 취재도 했죠. 저희가 딱 2주 운영하고 종료했는데, 취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연락도 받았습니다. 팝업이라고 해서 짧게 했다고 답했더니, 다음에 생기면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이 때부터 탄력을 받아서 다양한 브랜드와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트롤스페이퍼(Trolls Paper), 철제 가구 브랜드 레어로우(RARERAW), 콘텐츠 플랫폼 폴인(fol:in), 비건 뷰티 브랜드 멜릭서(melixir) 등, 각양각색의 브랜드 팝업 스토어를 기획하고 만들었죠. 특히 당시의 멜릭서는 백화점 입점 사례 최초로 모든 오브제를 종이로만 만들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전엔 그런 사례 자체가 없었거든요.
[자료 출처 멜릭서]
성장은 숫자로도 나타났습니다. 저희와 처음 했던 곳 중 하나인 독립출판 서점 오키로북스는 온라인 판매가 300% 성장했어요. 대전의 문구 브랜드인 프렐류드 스튜디오는 5개월 사이 인스타 팔로워가 2배 넘었고, 캔와인 BABE는 마켓 세일즈가 550% 이상 성장했죠. 최근에 진행했던 가나초콜릿 팝업은 누적 방문객이 1만 명을 훌쩍 넘었고, 워낙 인기가 좋아 기간을 연장해야 했습니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를 만드는 수많은 브랜드들의 팝업을 만들어왔습니다. 매번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굳이 우리 공간을 찾아와야 할 이유를 줘야 한다.”
마케팅, 브랜딩, 세일즈 담당자는 모두 생산자들이죠. 생산자 입장에서는 고객들에게 우리 제품은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색다르고 남다른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다 욕심이에요. 소개팅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겠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떨까요? 부담스럽고 만나고 싶지 않아지겠죠.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우리 브랜드만 보여줄 수 있는, 우리 브랜드여서 말할 수 있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 또 하나는 “사람들은 비합리적이다”라는 것입니다. 2007년, 미국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조슈아 벨 (Joshua Bell)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워싱턴 지하철역에서 버스킹을 하면 얼마를 벌지 알아보는 것이었죠. 조슈아는 45분 동안 연주하며 32달러를 벌었습니다. 요즘 환율로 따지면 5만원이 안 되죠. 하나에 70억 원이 넘는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고,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는 세계 정상급 음악가였는데도 말이죠.
결국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를 결정짓는 또 하나의 핵심은 맥락(context)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 브랜드만 보여줄 수 있는 메시지와 분위기, 그리고 우리 공간을 찾아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하죠.
저는 이걸 ‘쌀집 프로젝트’를 하면서 배웠습니다. 한국에는 1,452종의 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아는 분들은 거의 없죠. 그래서 벼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둘러보고 체험하면 더 기억에 남겠다는 생각에, 다양한 벼의 이야기를 담은 굿즈들을 만들었어요. 판매하는 28종의 벼를 예술 작품처럼 전시하고, 마치 논밭에 온 것 같도록 경험의 디테일을 살렸죠.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이 팝업에서는 쌀 200g을 7천원에 팔았습니다. 당시 경기미가 200g 기준 500원, 한 가마에 5만원이었죠. 비싸다는 유기농 밀키퀸은 200g에 1,8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프로젝트 렌트에서 쌀이 비싸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어요. 맛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나누고 싶어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사야 할 이유에 따라 가격이 바뀌고, 가치가 달라집니다.
“좋은 팝업 스토어가 뭔가요?” 제가 자주 받는 질문이고, 여러분들도 가장 궁금하실 것 같은 주제죠. 저는 항상 이에 대해 '다음이 기대되는가?'라고 답해요. 사람들이 '다음에 언제해요?' 라고 물어보는 것이 저희의 성공 기준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왜 브랜드의 팬이 될까요? 그 브랜드의 미래가 더 멋지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감을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그 고민의 깊이가 팝업의 성패를 가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걸 많이 느꼈던 팝업이,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초기에 진행한 성수당 팝업이었어요. 지금까지도 프로젝트 렌트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잘 된 프로젝트입니다. 사실 매출로만 보면 최악이었습니다. 방문자도 적었죠. 100% 예약제에, 24개의 슬롯만 열어놨고, 그나마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1시간 반만에 매진됐죠. 그렇게 해서 오신 고객이 약 200명 쯤 됩니다. 기존의 KPI(Key Performance Index)로 보면 실패한 케이스죠.
성수당 팝업의 의의는 다른 데 있습니다. “서울숲에 프로젝트 렌트라는 이단아가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알려준 프로젝트인 것이죠. 그래서 가장 성공적이라고 말합니다. 성수당은 코로나19로 답답하고, 걱정이 많아진 사람들이 쉬고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김가근 선생님의 굿을 촬영한 영상을 배경으로 재생하고, 신당도 선생님이 직접 그리신 호랑이와 초로 꾸몄습니다. 좋은 에너지를 받아갈 수 있는 부적과 엽서도 준비했죠. 저희는 오직 성수당에서만 할 수 있는, 다음에 또 하고 싶고 기대되는 경험을 준비했습니다. 그 덕분에 방문자 수도, 매출도 적었지만 프로젝트 렌트가 가장 잘 알려지는 프로젝트가 됐죠.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팝업(스튜디오 i)을 할 때도 직원 분들에게 “차는 가지고 오지 말아달라,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고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굿즈만 채우고, 현대자동차 로고도 다 뺐습니다. 아이오닉 로고도 최소한으로만 넣었죠. 제가 이 팝업이 잘 됐다는 것을 느꼈던 때는, 사람들이 "이거 누가 해요?"라는 질문을 할 때였어요. 현대자동차라고 설명해주면 “그 현대자동차가 이런 걸 한다고요?”라는 반응이 돌아왔죠. 그 동안 현대자동차에서 볼 수 없었던 경험이니까요. 그런 것을 재밌어 하시더라고요.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오프라인 스토어가 온라인의 편리함과 기능을 따라잡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겠죠. 단순히 인증샷 올릴 벽이 아닌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야기와 경험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려고 해도, 공유하고 싶은 스토리나 경험이 없으면 올릴 것이 없으니까요. 단순히 유행을 따라서 겉만 그럴듯하게 준비한 건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명확히 준비했는지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봅니다.
일본에 히가시야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일본 전통 와가시 (화과자)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놓은, 오가타 신이치로의 브랜드죠. 일반적으로 일본 화과자점은 기본적으로 200년은 돼야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지금은 2003년 만들어진 히가시야가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와가시 브랜드가 됐죠. 오가타는 전통이 어떤지가 아니라 ‘모던한 일본인의 일상은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런 이미지를 설계하고 제품과 공간에 적용했습니다. 먹는 과정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되게 만든 것이죠.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매장을 화려하고 멋지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결국 마케팅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니까요. 저는 이것을 프로젝트 렌트 4호점에서 부산 커피 위크를 진행하면서 느꼈습니다. 4호점이 위치한 이대앞 거리는 수년 째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모으는 사회적 실험을 해 보자’는 오기로 보란듯이 그 곳에서 팝업을 했죠. 인테리어가 세련되거나 한 건 아니었습니다. 부산 커피 위크 포스터를 붙이고 시트지로 깔끔하게 마감하는 정도였죠.
오픈 첫날 일요일 오전부터 난리가 났습니다. 팝업 기간 동안 하루 평균 방문자는 1,700명, 주말엔 2,700명 까지 뛰었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이 즐거워한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커피와 부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다양한 커피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너 때문에 10년 만에 이대 앞에 처음 와봐", 이 말을 제일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모여서 신나게 놀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가나초콜릿 팝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초콜릿을 딱 세 번 삽니다. 그 세 번이 아니면 선물로 받아야 먹죠. 그래서 ‘사람들이 초콜릿을 즐기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자’를 핵심으로 잡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감각의 경험을 제공할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디저트와 함께 초콜릿을 맛보고, 쇼콜라티에와 함께 나만의 초콜릿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했죠. 가나초콜릿의 역사를 차분히 둘러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고요.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저희의 노력은 고객들의 반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10평 내외 공간에서 1~2분 정도 머무르는데, 가나 초콜릿 하우스는 평균 60~80분 동안 있었습니다. 성수역에서 15분 넘게 걸어야 하는 공간인데도 말이죠. 6주 동안 2만 7천명 이상이 방문했고, 하나에 3만 5천원짜리 초콜릿 페어링 코스는 오픈 1분만에 매진됐죠.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가나 초콜릿이라는 브랜드에 자발적으로 몰입했습니다. "가나초콜릿이 처음부터 이런 브랜드였던 느낌." "굿즈만 놔두는 시늉인 줄 알았는데, 초콜릿에 진심인 걸 확인했다."라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메시지와 경험에 집중한 것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여러분, 브랜드가 시늉만 하는지 진심을 담는지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래서 좋은 팝업, 나아가 좋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딩은 진심으로, 깊이있게 준비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브랜드는 팝업 스토어로 어떤 이야기를, 어떤 경험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꼭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Q 브랜딩이 잘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A 브랜드가 한 번에 잘 될 수는 없어요. 시간을 두고 키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와 함께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라고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해요. 애플은 정말 철저하게 순간들에 대해서만 얘기하죠. 그래서 경품도 없고요. 삶에 대해서 얘기하잖아요. 제품 개발할 때 의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게 전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그 브랜드가 가치있다고 느껴지는 상황을 만드는 것인가가 중요해요.
Q 프로젝트렌트는 팝업을 준비하기 위해 기간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A 프로젝트 기간은 아이템마다 다르지만 기본 3개월이 안정적이기도, 적절하다고고 생각해요. 사실상 1개월은 그 브랜드를 이해하고 서로 의견을 맞추고, 계약관계를 정리하는 데 필요하거든요. 사실, 저희 모델은 VC들도 이해하기 힘들어해요. 아직도 제가 하는 이걸 취미활동이라고 생각하시는 사람들도 있고요.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얘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얘기하고 이해하면 하지 말라”고 하거든요.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저희를 믿고 맡겨주시기를 부탁드려요. 가나초콜릿도 롯데가 저희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어요. 이 영역은 실행이 90%라서 현장에서 생기는 변수의 대부분은 기획서에 담을 수도 없어요. 최종 퀄리티에 대한 고민을 더 하는 것이 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Q 같은 공간도 다르게 만드는 프로젝트렌트만의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A 특별한 것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쓸데없는 것을 최대한 줄이는 거죠. 컨셉 하나에만 집중을 해야 고객도 온전히 그걸 느껴요. 우리 모두 자기 일 이외의 것들에는 집중력이 매우 떨어져요. 친한 친구하고 얘기하면서도 딴 생각 하잖아요. 명확한 방향을 정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집중시켜야 해요. 일관성이라고 하죠. 그걸 찾아내는 게 참 조심스럽고 어렵지만요. 뭘 자꾸 넣으면 구차해져요. 어려워지고. 덜어내고 버리는 게 항상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사진 최진수]
"오직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스토리만을 온전히 담는 매장". 프로젝트 렌트 홈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문장입니다. 필라멘트앤코 최원석 대표의 브랜드 세션을 통해 팝업이라는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팝업 스토어라는 공간을 채우는 공기와 이야기는, 새로운 모험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2022년은 ‘팝업의 시대’입니다. 성수동, 서울숲을 시작으로 더현대서울, 코엑스까지. 하루에도 몇 개씩 새로운 팝업 스토어(이하 팝업) 소식이 들려옵니다. 갈수록 빠르게 변하는 고객 취향과 유행에 대응하고,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죠. 하지만 팝업 스토어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만 좋은, 의미 있는 경험을 찾기 어려운 팝업들도 생겨나죠.
프로젝트 렌트를 이끄는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의 강의는 팝업이 범람하는 지금,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프로젝트 렌트는 팝업 스토어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2018년 6.5평 매장으로 시작해 가나초콜릿,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멜릭서 등 다채로운 브랜드들의 팝업을 성공시켰습니다. 이젠 사람들이 성수동과 서울숲에서 반짝이는 R 로고를 찾아다닐 정도로 성장했죠. 매일유업 ‘어메이징 오트’ 팝업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참석한 최 대표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자신감 있고, 단호했습니다.
[사진 최진수]
“하나의 공간,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이야기.” 최 대표가 강의를 시작하면서 강조한 메시지입니다. 결국 핵심은 물건을 사줄 고객이 아닌,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이라는 것을 짚은 최 대표의 강의는 팝업 스토어의 의미가 흐려지는 지금, 본질의 중요함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프로젝트 렌트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을 짧게라도 소개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시작이었습니다. 요즘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보여주는 것이 너무 어렵죠. 서울 좋은 곳에 매장을 내려면 권리금만 1억, 보증금 9천, 인테리어 좀 신경쓰면 한 5천. 사람을 뽑아서 운영하려면 최소 두 명. 1년이면 3~4억이 그냥 날아가요. 10평 기준으로 말이죠. 그런 부담은 줄이면서 사람들이 모르는,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모두에게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저희도 설득하기 힘들었고, 건물주 분들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하셨죠. 건물의 계약 사이의 비는 기간 2~3달을 이용하려 했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입주한 건물주에게 ‘오프라인 상권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했어요. 상권은 골목 하나 차이로 완전히 달라지고, 그만큼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일 예상 매출, 고객 유동성, 영업시간 같은 데이터를 뽑아드리겠다고 한 거죠. 정보요.
저희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이런 상황에서 단 사흘만에 만든 ‘22 days’라는 카페였습니다. 영업일 기준 딱 22일만 운영하는 카페를 만든 거죠. 딱히 공사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가구들만 좀 갖다두고, 바닥은 공사 예정인 콘크리트 그대로 두고, 오키로북스의 책을 전시했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와 주신 거에요. 실제 결제는 5천 건, 실제 방문자 수 최소 1만 명 이상, 와서 둘러보거나 책만 구매한 분들까지 합하면 1만 8천명 이상이더라고요. ‘정말 22일 후에 문 닫는거냐’, ‘이렇게 좋은데 왜 벌써 문을 닫냐’ 같은 피드백도 많이 받았습니다. 더 재밌었던 건, 저희가 카페 운영을 마친 후 대규모 인테리어 공사를 한 다른 공간과 매출이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우리는 항상 하드웨어에 가장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산이 100억이 있다고 가정하면 일단 인테리어 전문가나 건축가부터 만나겠죠. 그렇게 하다 보면 공간을 채울 소프트웨어는 신경을 못 쓰게 됩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전세계의 하드웨어를 둘러볼 수 있죠. 이젠 공간을 채우는 소프트웨어가 사람들이 그 공간을 와야 할 이유가 되고, 핵심이 된 겁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만으로 얼마나 사람들을 모으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프로젝트 렌트는 그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카페는 잘 됐지만, 프로젝트 렌트의 일을 설득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예시를 만들려 했고, 그 첫 번째 결과물이 평양 슈퍼마케트였죠. 지금 보면 참 별 거 없어요. 굿즈라고 해야 과자 5종, 프로파간다 포스터 10종. 새터민께서 만들어주신 과자 정도가 전부였죠.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핑크핑크한 감성을 살렸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게 즐겨 주시더라고요. 조용한 서울숲 골목에 웬 또라이가 하나 나타난 거죠.
[자료 출처 Design Jungle]
'너 그러다 큰일난다', ‘양복 입은 사람이 돌아다니면 무조건 잡혀간다’ 같은 농담도 들었습니다. 마침 그 때 북미정상회담이 잡혔거든요. 그런데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더 반응이 좋았습니다. 나중엔 아트샵 형태로 확장도 하고, ABC, BBC 등에서 취재도 했죠. 저희가 딱 2주 운영하고 종료했는데, 취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연락도 받았습니다. 팝업이라고 해서 짧게 했다고 답했더니, 다음에 생기면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이 때부터 탄력을 받아서 다양한 브랜드와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트롤스페이퍼(Trolls Paper), 철제 가구 브랜드 레어로우(RARERAW), 콘텐츠 플랫폼 폴인(fol:in), 비건 뷰티 브랜드 멜릭서(melixir) 등, 각양각색의 브랜드 팝업 스토어를 기획하고 만들었죠. 특히 당시의 멜릭서는 백화점 입점 사례 최초로 모든 오브제를 종이로만 만들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전엔 그런 사례 자체가 없었거든요.
[자료 출처 멜릭서]
성장은 숫자로도 나타났습니다. 저희와 처음 했던 곳 중 하나인 독립출판 서점 오키로북스는 온라인 판매가 300% 성장했어요. 대전의 문구 브랜드인 프렐류드 스튜디오는 5개월 사이 인스타 팔로워가 2배 넘었고, 캔와인 BABE는 마켓 세일즈가 550% 이상 성장했죠. 최근에 진행했던 가나초콜릿 팝업은 누적 방문객이 1만 명을 훌쩍 넘었고, 워낙 인기가 좋아 기간을 연장해야 했습니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를 만드는 수많은 브랜드들의 팝업을 만들어왔습니다. 매번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굳이 우리 공간을 찾아와야 할 이유를 줘야 한다.”
마케팅, 브랜딩, 세일즈 담당자는 모두 생산자들이죠. 생산자 입장에서는 고객들에게 우리 제품은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색다르고 남다른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다 욕심이에요. 소개팅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겠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떨까요? 부담스럽고 만나고 싶지 않아지겠죠.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우리 브랜드만 보여줄 수 있는, 우리 브랜드여서 말할 수 있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 또 하나는 “사람들은 비합리적이다”라는 것입니다. 2007년, 미국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조슈아 벨 (Joshua Bell)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워싱턴 지하철역에서 버스킹을 하면 얼마를 벌지 알아보는 것이었죠. 조슈아는 45분 동안 연주하며 32달러를 벌었습니다. 요즘 환율로 따지면 5만원이 안 되죠. 하나에 70억 원이 넘는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고,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는 세계 정상급 음악가였는데도 말이죠.
결국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를 결정짓는 또 하나의 핵심은 맥락(context)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 브랜드만 보여줄 수 있는 메시지와 분위기, 그리고 우리 공간을 찾아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하죠.
저는 이걸 ‘쌀집 프로젝트’를 하면서 배웠습니다. 한국에는 1,452종의 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아는 분들은 거의 없죠. 그래서 벼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둘러보고 체험하면 더 기억에 남겠다는 생각에, 다양한 벼의 이야기를 담은 굿즈들을 만들었어요. 판매하는 28종의 벼를 예술 작품처럼 전시하고, 마치 논밭에 온 것 같도록 경험의 디테일을 살렸죠.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이 팝업에서는 쌀 200g을 7천원에 팔았습니다. 당시 경기미가 200g 기준 500원, 한 가마에 5만원이었죠. 비싸다는 유기농 밀키퀸은 200g에 1,8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프로젝트 렌트에서 쌀이 비싸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어요. 맛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나누고 싶어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사야 할 이유에 따라 가격이 바뀌고, 가치가 달라집니다.
“좋은 팝업 스토어가 뭔가요?” 제가 자주 받는 질문이고, 여러분들도 가장 궁금하실 것 같은 주제죠. 저는 항상 이에 대해 '다음이 기대되는가?'라고 답해요. 사람들이 '다음에 언제해요?' 라고 물어보는 것이 저희의 성공 기준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왜 브랜드의 팬이 될까요? 그 브랜드의 미래가 더 멋지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감을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그 고민의 깊이가 팝업의 성패를 가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걸 많이 느꼈던 팝업이,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초기에 진행한 성수당 팝업이었어요. 지금까지도 프로젝트 렌트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잘 된 프로젝트입니다. 사실 매출로만 보면 최악이었습니다. 방문자도 적었죠. 100% 예약제에, 24개의 슬롯만 열어놨고, 그나마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1시간 반만에 매진됐죠. 그렇게 해서 오신 고객이 약 200명 쯤 됩니다. 기존의 KPI(Key Performance Index)로 보면 실패한 케이스죠.
성수당 팝업의 의의는 다른 데 있습니다. “서울숲에 프로젝트 렌트라는 이단아가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알려준 프로젝트인 것이죠. 그래서 가장 성공적이라고 말합니다. 성수당은 코로나19로 답답하고, 걱정이 많아진 사람들이 쉬고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김가근 선생님의 굿을 촬영한 영상을 배경으로 재생하고, 신당도 선생님이 직접 그리신 호랑이와 초로 꾸몄습니다. 좋은 에너지를 받아갈 수 있는 부적과 엽서도 준비했죠. 저희는 오직 성수당에서만 할 수 있는, 다음에 또 하고 싶고 기대되는 경험을 준비했습니다. 그 덕분에 방문자 수도, 매출도 적었지만 프로젝트 렌트가 가장 잘 알려지는 프로젝트가 됐죠.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팝업(스튜디오 i)을 할 때도 직원 분들에게 “차는 가지고 오지 말아달라,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고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굿즈만 채우고, 현대자동차 로고도 다 뺐습니다. 아이오닉 로고도 최소한으로만 넣었죠. 제가 이 팝업이 잘 됐다는 것을 느꼈던 때는, 사람들이 "이거 누가 해요?"라는 질문을 할 때였어요. 현대자동차라고 설명해주면 “그 현대자동차가 이런 걸 한다고요?”라는 반응이 돌아왔죠. 그 동안 현대자동차에서 볼 수 없었던 경험이니까요. 그런 것을 재밌어 하시더라고요.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오프라인 스토어가 온라인의 편리함과 기능을 따라잡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겠죠. 단순히 인증샷 올릴 벽이 아닌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야기와 경험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려고 해도, 공유하고 싶은 스토리나 경험이 없으면 올릴 것이 없으니까요. 단순히 유행을 따라서 겉만 그럴듯하게 준비한 건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명확히 준비했는지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봅니다.
일본에 히가시야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일본 전통 와가시 (화과자)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놓은, 오가타 신이치로의 브랜드죠. 일반적으로 일본 화과자점은 기본적으로 200년은 돼야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지금은 2003년 만들어진 히가시야가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와가시 브랜드가 됐죠. 오가타는 전통이 어떤지가 아니라 ‘모던한 일본인의 일상은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런 이미지를 설계하고 제품과 공간에 적용했습니다. 먹는 과정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되게 만든 것이죠.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매장을 화려하고 멋지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결국 마케팅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니까요. 저는 이것을 프로젝트 렌트 4호점에서 부산 커피 위크를 진행하면서 느꼈습니다. 4호점이 위치한 이대앞 거리는 수년 째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모으는 사회적 실험을 해 보자’는 오기로 보란듯이 그 곳에서 팝업을 했죠. 인테리어가 세련되거나 한 건 아니었습니다. 부산 커피 위크 포스터를 붙이고 시트지로 깔끔하게 마감하는 정도였죠.
오픈 첫날 일요일 오전부터 난리가 났습니다. 팝업 기간 동안 하루 평균 방문자는 1,700명, 주말엔 2,700명 까지 뛰었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이 즐거워한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커피와 부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다양한 커피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너 때문에 10년 만에 이대 앞에 처음 와봐", 이 말을 제일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모여서 신나게 놀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가나초콜릿 팝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초콜릿을 딱 세 번 삽니다. 그 세 번이 아니면 선물로 받아야 먹죠. 그래서 ‘사람들이 초콜릿을 즐기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자’를 핵심으로 잡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감각의 경험을 제공할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디저트와 함께 초콜릿을 맛보고, 쇼콜라티에와 함께 나만의 초콜릿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했죠. 가나초콜릿의 역사를 차분히 둘러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고요.
[자료 출처 필라멘트앤코]
저희의 노력은 고객들의 반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10평 내외 공간에서 1~2분 정도 머무르는데, 가나 초콜릿 하우스는 평균 60~80분 동안 있었습니다. 성수역에서 15분 넘게 걸어야 하는 공간인데도 말이죠. 6주 동안 2만 7천명 이상이 방문했고, 하나에 3만 5천원짜리 초콜릿 페어링 코스는 오픈 1분만에 매진됐죠.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가나 초콜릿이라는 브랜드에 자발적으로 몰입했습니다. "가나초콜릿이 처음부터 이런 브랜드였던 느낌." "굿즈만 놔두는 시늉인 줄 알았는데, 초콜릿에 진심인 걸 확인했다."라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메시지와 경험에 집중한 것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여러분, 브랜드가 시늉만 하는지 진심을 담는지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래서 좋은 팝업, 나아가 좋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딩은 진심으로, 깊이있게 준비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브랜드는 팝업 스토어로 어떤 이야기를, 어떤 경험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꼭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Q 브랜딩이 잘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A 브랜드가 한 번에 잘 될 수는 없어요. 시간을 두고 키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와 함께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라고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해요. 애플은 정말 철저하게 순간들에 대해서만 얘기하죠. 그래서 경품도 없고요. 삶에 대해서 얘기하잖아요. 제품 개발할 때 의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게 전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그 브랜드가 가치있다고 느껴지는 상황을 만드는 것인가가 중요해요.
Q 프로젝트렌트는 팝업을 준비하기 위해 기간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A 프로젝트 기간은 아이템마다 다르지만 기본 3개월이 안정적이기도, 적절하다고고 생각해요. 사실상 1개월은 그 브랜드를 이해하고 서로 의견을 맞추고, 계약관계를 정리하는 데 필요하거든요. 사실, 저희 모델은 VC들도 이해하기 힘들어해요. 아직도 제가 하는 이걸 취미활동이라고 생각하시는 사람들도 있고요.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얘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얘기하고 이해하면 하지 말라”고 하거든요.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저희를 믿고 맡겨주시기를 부탁드려요. 가나초콜릿도 롯데가 저희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어요. 이 영역은 실행이 90%라서 현장에서 생기는 변수의 대부분은 기획서에 담을 수도 없어요. 최종 퀄리티에 대한 고민을 더 하는 것이 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Q 같은 공간도 다르게 만드는 프로젝트렌트만의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A 특별한 것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쓸데없는 것을 최대한 줄이는 거죠. 컨셉 하나에만 집중을 해야 고객도 온전히 그걸 느껴요. 우리 모두 자기 일 이외의 것들에는 집중력이 매우 떨어져요. 친한 친구하고 얘기하면서도 딴 생각 하잖아요. 명확한 방향을 정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집중시켜야 해요. 일관성이라고 하죠. 그걸 찾아내는 게 참 조심스럽고 어렵지만요. 뭘 자꾸 넣으면 구차해져요. 어려워지고. 덜어내고 버리는 게 항상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사진 최진수]
"오직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스토리만을 온전히 담는 매장". 프로젝트 렌트 홈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문장입니다. 필라멘트앤코 최원석 대표의 브랜드 세션을 통해 팝업이라는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팝업 스토어라는 공간을 채우는 공기와 이야기는, 새로운 모험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요.